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억 가스터빈 팔더니 AS 갑질…"유지·보수까지 국산화 결심"

두산에너빌리티, 가스터빈 로터 '수명연장 사업' 본궤도…원제조사 제치고 국내서 6기 계약 체결
'독과점' 제작사들, 수명연장 꺼리거나 고가 요구…두산, 가스터빈 개발 이어 글로벌 AS 시장까지 노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두산에너빌리티가 발전용 가스터빈 '애프터마켓' 공략에 힘을 주고 있다. '기계공학의 꽃'으로 불리는 가스터빈은 소수의 해외 업체가 글로벌 시장을 독과점하는 실정이다. 5년 전 국내 최초로 가스터빈 독자 개발에 성공한 두산에너빌리티는 해외 업체들이 도외시하는 애프터서비스(A/S) 틈새시장 개척을 본격화하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두산에너빌리티(034020)는 지난달 30일 한국남부발전과 가스터빈 로터 6기에 대한 '수명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로터(Rotor)는 400여개의 회전날개(블레이드)를 부착한 원통형 구조물로, 섭씨 1300도가 넘는 고온에서 분당 3600회로 초고속 회전하며 동력을 생산하는 가스터빈 내 핵심 기기다.

로터의 수명연장은 발전소 운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 중 하나다. 발전소 설계 수명은 평균 30년 안팎인데, 로터의 수명은 20년 남짓이다. 로터를 제때 수리하지 않으면 가스터빈을 통째로 교체해야 하는 셈이다. 로터 수명연장 비용은 1기당 수십억원으로 추산되는 반면, 천연액화가스(LNG)발전용 가스터빈 1기당 가격은 300메가와트급(㎿) 기준 약 800억~1000억원 규모다.

문제는 세계 가스터빈 시장이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독일 지멘스, 일본 미쓰비시파워(MPW), 이탈리아 안살도 4개사의 '독과점 체제'라는 점이다. 이에 국내 발전소들은 그간 가스터빈을 수입해 운영했는데, 로터 수명연장이 필요해도 해외 업체들은 새 가스터빈으로 교체할 것을 종용하는 탓에 울며 겨자 먹기로 수백억원의 비용을 지출해야 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2020년 9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경남 창원 산업단지를 방문, 스마트공장 현장인 두산중공업 가스터빈고온부품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2020.9.17/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하지만 두산에너빌리티가 국내 최초로 LNG가스터빈 자체 모델을 개발하면서 판도가 변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19년 가스터빈 개발로 세계 5번째 원제조사(OEM) 지위를 획득했는데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축하 메시지를 내고 직접 생산 공장을 찾기도 했다. 현재 두산에너빌리티가 수주한 가스터빈은 3건으로, 개발 첫 해 1호기를 김포 열병합발전소에 도입한 데 이어 작년과 올 초 각각 2·3호기를 추가 수주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내친김에 '로터 수명연장 서비스'에도 나섰다. 해외업체가 외면하거나 비싼 값을 부르는 로터 수명연장을 대신 맡아 수익을 내는 틈새시장 공략을 시작한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남부발전이 최근 입찰한 로터는 미국 GE사의 가스터빈으로 알려졌는데, 두산에너빌리티는 GE사보다 약 70억원 낮은 가격에 응찰해 계약을 따냈다고 한다. 남부발전은 이번 계약으로 가스터빈을 약 10년 더 운전할 수 있게 됐다.

두산에너빌리티가 로터 수명연장 사업에 뛰어든 배경엔 '후발주자 마케팅' 전략도 숨어 있다. 지난해 LNG발전용 가스터빈 세계 시장 점유율은 GE 58%, 지멘스 27%, MPW 11%로 3개사가 전체 96%를 장악하고 있다. 가스터빈 신생업체로서 최고난도 기술을 요하는 로터 수명연장 서비스를 통해 기술력을 알려 점유율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22년 로터 2기 수명연장 계약을 처음 따낸 후 총 8건의 수주고를 올리며 입지를 넓히고 있다.

해외 시장 공략도 계획 중이다. 두산에너빌리티가 현재 로터 수명연장을 수행할 수 있는 가스터빈은 GE사의 '7-FA 모델'인데, 해당 모델만 전 세계에 910여기(국내 30여기)가 깔려 있다. 향후 취급 모델 다양화에 따라 상당한 매출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한국기계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 전체 가스터빈의 구매금액은 8조원, 유지·보수비용은 4조원에 달했다.

손승우 두산에너빌리티 파워서비스 BG장은 최근 로터 수명연장 계약과 관련해 "국내 가스터빈 산업계의 경쟁력을 다시 한번 입증하고, 기술력을 한층 고도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의미가 크다"며 "한국남부발전, 국내 가스터빈 협력사와 함께 이번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이를 토대로 글로벌 가스터빈 수명연장 시장 진출도 적극 추진하겠다"고 했다.

dongchoi8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