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족', 웃겼다 짠했다 뭉클했다…실하게 빚은 가족 소동극 [시네마 프리뷰]

12월 11일 개봉 영화 '대가족' 리뷰

'대가족' 스틸 컷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때는 2000년 어느 겨울.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 종로의 어느 유명한 노포 만둣집 사장 무옥(김윤석 분)은 언제나 살짝 화가 나 있는 심술궂은 노인이다. 보청기를 사용해야만 소통이 되는 그는 툭하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무슨 일이든 '이게 만두를 몇 그릇을 팔아야 하는데'라며 손익계산부터 하고 보는 구두쇠다. 구두쇠 정신과 손맛으로 서울 안에 수백억 건물만 몇 채씩을 보유할 만큼 큰 재산을 일군 무옥은 남부러울 것 하나 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무척 우울하다. 하나밖에 없는 독자 문석(이승기 분) 때문이다. 의대를 졸업한 수재였던 문석은 어느 날 출가를 선언한 뒤 교계에서 이름을 떨치는 주지승이 됐다.

그러던 중에 무옥을 환희에 차게 만드는 일이 발생한다. 문석이 자신의 생물학적 아빠라며 어린아이들이 가게를 찾아온 것. 자신의 대에서 대가 끊겨버려 원통하기만 했던 그는 갑자기 생긴 손주들에게 온 마음을 빼앗겨버린다. 한날한시에 부모를 잃은 남매 민석(김시우 분)과 민선(윤채나 분)은 정자 기증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후견인인 삼촌에게 버려져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그 와중에 민선은 외국으로 입양을 가게 될 상황이 되고, 민석은 동생과 헤어지기 싫은 마음에 자신들의 생물학적 아버지를 찾다가 문석의 이름과 주소를 얻게 된 것이었다.

무작정 손주들을 자신의 호적에 입적시키고 싶은 무옥은 보육원에 가서 아이들을 데려가겠다며 생떼를 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절차가 필요하고, 문석은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일단 자신이 아이들의 친부임을 증명하기 위해 유전자 검사를 의뢰하기로 한다.

'대가족' 스틸 컷
'대가족' 스틸 컷
'대가족' 스틸 컷
'대가족' 스틸 컷

영화 '변호인'(2013)과 '강철비'(2017) '강철비2'(2020) 등 휴머니즘적 성격이 강한 작품을 선보였던 양우석 감독은 이번에는 본격적인 코미디 드라마에 도전했다. 영화의 콘셉트는 '과속스캔들'(2008) 같은 2000년대 초중반 스타일의 휴먼 코미디다. 초반엔 코미디, 후반에는 뭉클한 휴먼 드라마를 배치해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주는 식의 흐름을 가진 한국적인 드라마라고 하면 맞을 것이다.

코미디는 성공적이다. 김윤석이 연기한 가부장제에 집착하는 집요한 노인은 보는 이들에게 모종의 기시감을 주며 웃음을 자아낸다. 그런 노인이 연인인 방여사(김성령 분), 아들인 문석, 문석의 수행승 인행(박수영 분)과 붙을 때마다 각기 다른 느낌의 코미디 신이 완성된다. 김윤석은 역시나 전매특허 연기력으로 무옥을 훌륭하게 연기해냈다. 그는 핏줄에 집착하던 남자가 조금씩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대학교 때 반 강제적으로 정자 기증을 했던 스님이 졸지에 수백명 아이의 생물학적 아빠가 돼버리는 설정도 흥미롭다. 무대포 무옥의 캐릭터와 함께 영화에서 웃음을 주는 상황들은 종종 이 설정 안에서 나온다. 김성령이 연기한 사랑스러운 방여사나 강한나가 맡은 문석의 전 여친이자 현 절친인 한가연, 박수영이 소화한 반죽 좋은 수행승 인행 등 주인공들을 둘러싼 인물들이 틀에 박혀 있지 않아 좋다. 캐릭터들 하나하나에 인간미와 생동감을 부여하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가 느껴진다.

드라마적으로는 할아버지인 무옥과 아이들의 관계, 무옥과 아들 문석의 관계성을 조금 더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설정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법하다. 다루고 있는 캐릭터도 많고, 그들 각각이 품은 서사가 풍성해서 상대적으로 주요 스토리라인을 형성하는 이들의 관계성에 할애할 시간이 조금 부족해 보인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며 종종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아낌없이 사용한 치트 키 덕분이다. 사랑스러운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의 눈물 연기, 전쟁을 경험한 노인의 오랜 트라우마 등에 연민을 느끼지 않기란 어렵다.

'대가족'은 만두 같은 영화다. 고기와 채소, 갖은양념, 서로 다른 재료들이 한 장의 만두피에 감싸여 만두가 되듯, '함씨 가문'만 생각하던 무옥이 핏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품어가는 과정은 보는 이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한다. 연말 흥행을 노려봄 직하다. 러닝타임 107분. 오는 12월 11일 개봉.

eujene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