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처법 시행 후 최악 '화성 참사'…수사능력 시험대 오른 고용부

중처법 시행 3년차 수사역량 쌓여…혐의 입증 무리 없을 듯
'블법 파견' 입증 여부는 관건…아리셀 초호화 변호인단 구성

박순관 아리셀 대표가 27일 오후 경기 화성시 모두누림센터에서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사고 유가족을 만나 사과하고 있다. (경인일보 제공) 2024.6.27/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시행 이후 최악의 인명 피해를 낸 경기 화성시 리튬 일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을 향한 수사에 관심이 쏠린다. 산업현장에서 발생한 사고인 만큼 경찰 수사와 더불어 진행될 고용노동부의 수사결과도 초미의 관심사다.

산업안전 주무부처로 중처법 시행 후 지난 2년 넘게 수사 역량을 쌓아 온 고용부의 중처법 위반 관련 수사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다만 또 다른 쟁점인 '불법파견' 의혹과 관련한 진상규명이 관건이다.

불법파견 여부에 따라 형사처벌 수위가 훨씬 더 세질 수 있는 만큼 수세에 놓인 아리셀과 이를 규명하기 위한 고용부의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고되고 있다. 아리셀은 이미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의 변호인단을 선임한 상태다.

28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고용부 경기고용노동지청은 지난 26일 경기남부경찰청과 약 8시간에 걸쳐 아리셀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양 기관은 리튬 전지 취급, 검수‧포장 과정에서 발화 원인을 밝히기 위한 증거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산업안전 주무기관으로서 중처법 저촉 여부를 판단하고, 이번 사고에서 핵심 규명 건으로 떠오른 '외국인근로자 불법파견 의혹'도 파헤칠 책임을 진 고용부는 관련 자료도 압수해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중처법과 관련한 수사의 핵심은 '안전·보건 확보 의무' 여부인데, 이와 관련한 혐의 입증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미 경찰은 지난 25일 박순관 아리셀 대표와 회사 관계자 2명을 중처법 위반 혐의로 입건한 상태다. 중처법은 '근로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고 예방 의무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News1

사고 발생 후 아리셀의 사업장 운영과 관련한 각종 위법 의혹은 쏟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뉴스1이 진보당 정혜경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아리셀의 내부 도면'을 보면 회사가 최근 공장 내부의 칸막이를 임의로 제거하고, 구조를 변경한 것이 확인된다. 최초 아리셀이 2018년 건축허가를 신청했을 당시 도면에는 내부 칸막이가 그어져 있고, 근로자들의 '업무공간'과 배터리 적재공간'은 분리돼 있었다.

'화재·폭발위험이 있는 리튬 배터리는 위험물로 간주돼 작업에 필요한 양을 제외하고는 별도장소에 보관해야 한다'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16조에 따른 것이었는데, 무단으로 구조 변경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수사도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발생 약 3개월 전 이미 '다수 인명 피해가 우려된다'는 소방당국의 지적에도 안전의무 확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점 역시 혐의 적용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중처법 시행 이후 가장 높은 형량인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은 경남 양산시 한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대표의 양형과 관련해, 당시 재판부가 안전보건 관계 기관의 지속적 지적에도 사고 위험을 개선하지 않은 부분을 지적했던 점을 고려하면 유사한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고용부는 이 외에도 직원들에 대한 안전보건 의무 교육 등 비상 상황에 대비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가 적정히 지켜졌는지 등을 확인 중이다.

이번 화재 참사의 책임 규명을 위한 또 다른 쟁점은 외국인근로자 '불법 파견' 여부다.

'23명의 사망자'를 낸 이번 참사의 경우 유사한 산업현장에서 발생한 사고로는 역대 최다 사망자를 기록한 만큼, 중처법 적용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사측은 이런 상황에 파견법 위반까지 더해질 경우 형사처벌 수위가 올라갈 수 있는 만큼 '불법 파견' 혐의를 벗기 위한 방어전선 구축에 전력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불법파견의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아리셀 모회사 '에코넥스'의 박순관 대표가 25일 오후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 화재 현장에서 공식 사과문을 발표한 후 취재진의 질의를 듣고 있다. (공동취재) 2024.6.25/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이를 의식한 듯 박순관 아리셀 대표는 지난 25일 이번 참사와 관련해 공개 사과문을 발표한 자리에서 '불법 파견이 없었냐'는 질문에 "없었다"면서 "안전교육도 충분히 했다"고 주장했다.

아리셀은 최근 국내 대형 로펌인 김앤장 변호인단을 선임해, 일찍부터 법정 공방을 예고한 상태다.

근로자들이 하청 파견업체 메이셀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아리셀에서 일했다면 합법적인 도급관계이지만, 원청인 아리셀로부터 업무 지휘·감독을 받았다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 즉 '지시권한'이 어디에 있는지가 파견과 도급의 차이를 결정한다. 고용부는 이와 관련한 혐의 입증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고용부는 2년 전 아리셀에 대한 근로감독을 벌여 근로기준법상 위법 여부를 살핀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불법 파견과 관련한 정황을 포착하지는 못했다.

이번 화재 참사 지역사고수습본부장인 민길수 중부고용노동청장은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다수의 증거자료를 신속히 분석해 화재 원인 및 책임소재를 철저히 규명해 엄중 조치하겠다"면서 "중대재해처벌법 및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책임소재를 밝히기 위해 필요한 증거 자료 등을 면밀하게 확인·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euni121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