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기업 "안팔려요" 아우성…체감온도 코로나後 '4년만에 최저'

내수 제조기업 내수판매실적 BSI, 2020년 9월 이후 가장 낮아
수출-내수 차별화에 금리인하 요구…집값 걱정에 한은 '신중'

지난달 서울 시내 한 폐업 상가에 임대문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자료사진) /뉴스1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고물가·고금리 환경이 장기화하면서 우리나라 제조 기업이 체감하는 내수 경기가 코로나19 이후 약 4년 만에 가장 차가워진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수출을 주로 하는 제조 기업들의 수출 실적 체감은 약 2년 만에 가장 양호하게 조사돼 최근 우리 경제에 심화한 수출-내수 차별화 현상을 방증했다.

25일 한국은행의 기업경기 조사 결과를 보면 이달 내수 제조 기업의 내수판매실적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2020년 9월(66) 이후 3년 11개월 만에 최저인 74로 나타났다.

지난 2020년 9월 당시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국민들이 일제히 지갑을 닫았던 때로, 최근 내수 판매 실적이 악화한 기업 비중이 코로나19 첫 확산기와 비슷하게 불어난 상황으로 해석된다.

반면 수출 제조 기업의 8월 수출실적 BIS는 2022년 9월(98) 이후 1년 11개월 만에 최고치인 94로 조사됐다.

앞서 수출 제조 기업의 수출실적 BIS는 작년 8월(61)에 바닥을 찍은 뒤 추세적으로 개선돼 왔다. 이윽고 올해 5월(91) 90선을 넘겼으며, 6월(89) 잠깐 낮아졌다가 7월(93) 다시 오른 이후 이달까지 2개월 연속으로 상승했다.

같은 제조업 내에서도 내수 매출 비중이 50%를 넘는 기업들은 내수 판매량이 1년 전보다 시원찮아졌지만, 수출 비중이 과반으로 쏠린 기업의 경우 체감 수출 실적이 점차 전년 수준에 맞춰지는 추세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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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수출-내수 경기 온도 차는 고물가·고금리로 인한 소비·투자 위축이 핵심 원인으로 파악된다. 높은 물가에 가계 실질 소득 개선이 지연되고 금리 인하마저 당초 기대보다 늦어지면서 소비 여력이 더욱 제한된 여파다.

반면 수출의 경우 IT 업황이 호조를 보이면서 증가 흐름을 지속하고 있다. 앞으로도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AI 관련 투자가 견조한 흐름을 이어갈 터라, 기업들의 경기 체감 온도를 떠받쳐 주고 있다.

이러한 수출-내수 차별화는 한은에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명분이 되고 있다.

물가, 경기 등 거시경제 환경만 보면 금리 인하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는 이창용 한은 총재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이 총재는 지난 22일 통화정책방향 설명회에서 "국내 경제는 수출과 내수 간 차별화가 지속됐다"며 "수출이 IT 품목을 중심으로 높은 증가세를 이어가나 민간소비는 예상보다 회복세가 더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가와 경기 측면에서는 향후 적절한 시점에 금리 인하를 고려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면서 가계부채 증가를 부채질하는 가운데 기준금리 인하가 단행될 경우 금융 불균형이 누증될 수 있다는 우려를 고려해 한은은 이달 기준금리를 연 3.50%에서 13회 연속 동결했다.

이 총재는 "내수 성장률이 더디고 수출-내수 차별화가 되는 면은 사실이기에 현 상태에서 금리 동결은 내수 부진 가속할 위험이 있지만, 금융 안정 면에서는 지금 들어오는 시그널을 막지 않으면 좀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상충관계를 보고 동결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내수와 물가만 보면 금리 인하가 타당할 수 있음에도 금융 안정 우려가 발목을 잡으면서, 한은은 이달 경제 전망에서 내수 개선 속도가 당초 기대보다 느릴 것이라는 미래 청사진을 제시했다.

한은은 "내수의 경우 기업 투자 여력 증대,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률 둔화) 진전 등에 힘입어 개선 흐름을 재개하겠지만 모멘텀 상승 폭은 당초 예상에 다소 못 미칠 전망"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한은은 재화수출이 올해 6.9%, 내년 2.9% 증가하고, 민간소비는 올해와 내년 각각 1.4%, 2.2% 증가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은 한은의 내수 판단이 낙관적인지 비관적인지 설왕설래 중이다.

백윤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펀더멘털 측면에서 금리 인하 조건은 상당 부분 충족됐음이 다시 확인됐다"며 "특히 이 총재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배경을 1분기 성장의 일시 요인 영향을 조정한 결과라고 언급했지만, 실제론 내수 부진 가능성을 좀 더 염두에 둔 것"이라고 판단했다.

김명실 iM증권 연구원은 "지금처럼 내수가 부진하고 수출이 주도하는 성장이 지속되면 수출 증가로 유입된 자금이 설비투자나 민간소비와 직결되지 못하고 부동산으로 흘러가 주택 가격에 상당한 압박을 줄 수 있다"며 "한은은 2단계 DSR에 따른 가계대출·부동산 안정 여부를 점검한 뒤 10월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했다.

반면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이 총재는 하반기 민간소비 증가율 전망 1.8%가 크게 낮은 건 아니라고 했다"며 "한은의 경제 전망 시각을 토대로 향후 금리 인하 경로를 추론해 보면 한은은 시장 기대보다 계속 매파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icef0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