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 팔고 테슬라 샀다"…동학개미, 서학으로 엑소더스[주식 이민]①
해외 주식 보유액 142.2조 달해…"테슬라·엔비다이·MS, 집중 매수"
한국 주식은 연초 이후 11.6조 처분…삼성전자 7.4조 순매도
- 신건웅 기자
(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 한국 증시를 떠나 미국 시장에 투자하는 서학개미가 늘고 있다. 더 높은 수익을 찾아 떠난 주식 이민자들이다.
140조 원이 넘는 돈이 해외 주식에 투자돼 있다. 주로 테슬라와 엔비디아, 애플 같은 미국 빅테크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사이 한국 주식은 팔아버렸다. 삼성전자(005930)와 현대차(005380), SK하이닉스(000660) 등 대표 'K-주식'이 순매도 상위 리스트에 올랐다.
12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9일 기준 국내 투자자가 보유 중인 해외 증권은 1360억 860만 달러(약 187조 8959억)에 달한다. 그중 채권을 뺀 해외 주식은 1028억 9736만 달러(약 142조 1939억 원)로 역대 최대 규모다.
코스피 시가총액 2위인 SK하이닉스(175조 4486억 원)에는 못 미치지만, 3위 LG에너지솔루션(373220)(87조 7500억 원)과 4위 현대차(58조 3224억 원)를 합친 규모에 육박한다.
개인 투자자의 해외 주식 투자는 그동안에도 있었지만, 전대미문의 코로나 사태가 터진 지난 2020년을 기점으로 불이 붙었다. 2018년만 해도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 투자 규모는 98억 3390만 달러(약 13조 5600억 원)에 그쳤다. 2019년 144억 5305만 달러(약 19조 9293억 원)로 늘더니 2020년 470억 7665만 달러(약 64조 9140억 원)로 1년 사이 225.7%나 급증했다. 2021년에는 779억 1344만 달러(약 107조 4348억 원)로 100조 원도 넘었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 충격에도 엄청난 유동성이 시장에 풀리며 각국 증시가 호황을 누린 영향이다.
이후 미국이 금리 인상을 시작한 2022년에는 553억 6605만 달러(약 76조 3442억 원)로 주춤했지만, 지난해 다시 768억 5011만 달러(약 105조 9840억 원)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인공지능(AI) 열풍과 함께 주도주가 있는 미국 시장으로 자금이 쏠렸다.
사실 개인투자자의 해외 투자 증가는 코로나가 끝나기 전까지는 별문제가 아니었다. 한국 주식도 사고 해외 주식도 샀기 때문이다.
2020년 개인투자자들은 국내 시장에서도 63조 9240억 원을 순매수했다. 다음 해인 2021년 76조 9315억 원을, 2022년에는 25조 3692억 원을 사들였다.
분위기가 달라진 건 본격적으로 포스트 코로나가 시작된 지난해부터다. 개인투자자는 지난해 한국 시장에서는 5조 8257억 원을 판 데 이어 올해는 11조 5790억 원을 팔아 치웠다.
이에 올해 상반기 국내 개인 투자자의 해외 증시 거래금액은 2058억 4320만 달러(283조 원)로 국내 증시 거래액의 7.7% 수준까지 올라왔다. 관련 통계 시작한 이후 가장 큰 비중이다. 한국 주식은 매도, 해외 주식은 매수하는 동학개미 엑소더스(탈출)가 나타난 셈이다.
해외 주식 투자가 집중된 곳은 미국이다. 국내 투자자가 보유 중인 미국 주식은 937억 727만 달러(약 129조 1942억 원)로, 전체 투자의 91.1%를 차지했다.
많이 보유한 종목도 미국 주식들이 독차지했다. 1위는 테슬라로, 보관 금액이 155억 9702만 달러(약 21조 5052억 원)에 달했다. 이어 AI 열풍을 주도하는 엔비디아(136억 7189만 달러), 애플(51억 5489만 달러), 마이크로소프트(40억 6392억 달러), 나스닥100지수를 3배 레버리지로 추종하는 프로셰어즈 울트라프로 QQQ ETF(PROSHARES ULTRAPRO QQQ ETF)(35억 2291만 달러), 알파벳(26억 9334만 달러) 순이다.
올해에만 엔비디아를 14억 4212만 달러(약 1조 9903억 원) 순매수했다. 또 테슬라와 마이크로소프트도 각각 9억 1908만 달러(약 1조 2684억 원), 6억 2950만 달러(약 8688억 원) 사들였다.
그 사이 국내 주식은 순매도했다. 연초 이후 '국민주'라 불리는 삼성전자를 7조 4199억 원이나 팔았다. 이어 현대차(-3조 6827억 원), 삼성전자우(005935)(-1조 5679억 원), SK하이닉스(-1조 2508억 원), 기아(000270)(-9620억 원) 주식을 처분했다.
개인 투자자의 해외 주식 사랑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해외 주식 투자에 대한 접근성이 개선됐고, 미국 시장의 수익률이 국내보다 높다는 인식이 확대됐다.
한아름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개인투자자의 해외주식투자는 최근 미국 증시 호황과 AI 및 반도체 산업 성장에 대한 기대로 미국 기술주에 대한 쏠림이 강화됐다"며 "당분간 국내 투자자의 해외주식투자는 현재 기조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형중 우리은행 투자전략팀장도 "국내 경제주체의 해외투자 확대는 중장기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는 해외투자 확대 추세는 향후에도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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