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을 전무로 강등…한미약품 경영권분쟁 2라운드 전말

임종훈, 한미약품 박재현 대표 직급 사장서 전무로 강등
"지주사서 대표 직급 강등 인사는 '원천무효·위법' 소지"

한미약품 본사.(한미약품 제공)/뉴스1 ⓒ News1

(서울=뉴스1) 황진중 기자 = '모녀 대 형제'의 경영권 분쟁으로 한차례 홍역을 치른 한미약품그룹이 그룹 주력 기업인 한미약품의 독자 경영 선언을 계기로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이번 논란은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임주현 부회장·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등 3인 연합이 기존에 이미 이사회 과반을 확보하고 있는 한미약품을 독자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을 시도하면서 불거졌다. 이들은 추후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주도권을 되찾을 계획이다.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의 임종훈 대표는 이에 반발해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이사 직급을 사장에서 전무로 강등하고 업무 범위를 축소했다. 한미약품 측은 해당 조치가 '원천무효·위법' 소지가 있다고 반박했다.

◇한미약품 "지주사의 박재현 대표 직위 강등 '원천 무효·위법' 소지"

한미약품은 29일 임종훈 대표이사가 박재현 대표이사의 사장 직위를 전무로 강등한 것과 관련해 "아무런 실효성이 없으며, 오히려 원칙과 절차 없이 강행된 대표권 남용의 사례"라면서 "지주사 대표의 인사발령은 모두 무효이며, 대표의 권한과 직책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한미약품은 그동안 지주사에 인사와 법무 업무 분야를 위탁하고 수수료를 내왔다. 앞서 박재현 대표이사가 전날 한미그룹 인트라넷에 본인 명의로 인사를 내면서 한미약품 경영관리본부 안에 인사팀과 법무팀 등을 신설을 알렸다. 한미약품이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해 독자 경영을 하겠다는 선언이자 신호탄이었다.

한미약품그룹 대주주 주요 등기이사 등재 여부와 직책·직위·담당업무. 2024. 8. 29/뉴스1 김지영 디자이너

박재현 대표가 한미약품 독자 체계와 관련한 인사를 낸 후 1시간 뒤 인트라넷을 통해 임종훈 대표가 박 대표 직급을 전무이사로 강등하고 업무를 국내사업본부·제조본부·신제품개발본부 등에서 제조본부만 담당한다는 인사를 냈다.

한미약품 측은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의 대표는 그동안 계열사의 인사, 법무 등 경영지원 관련한 스텝 기능을 수탁받아 용역 업무를 대행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라면서 "특정 임원에 대한 강등을 단독으로 결정하려면 사내 인사위원회 등 법적인 절차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계열회사 임직원에 대한 직접적인 인사 발령 권한이 없다"고 전했다.

한미사이언스 지분 절반가량을 확보한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 송영숙 한미 회장, 임주현 부회장 등 3인 연합 측은 이번 한미약품의 독자 경영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한미사이언스 측은 한미약품 대표의 독립 시도에 대해 반대한다고 충분히 경고했다고 전했다.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 어쩌다 여기까지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은 지난 2020년 8월부터 불씨가 살아났다. 임성기 한미약품그룹 선대 회장이 작고하면서 오너일가에 상속세 5400억 원이 발생했다.

이전까지 오너가 장남인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가 한미약품 부총경리(부사장), 총경리(사장) 등을 지내고 2009년 한미약품과 지주사 한미사이언스로 나눠지기 전에 한미약품 등기임원(사장), 한미사이언스 단독대표 등에 오르는 등 업계는 임종윤 이사가 오너 2세 경영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임성기 선대 회장 작고 후 송영숙 회장이 임 선대회장의 자리를 이어받아 한미약품그룹을 이끌면서 임종윤 사내이사는 경영권에서 한발 물러선 모양새를 보였다.

송영숙 회장은 지난해 3월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신임 사내이사로 박재현(제조본부장), 서귀현(R&D센터장), 박명희(국내사업본부장)를 선임했다. 윤영각, 윤도흠, 김태윤 신임 사외이사 선임 안건도 의결했다. 이어 이사회를 개최해 새 대표이사로 박재현 제조본부장을 선임했다.

지난해 3월 정기 주총과 이사회를 통해 꾸려진 인사가 한미약품 전문경영인 체제 구축을 위한 주춧돌인 셈이다.

지난해 12월 송영숙·임주현 등 모녀 측이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의 통합을 추진하자 임종윤·종훈 형제 측이 반발하면서 경영권 분쟁은 본격화됐다. 모녀 측이 통합을 추진한 이유는 한미약품그룹 성장과 오너가에 부과된 상속세 해결 등을 위해서인 것으로 전해진다.

임종윤·종훈 형제 측이 한미사이언스 개인 대주주 신동국 회장의 지지를 얻어 정기 주주총회에서 모녀 측을 누르고 승리했다. 이들은 이후 해외 투자자 등을 찾아 투자 유치에 역량을 집중했지만, 약 반년 동안 이뤄진 것은 달리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오너가 상속세 이슈로 오버행 논란 등이 지속 부각됐다.

투자 유치 등이 지지부진하자 신동국 회장은 형제 측에 등을 돌리고 모녀 측과 3인 연합을 맺었다. 모녀 측과 지분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모녀 측은 1644억 원 규모 해당 계약으로 상속세를 납부할 수 있는 재원을 확보했다.

◇3인 연합 임시 주총 요구…한미약품 중심 전문경영인 체계 구축

3인 연합은 강력하다. 공시에 따르면 모녀와 신 회장이 보유한 지분은 32.74%다. 한미약품은 특별관계자 등의 지분을 합쳐 과반을 확보했다고 전했다. 형제 측이 가진 지분은 20.94%다. 특별관계자 등을 더해 29.07%로 집계된다.

3인 연합은 지난달 29일 한미사이언스의 임시 주주총회 개최를 요구했다. 의안은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구성원을 12명으로 변경하는 1호 의안과 신규 이사 3인(사내이사 2인, 기타 비상무이사 1인)을 선임하는 2호 의안이다. 임시 주총은 청구 시점으로부터 두 달여 뒤에 개최된다.

이사회가 임시 주총을 개최하지 않을 시 3인 연합은 법원에 임시 주총 개최를 허가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관련 절차를 밟기 위해 1~2개월가량이 더 필요하다.

한미약품 이사회는 기존 송 회장 시절 임명된 사내이사 박재현, 박명희와 사외이사 윤도흠, 윤영각, 김태윤과 신동국 회장 등 6명으로 10명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임종훈 대표가 박재현 대표의 직급을 사장에서 전무로 강등하는 등 3인 연합에 반발하는 조치를 하고 있지만 대표이사 해임 등은 이사회 과반 차지가 어려워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상 박재현 대표가 한미약품에서 경영을 계속 총괄할 수 있는 셈이다.

3인 연합은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를 장악하기 위해 임시 주총 등을 추진하고, 전문경영인 박재현 대표를 통해 핵심 사업회사 한미약품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약품은 올 초부터 시작된 거버넌스 이슈 등으로 주주와 임직원들의 피로도가 높아진 상황을 감안해, 조직을 빠르게 안정화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또 지난 3월 이후 다소 위축됐던 한미 신약 개발 연구개발(R&D) 기조를 복원하기 위한 시스템 정비부터 빠르게 진척시켜 나갈 계획이다. 한미약품은 오는 9월부터 연이어 열리는 글로벌 학회에 릴레이로 참가해 그동안 축적해 온 R&D 성과를 선보인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그동안 한미약품은 그룹의 핵심 사업회사로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와 손발을 맞춰왔다"면서 "이제 새롭게 시작되는 한미약품의 전문경영인 중심 독자 경영 성과가 지주회사 등 전사의 선진적 경영 구조 확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ji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