"이 합병 반댈세" 반도체 콕 집은 美…삼성·SK도 아시아나 '주시'

합병시 韓~미주 화물 점유율 73.4%…삼성전자·SK하이닉스 반도체 운송 '독점' 우려
美 "전략물자 운송비 상승 및 파업리스크 노출" 판단…국내 반도체업계도 영향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금준혁 강태우 기자 = 화물사업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마지막 변수로 떠올랐다. 합병의 키를 쥔 미국의 명분은 전략물자 반도체다. 양사 합병이 반도체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한 미국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법무부(DOJ)는 대한항공(003490)-아시아나항공(020560) 기업결합에 대해 반도체 등 전략물자 운송을 한 회사가 좌지우지하는 것에 우려의 목소리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미국은 반도체를 전략물자화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을 자국 위주로 재편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왔다. 미국 법무부가 기업결합 저지를 위해 소송을 검토한다는 현지 보도가 나온 것 역시 이러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우려점은 크게 세 가지다. 독점노선이 되면 운송비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고 파업 시 대체 항공기를 구하기 어렵다는 것과 이를 해소할 만한 신규 사업자의 진입장벽이 높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국내 반도체 업체가 국내에서 반도체 완제품을 생산하면 화물기를 통해 해외로 운송한다.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모두 해외에 공장을 두고 있지만 주요 생산거점은 국내에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국내 반도체 라인만 20개가 넘을 정도로 국내 생산량이 절대적이다.

미국은 국내 반도체 업체의 핵심 시장이다. SK하이닉스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수출국가 중 가장 매출액이 높은 지역은 미국(5조4671억원)으로 2위인 중국(3조8822억원)과의 격차가 크다. 삼성전자는 별도로 DS(반도체)부문의 해외 국가별 수출 비중을 구분하고 있진 않지만 SK하이닉스와 유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과 미주를 오가는 화물노선은 사실상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중심으로 형성돼있다. 한국항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미주 화물노선에서 대한항공(50.2%)과 아시아나항공(23.2%)의 합산 점유율은 73.4%에 달한다. 반면 외항사 합산 점유율은 26.4%에 불과하다.

반도체는 단순 화물이 아닌 만큼 항공사의 운송 경험이 중요하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전자기기는 항공사에 돈이 되는 고부가가치 화물"이라며 "국내에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네트워크를 예전부터 유지해왔다"고 말했다.

이에 반도체 업계 역시 합병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운송비 인상 가능성에 대해 "현재는 가늠하기 어렵다"면서도 "미주 노선을 뜰 수 있는 국적항공사가 하나로 합치게 되면 우려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화물기에 반도체를 싣는 모습(삼성전자 반도체 뉴스룸 캡처)

파업 시에는 대체 항공기를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저비용항공사(LCC)가 진입한 여객과 달리 화물은 여전히 양사를 대체할 항공사가 충분치 않다. 미주와 같은 장거리 노선은 특히 그렇다.

실제로 지난 2005년 7월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가 25일간의 파업에 나선 바 있다. 당시 삼성전자·LG전자 등 주요 수출기업이 대체 항공기를 제때 구하지 못하며 수출에 어려움을 겪었다. 같은 해 11월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도 파업에 나서자 정부가 긴급조정권을 초기에 발동하며 나흘 만에 파업이 종료됐다.

이후 항공운수업이 2006년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되며 일정 비율 이상 운항률을 유지하는 필수유지업무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합산 점유율이 70%를 넘는 양사의 파업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나항공 제공

게다가 화물은 여객과 달리 신규 사업자의 진입이 어려운 시장이다. 전용 화물기를 비롯해 관련 인프라가 필요하며 여러 개별 소비자들을 상대로 하는 여객사업과 달리 화주와의 관계 형성이 필수다. 화주가 화물을 맡길 수 있을 정도로 다방면에서 신뢰도를 쌓아야 한다는 의미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화주는 기존에 네트워크를 쌓은 항공사와 거래를 하고 싶어하는데 후발주자가 이 네트워크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린다"라며 "당장 화물터미널 지상조업만 해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독점하는 구조로 넘어야 할 벽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1971년 서울~LA 노선에서 화물사업을 시작했을 정도로 항공화물 부문에서 독보적이다. 아시아나항공도 1989년 화물사업부를 신설한 만큼 신생사가 이들 회사와 경쟁하기는 쉽지 않다.

대한항공이 에어프레미아와 티웨이항공(091810)에 화물기를 대여하는 방식으로 합병 난국을 타개하려 했으나 각국 경쟁당국에 퇴짜를 맞은 이유 역시 이러한 업계 특성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만 현재로서는 기업결합 성사 여부가 불투명하다. 일각에서는 대한항공이 기업결합의 걸림돌이 된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를 아예 매각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대한항공은 내달 유럽연합(EU) 경쟁당국에 합병 시정서 초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rma1921k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