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있으면 전세대출 안돼"…타은행까지 '초긴장'[우리은행發 대출절벽]①

우리은행, 가계대출 376.5% 초과…전세대출 중단 '극약 처방'
'폭탄 돌리기' 벌어진 은행권…'전세대출 제한' 은행권 확산 가능성도

11일 서울 송파구 부동산중개업소 앞에서 한 시민이 매물 정보를 바라보고있다. 2024.8.11/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김근욱 김도엽 기자 = 우리은행이 오는 9일부터 유주택자의 수도권 전세자금대출(전세대출) 중단이라는 '초강수' 대책을 꺼내 들면서 소비자들뿐만 아니라 은행권도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전세대출이 필요한 유주택자들은 우리은행이 아닌 대출이 가능한 다른 은행을 찾아 나서겠지만, 5대은행 중 대부분이 가계대출 연간 목표치를 이미 초과한 상태다. 결국 '대출 쏠림'을 막기 위해선 우리은행의 대책을 따라가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의 압박에 민간 은행들이 '제 살 깎아먹기' 경쟁을 벌이게 됐다고 진단했다. 그간 금융당국이 짊어지던 가계부채 '관리 책임'을 민간 은행에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우리은행, 가계대출 376.5% 초과…주담대에 전세대출 중단 '극약 처방'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이 유주택자의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및 전세대출 중단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놓으면서 은행권에 미칠 파장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금융당국이 지난 2020년 1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9억 원 초과 주택 보유자의 전세대출을 제한하는 정책을 펼친 사례는 있지만, 은행이 자체적으로 전세대출의 문을 걸어 잠근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금융권은 우리은행의 이번 조치를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본다. 금감원은 지난달 27일 가계부채 관련 긴급 브리핑을 열고 4대 은행(국민·하나·신한·우리)의 가계대출 증가액이 연간 계획 대비 150.3% 초과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우리은행의 경우 계획 대비 376.5% 초과한 것으로 파악됐는데, 금감원은 연간 목표치를 맞추지 못할 경우 '평균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낮추도록 지도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은행별 평균 DSR이 낮아지면 그만큼 은행이 취급할 수 있는 대출한도는 줄어들게 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압박에 은행이 자체적으로 새로운 대출 옥죄기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2024.8.22/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 가계 대출 '폭탄 돌리기'…은행도 '초긴장'

우리은행의 선제적 조치에 다른 은행들도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현재 은행권 상황을 고려하면 '릴레이 조치'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지난 7~8월 5대 은행은 무려 20여 차례 이상 대출 금리를 인상하는 이른바 '금리 인상 릴레이'를 벌였다. 금융당국이 금리 인상을 자제하라는 메시지를 낸 지난달 21일 이후엔 △주담대 만기 30년으로 축소 △대출한도 축소를 위한 보험(MCI·MCG) 가입 제한 △ 조건부 전세대출 제한 등 조치가 릴레이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 수요를 타 은행에 밀어내는 '폭탄 돌리기'가 벌어지고 있다고 표현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한 은행에서 거절당했다고 포기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대출이 가능한 또 다른 은행을 찾아 나서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은행뿐만 아니라 국민·하나·신한 역시 모두 연간 가계대출 증가 목표치를 초과한 상태다. 이 관계자는 "대출 수요가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타 은행이 내놓은 대책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했다.

◇ "정부도 못한 일을 은행에?…책임 떠넘기기"

은행들이 '가계대출 옥죄기 정책'을 쏟아내는 것을 두고 일각에선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관리 책임을 은행에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 당시 금융위는 지난 2018년 9·13 부동산 대책을 통해 다주택자의 신규 주담대를 금지했으나, 윤석열 정부의 금융위는 지난 2023년 "능력이 되면 집을 살 수 있게 해야 한다"며 해당 규제를 완화했다.

'오락가락 정책'이 오히려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주고 있다는 비판에 현 정부는 '은행이 스스로 가계부채를 관리하라'는 방침을 정해둔 상태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8.8 부동산 대책에서도 금융 관련 대책은 빠져 있었다. 정부 주도의 부동산 대책은 공급 위주로 마련했고 금융 관련 대책은 없다는 점도 강조했지만 정작 은행권 스스로 역대급 대출 옥죄기에 나서면서 '대출 절벽'이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은행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안 교수는 "정부가 가계대출, 집값 관리에 실패하자 은행에 자체적인 기준을 세워 관리하고 실패 시 페널티까지 준다고 한다"면서 "정부 스스로도 하지 못한 일을 은행에 떠넘겨버린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금융당국의 압박에 은행이 '과한 조치'를 쏟아내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은행이 정부의 뜻을 확실히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유주택자 전세대출 제한'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 같다"면서 "결국 전세대출이 진짜 필요한 사람들은 피 말리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ukgeu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