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은퇴 시즌2] 눈을 낮추고 삶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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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서울=뉴스1)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 오랜 친구가 있다. A라고 부르자. 5년 전에 공무원으로 퇴직하고 2년을 비정규직으로 같은 직장에 근무하다가 나온 지 3년이 되었다. 나와서는 감정평가사 자격증 준비를 했다. 합격하면 좋지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A의 직장 동료는 행정고시를 통과했을 정도로 시험에 도가 텄지만 퇴직 후 5년을 공부한 끝에 합격했다고 한다. A도 학원 강의를 들으며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주택관리사 공부나 해봐야겠다.’ 작년에 만났을 때 A가 한 말이다. 나이 들어 어려운 자격시험에 합격한다는 게 쉽지 않고 불확실성 속에서 성과 없이 세월이 지나가는 것도 두려운 것 같았다. 감정평가사를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지만 우선 하나라도 합격을 해야 공부에 지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시험은 잘 보는 터라 주택관리사 1차 시험은 금방 통과했고 2차는 낙방했다. 2차 시험이 이전에는 절대평가 였는데 A가 응시할 때부터는 상대평가로 바뀌어서 합격자의 수를 제한하는 방식이 되어 버렸다. 2차 시험이 갑자기 어렵게 된 것이다.

얼마 전 9월 초에 만났을 때 A는 또 다른 직장 동료 이야기를 했다. 행정고시 합격하고 들어왔는데, 퇴직 5년 전부터 주택관리사 공부를 했다. 그 때 A의 생각으로는 굳이 저런 자격증을 딸 필요가 있을지 의아했는데 그 동료는 퇴직 전에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따고 퇴직 후에 곧바로 관련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직장 동료의 생각이 현명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눈높이를 조금 낮추니 훨씬 수월하게 일이 풀려갔기 때문이다. 2차 시험도 절대평가일 때 쉽게 통과하고.

A의 직장 동료 뿐만 아니라 A의 고등학교 친구도 대기업의 임원을 지내고 계열사 대표이사를 지낸 뒤 퇴직 후 바로 주택관리사 일을 했다. 퇴직 후 얼마 되지 않아 아파트 관리소장을 맡고 있다고 카톡방에 소식을 올리더니 이후에는 경비로 일할 사람 있으면 좀 추천해달라는 소식도 올라왔다. 바쁜지 얼굴 보기도 쉽지 않다. 대기업 임원과 관련 회사 대표이사라는 페르소나(가면)를 벗으니 삶이 물 흐르듯 풀려갔다.

페르소나(persona)는 라틴어로 ‘탈’을 뜻한다. 고대에는 연극을 할 때 슬픈 연기에는 슬픈 표정의 탈을, 화난 얼굴의 연기에서는 화난 탈을 썼다. 이 의미가 발전해서 페르소나는 이제 ‘사회적 가면’을 뜻하게 되었다.

판사, 의사, 정치인, 기업인 등 모두 자신의 역할에 따른 가면을 쓰고 있다. 우리는 현직에 있을 때의 위치에 맞는 페르소나를 쓰고 있다. 그런데 퇴직을 하고 나서 맨 처음 맞닥뜨리는 게 사회적 가면 즉 페르소나를 벗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 가면을 너무 오래 써서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벗은 사람도 옛날의 페르소나 흔적을 잡으려고 애쓴다. 삶의 눈높이를 낮춘다는 것은 인생 오후의 삶에 맞는 페르소나를 쓴다는 것을 말한다. A의 직장 동료나 A의 고등학교 친구는 페르소나를 잘 바꾸어 쓴 셈이고 인생 오후 삶이 매끄럽게 이어졌다.

얼마 전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강의를 갔더니 수강생 한 명이 2016년에 출간된 필자의 저서 '1인 1기'가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며 고마워했다. 잠도 많이 못 자고 와서 비몽사몽 하던 차에 그 한 마디 말이 피로를 씻어주었다.

고향은 합천이지만 공무원 생활을 좀 일찍 마치고 제주도에 내려와 25년째 살고 있다고 했다. 행정사 일을 지금 하고 있으며 조경사 자격증도 땄다. 삶에서 중요한 실천 사항들을 필자의 책을 참고해서 적었다며 보여주었는데 정말로 구체적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다른 사람의 책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이렇게 변화시키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수용력과 실행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 날은 자산관리에 관해 제대로 배워보겠다고 했다. 그 제주도민은 앞으로 행복한 인생 오후를 보내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점심 먹고 난 뒤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A는 이제 목표를 감정평가사에서 주택관리사로 바꾸었다고 했다. 감정평가사 자격증을 따려면 앞으로 3, 4년은 족히 공부를 해야할 것 같은데(게다가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면 나이는 60대 중반을 넘어서게 되고 그 이후 자신에게 얼마의 건강한 삶이 남아 있을 지도 불확실하다고 했다. 그리고 어차피 인생 오후에 감정평가사와 주택관리사의 삶이 크게 다른 것도 아니기에 이제 눈높이를 낮추고 삶을 즐겨야겠다는 말을 했다. 헤어지고 돌아 오는 길에 ‘눈높이를 낮추고 삶을 즐겨야겠다’는 말이 필자의 뇌리에 남았다. 10월에 있을 상대평가 2차 시험에 합격하여 새로운 삶을 즐기길 기원한다.

bsta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