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유전, 탐사 단계서 이례적 발표…근거는 '데이터 분석 기술'
1976년 박정희 시절 '유전 발견' 발표했다 1년 만에 중단 소동
"이번엔 달라, 데이터 분석 능력↑…5개월간 검증 절차도 진행"
- 이정현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정부가 '동해에 140억 배럴의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을 공식 발표하고, 더욱 정확한 매장량과 위치 등을 조사하기 위한 탐사 개발 계획을 밝혔다. 아직 탐사 단계로 매장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이 같은 사실을 발표한 것은 이례적이다.
1976년 박정희 대통령도 연두기자회견에서 '포항 영일만 부근 해역에서 석유가 발견됐다'고 공식 발표했지만, 이후 1년 만에 '시추 중단' 사실을 알려야 했다. 탐사 시추 과정에서 경제성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런 선례를 모를 리 없는 정부가 자신 있게 소위 '선(先)발표 후(後)탐사 시추 계획'을 밝힌 데는 이전과는 다른 데이터 분석의 기술발전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4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석유공사 등에 따르면 정부는 연말부터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석유·가스 탐사 시추를 개시한다. 영일만 앞바다에 최소 35억 배럴에서 최대 140억 배럴의 에너지자원(석유‧가스)이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된 데 따른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정브리핑에서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며 "최대 140억 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저는 오늘 산업통상자원부에 동해 심해 석유 가스전에 대한 탐사 시추 계획을 승인했다"면서 "사전 준비 작업을 거쳐 금년 말에 첫 번째 시추공 작업이 들어가면 내년 상반기까지는 어느 정도 결과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탐사 단계'에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이 같은 사실을 공표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대통령의 이 같은 자신감의 근거에는 이전과는 다른 '데이터 분석'의 기술발전이 뒷받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정부는 데이터 분석 능력과 탐사 기술의 발전을 이번 '자원 발견'의 첫 요인으로 꼽았다.
산업부가 밝힌 이번 탐사·개발의 전후 과정을 보면 정부와 석유공사는 대륙붕과 천해 지역을 집중조사를 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심해 지역도 조사했지만, 뚜렷한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석유공사가 동해지역을 포함해 한반도 주변 수역에 대한 지질조사를 시작한 게 공사가 출범한 1979년부터다.
전날 윤 대통령에 이어 브리핑을 이어받은 안덕근 산업장관은 "석유공사가 그동안 서해, 남해, 동해안 쪽으로 쭉 시추했다. 시추공만 48개"라며 "동해에만 27개 시추공을 시도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다만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1988년 동해에서 4500만 배럴 규모의 가스전을 최초 발견해 지난 2004년부터 2021년까지 상업생산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산유국으로서의 명칭을 쓸 정도의 규모는 아니었다.
이런 상황 속에도 데이터는 축적됐고, 2022년에는 동해, 심해를 비롯한 모든 해역에서 탐사 작업을 수행하는 '광개토 프로젝트'도 수립했다.
특히 공사는 지난해 2월 세계적으로 평가받는 심해 평가 전문기관인 미국의 Act-Geo(액트지오)사에 17년간 축적한 동해 심해 탐사 자료를 보내 심층분석을 의뢰했다.
그 결과 Act-Geo사는 지난해 12월 동해 심해저에 대규모 가스·석유전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를 우리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밀 분석은 지진파 분석을 비롯해 해저 지형에 대한 2D·3D 분석을 거쳐 유망구조를 파악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석유공사가 갖고 있던 시추 실패 데이터가 상당한 도움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데이터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거에는 데이터에서 알 수 없었던 내용을 새롭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Act-Geo사의 심층분석 결과를 넘겨받은 뒤에도 해외·국내 전문가 등 별도 자문단을 꾸려 5개월여간 검증작업을 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본격적인 탐색 시추 작업 전 정부가 이례적으로 공개 발표를 할 수 있었던 이유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말 (Act-Geo사로부터) 평가결과는 받았지만 검증결과를 거쳐야 했다"면서 "5개월여에 걸쳐 해외·국내 전문가 등 별도자문단도 꾸려 검증작업을 했고, 확인절차를 마친 후 발표하게 됐다"고 그간의 상황을 전했다.
정부는 연말부터 정확한 매장규모와 위치를 확인하기 위한 탐사 시추에 나설 예정이다. 예상 매장 규모 중 4분의 3은 가스, 석유는 4분의 1인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매장량이 확인되고, 상업적인 시추 준비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본격적인 상업개발은 2035년이면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다.
euni121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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