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근號 산적한 난제…중동변수·수출 '아슬', 원전·에너지정책 '갑갑'

반도체 반등 속 중동 정세불안 돌출…유가·美대선·공급망 우려 커져
신규원전 제동? 미뤄지는 전기본 공개…高물가 속 전기료인상 고심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2.2/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세종=뉴스1) 심언기 기자 = 22대 총선에서 여소야대 구도가 공고해지면서 취임 100일을 갓 넘긴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정책 드라이브가 힘을 받을지 주목된다.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며 회복세를 보이는 수출은 한숨 돌렸지만,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지속되는 데다 중동 정세 불안과 환율 리스크까지 겹친 대외 경제여건 변수가 녹록지 않아 안심하긴 이르다. 원전과 전기·가스 요금으로 대표되는 에너지정책은 야당의 집중 견제가 예상돼 추진 동력을 갖기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수출 증가세 속 중동 변수 돌출…'유가·금리·美대선·中경기' 난제 첩첩산중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내다 산업부 수장으로 발탁된 안 장관은 지난 17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안덕근호(號)'는 반도체 반등 덕분에 수출 증가세를 기록하며 안정적 무역 흑자 행진을 지속 중이다. 올해 1분기 수출은 지난해 대비 8.3% 증가하며 318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산업부는 수출 호조세를 이어가기 위해 반도체, 조선, 제조업 지원에 총력전을 펴는 한편, 방산·바이오 등 신산업 분야 수출 확장을 위한 각종 대책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올해 방산 수출 200억 달러를 목표로 방산 지원 전담부서를 신설하고, R&D 자금 40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신규 원전 수주를 위해 안 장관은 체코도 직접 방문할 계획이다.

수출 반등 불씨에도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한다. 최근 이스라엘과 이란 충돌로 중동 리스크가 높아져 에너지원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경제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우려를 자아낸다.

특히 국내 물가가 두 달 연속 3%대 고공행진 중인 상황에서 석유수급 불안정성까지 커질 경우 '오일쇼크' 악몽이 우리 경제를 덮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

여기에 올해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더욱 심화돼 수출 타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크다. 바이든과 트럼프 모두 자국우선주의 기조가 뚜렷한 가운데 글로벌 핵심자원 공급국인 중국과 패권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우리나라 경제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기 어려운 점도 난제로 꼽힌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확전이 되는 등 중동 정세가 불안해지면 유가가 크게 오르고 우리나라 물가·환율도 올라 상당히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금리도 당장보다는 유가가 안정적일 경우 9월 이후에나 인하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고 전망했다.

이어 "중국 당국이 내수시장 활성화를 위해 돈을 풀고 금리를 내려 (1분기)성장률이 조금 높아졌지만, 미국과의 갈등이 심해질수록 성장률이 둔화하고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도 줄어들 수 있다"며 "트럼프 당선 시 보호무역이 보다 더 강화되고 안보 문제도 좀 불안정해질 수 있어 우리 경제에 상당한 충격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경기도 화성시 원전 계측기 전문기업인 우진을 방문,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2024.2.23/뉴스1

◇親원전·고준위특별법 총선 후 '시계제로'…高물가에 전기료 인상 시점 고심

무역·통상 등 수출산업 불확실성 증대와 함께 정부의 에너지정책 역시 궤도 수정이 불가피해져 안 장관의 리더십·추진력에 관심이 모인다. 야권의 압도적 입법부 의석수를 감안하면 각종 법안 제·개정과 예산 확보 과정에서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에너지정책 중 단연 관심을 모으는 것은 여야의 시각차가 극명한 원전 정책이다. 탈(脫)원전 정책 폐기를 선언한 후 원전 친화적 정책을 밀어붙여 온 정부여당은 야당의 강력한 견제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시험대에 오른 윤석열 정부 후반기 에너지정책의 가늠자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이 될 전망이다. 전력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전기본에 신규 원전 4기가량 건설이 포함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여당의 총선 패배 후 신규 원전 규모가 2기가량으로 조정될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산업부는 올 초 제11차 전기본 초안을 공개할 예정이었지만 총선거 일정을 감안해 일정을 다소 조정했다. 야당의 비토가 크고 국민 여론도 엇갈리는 신규 원전 건설계획의 공개 시점은 정무적 판단이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5월 중 초안 발표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전망도 있다.

원전 정책과 맞물린 고준위방사성폐기물 특별법 제정도 순연이 불가피하다. 특별법 제정 필요성에 대해선 여야 모두 이견이 없지만, 현재 가동 원전의 운영기간 한계를 기준으로 처리시설 및 부지를 마련해야 한다는 야권과 신규 원전 및 가동원전 수명 연장까지 감안해 처리규모를 확정해야 한다는 여권의 시각차가 크다.

원전 업계는 21대 국회 막바지 특별법 제정의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다. 21대 국회에서 계류 중인 고준위특별법이 자동 폐기되면 22대 국회에서 법안 발의 및 논의과정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202조 원의 누적적자를 기록 중인 한국전력공사와 가스공사 부채 해결을 위해 안 장관이 에너지요금 조정 카드를 언제 꺼내 들지도 관건이다. 한전 정상화 및 에너지생태계 정상화, 미래 전력망 투자 등 산적한 과제를 감안하면 부채 해소가 시급하지만, 고물가에 시름하는 경제와 싸늘한 국민 여론에 결단이 쉽지 않다.

에너지업계 한 관계자는 "총선 이후 몸을 사리는 관가 기류가 뚜렷하다. 현 정부 이후까지 생각하면 쟁점이 큰 정책에 깊이 손을 담그는 데 부담이 느끼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며 "원전은 차치하더라도 다른 전력 정책이라도 빨리 불확실성이 해소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한편 정치권 낙하산 인사가 그 어느 때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돼 온 산업부 산하 공기업·공공기관 수장 교체도 관심을 모은다. 확연히 기운 여소야대 지형과 높아진 여론 부담에 기류 변화를 예상하는 의견도 있다. 해당 업계에선 산업부 출신이나 관련 전문가, 내부 승진인사 기용이 늘어날 수 있는 기대감이 커졌다고 한다.

eonki@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