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프로야구단에 왜 금융사는 없을까?
프로야구 관중 700만명 시대를 열면서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지금 반가운 소식이 아닐수 없다.
9개에서 10개로 팀이 하나 더 늘어난다는 건 시장의 파이가 커진다는 단순 도식적인 셈법을 뛰어넘는다. 9구단 체제에서 불거지는 기형적인 운영상의 문제점과 난맥상을 풀어줄 열쇠다.
근데 궁금중이 있다. 왜 새 식구가 또 다시 대기업일까? 은행이나 보험사같은 금융사는 왜 이번에도 명함을 내밀지 못했을까? 실적이 죽을 쑤는 증권사는 예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답은 간단하다.
현행 금융지주회사법 내지 은행법상 금융지주회사는 프로스포츠단을 계열사로 편입할수 없다. 본업인 금융과 연장선상에 있는 사업이 아니면 하지 못하도록 족쇄가 채워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프로배구와 여자농구계는 금융사에게 문호를 활짝 열어제치고 있다.
현재 남자 프로배구 무대에는 삼성화재, 현대캐피탈, LIG손해보험 등이 참가하고 있다. 6개 팀이 경기를 치르는 여자배구에도 기업은행과 흥국생명이 팀을 꾸리고 있다.
여자농구는 사정이 더 심하다. KB국민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하나외환, 삼성생명, KDB생명, 리그에 참여하는 6개 팀이 모두 금융회사 소속이다.
하지만 배구와 농구는 프로야구단과는 '신분'이 다르다.
프로배구는 운영과 위탁을 협회에 맡긴다. 그래서 수익도 협회가 가져간다. 여자농구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프로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속내는 세미프로 내지 실업리그다.
이런 이유로 일반 기업체는 프로구단을 계열사로 만들어서 경영할수 있지만 금융사는 스폰서 역할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올해 페넌트레이스에 뛰어든 프로야구 8개 팀 여섯 곳이 10대 그룹 소속이다. 나머지 두 곳 중 하나인 두산베어스도 재계 12위인 두산그룹 계열이다. 또 다른 한 곳은 정체성이 애매한 넥센 히어로스다.
프로스포츠는 1980년대 5공화국 시절에서 비롯됐다. 서슬 퍼런 정권에서 스포츠를 산업화시키려는 의도로 사실상 강제 할당한 결과, 야구는 주요 대기업이, 기타 종목은 금융업계로 교통정리가 됐다.
제도야 현실에 맞게 손을 보면 되지만 금융사의 프로야구 진입을 막는 더 큰 장벽은 기존 구단들의 뿌리깊은 끼리의식 내지 밥그릇 챙기기다.
지난해 1월 게임회사인 엔씨소프트를 9번째 멤버로 받아들이느냐를 놓고 8개 프로야구단 사장단은 난상토론을 벌였다.
연고지가 겹치는 롯데외의 다른 구단 사장들은 창단 일정상 신중을 기하자는 것일뿐 신생구단 창단을 무턱대고 거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프로야구의 외연이 커지는 것을 반겼다.
하지만 이때도 가입조건에 대한 내부적인 기준선은 있었다. 제조업과 서비스 업종은 괜찮지만 금융·컨설팅 회사는 안된다는 것이다.
참고로 국민체육진흥공단에 따르면 야구는 축구와 농구, 배구 등 4대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파급효과가 큰 것으로 조사됐다.
야구는 1조1838억원으로 경제 파급효과가 스포츠 전체 가운데 52.9%에 달했다. 1만2000명 이상의 고용유발효과로 전체 4대 리그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56.5%에 달했다.
또 다른 얘기.
2007년 1월 대형 금융사로 도약을 꿈꾸던 농협은 빈사상태인 현대유니콘스를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농협이 지금처럼 금융지주사로 옷을 갈아입기 전이었기에 가능한 시도였다.
한국야구위원회(KBO)나 야구팬들은 모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농협이 인수할 경우 직산품을 야구장에서 판매하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야구장에서 만날 수 있는 말그대로 야구판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수 있었다.
그런데 나흘뒤 농협은 자신의 결정을 손바닥 뒤집듯 번복했다.
공수표를 날린데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하지만 '먹고살기 힘든판에 무슨..."이라는 농민들의 여론을 내세운 주무부처인 농림부가 딴죽을 걸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농협이 사업범위를 신용·경제 등에 한정하고 있는 농협법을 피해 4개 자회사를 동원, 손자회사 형태로 인수하려던 시도가 물거품으로 돌아간 것이다.
당시 농협은 `프로야구단을 자회사로 인수하는 것은 농협법에 어긋나지만 자회사 컨소시엄을 통한 손자회사 형태의 인수는 해볼만하다`고 내부전략을 짰었다. 그전해 농협은 순익 1조원을 거둬 곳간도 넉넉한 상태였다.
아무튼 당시 현대 유니콘스 매각 문제가 농협의 인수쪽으로 급물살을 타게 되자 야구팬들도 발빠르게 움직였다.
농협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가정하에 인터넷상에서는 팀 명칭과 유니폼, 캐릭터, 응원가 등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부분은 ‘팀명’이었다. 대개 프로야구팀은 해당 기업의 이름과 함께 뒷부분에 구단의 특징을 살린 마스코트의 이름이 붙는다.
‘현대 유니콘스’, ‘삼성 라이온즈’, ‘기아 타이거즈’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일부 야구팬들은 ‘농협 파머스’와 ‘농협 농민S’, ‘농협 라이스’, ‘농협 허수아비’ 등의 우스개 이름을 제시했다.
‘벼멸구스’, ‘유기농스’, ‘트렉터스’, '새마을 익스프레스', '비닐하우스', '품앗이 빌스', '풍작 자이언츠' 등의 장난기 섞인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야구단 인수가 없던일로 돌아가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팬들은 씁씁한 입맛만 다신채 고개를 숙여야 했다.
andrew@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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