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재단에 넘긴다고?"…HL홀딩스 '이사회는 뭐했나' 거수기 논란

재단에 자사주 무상 출연 결정에…2대 주주·거버넌스포럼 "반대"
"이사회 경영진 감시 의무 못 해" 거수기 논란도

HL홀딩스

(서울=뉴스1) 신건웅 박승희 기자 = HL홀딩스가 회삿돈으로 산 자사주를 재단에 무상으로 넘기기로 하면서 '공짜 신주 발행'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2대 주주인 VIP 자산운용은 물론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 단체인 한국거버넌스포럼까지 반대에 나섰다.

일부에서는 이번 건을 만장일치로 승인한 이사회에 문제점을 제기했다. 대주주 이익을 위해 일반주주를 고려하지 않은 결정을 했다는 지적이다. 일반 주주의 주주가치 훼손이 불가피함에도 거수기 노릇을 한 셈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VIP자산운용과 거버넌스포럼, 소액주주들은 HL홀딩스(060980)를 향해 자사주 처분 결정을 취소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앞서 HL홀딩스는 비영리재단 법인을 설립해 자사주 47만 193주(약 163억 원 규모)를 무상 출연한다고 밝혔다. 총발행주식의 4.76%이자, 보유 자사주(56만 720주)의 84%에 달하는 규모다. 나머지 16%(9만 527주)는 소각할 계획이다.

거버넌스포럼은 "자사주를 주주 승인 없이 무상 출연하는 것은 저가 발행을 넘어 사실상 공짜로 신주를 발행하는 것으로 명백한 주주가치 훼손 행위"라며 "재단법인을 통해 사회적 책무를 수행하는 것은 칭찬받을 일이지만 출연은 상장사가 아닌 창업패밀리 자금으로 하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HL홀딩스 지분 10.41%를 보유 중인 VIP자산운용도 자사주 무상 출연에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는 "주주가 입는 피해는 명백한 데 반해 회사가 얻을 가능성이 있는 이익은 막연한 기대에 불과해 이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뤄졌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시장 참여자들은 이번 자사주 무상출연의 목적을 '의결권 부활을 통한 백기사 확보'로 의심하고 있다"며 "재단 무상출연을 강행할 경우 일반 주주의 피해와 자본시장의 우려, 유무형의 기업가치 하락은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HL홀딩스 이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다. 이사회는 모든 주주를 대표해 회사의 중요 사항 결정과 대주주를 비롯한 경영진에 대한 감독권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하지만 특정 대주주 이익을 위해 일반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거수기 노릇을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HL홀딩스의 이사회는 정몽원 의장과 김광헌·김준범 대표를 비롯해 이용덕 전 KB국민은행 부행장, 정지선 서울시립대 교수, 조국현 하와이 퍼시픽대 교수, 김명숙 고려대 교수로 구성돼 있다.

대주주를 제외한 다른 이사들은 일반 주주의 피해가 있을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관련 사안에 반대표를 던져야 했지만, 이사회는 이번 건에 대해 전원 동의했다. 이외에도 올 상반기 기준 HL홀딩스의 사내이사와 사외이사는 이사회에서 논의됐던 18건의 안건에 대해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반대표는 1건도 없었다.

자사주 무상출연 건에 대한 이사회 의사록 역시 상세히 남기지 않았다. 공시된 내용은 일시와 장소, 출석 이사, 안건에 대한 내용, '만장일치'라는 결과가 전부였다. 주주 가치를 침해할 수 있는 중요 사안임에도, 자사주 무상 출연으로 벌어질 수 있는 우려와 이에 대한 이사회의 논의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것이다.

김우진 서울대 교수는 "HL홀딩스는 기존 주주들을 회사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면 할 수 없는 의사 결정을 했다"며 "이사회 또한 이번 건은 주주들 지분 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에 당연히 상세한 토론을 해야 했고, 토론한 내용이 회의록에 기록이 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사회 일반 주주 가치를 중시하도록 유도할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 교수는 "매번 금융감독원이 나서서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으니 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이해 충돌 상황에서 일반 주주 보호에 대한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금투업계 관계자는 "외국은 이사들 사진과 프로필이 약력과 함께 공개돼 있는데, 이사들이 주주를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선 이런 것도 고려돼야 한다"고 했다.

한편 주주까지 이사 충실 의무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은 제동이 걸린 상황이다. 경제계 반대에 정부도 주춤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기업 지배구조 규제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에 힘을 싣고 있지만, 정부는 재계 입장을 고려해 비교적 소극적인 내용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은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일반 주주 보호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ke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