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전면 휴진 예고에…전공의들 "이미 늦었다"

"2020년 모습들 아직 기억…사직서 제출, 교수들 책임 커"

서울 시내의 대형병원에서 한 의료진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2024.5.14/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김규빈 강승지 기자 = 서울의대 교수들이 집단 휴진을 결의하면서 오는 17일부터 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서울시보라매병원, 서울대병원 강남센터가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제외하곤 모두 문을 닫는다.

'일주일에 하루' 휴진을 결정해도 환자에게 공지를 제대로 못했다며 병원에 나와 진료를 보던 교수들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전공의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전날 '전면 휴진'을 발표하며 정부에 내놓은 발표문에 따르면 휴진을 중단하는 조건 중 가장 첫번째는 '전공의들에 내려진 진료유지명령 및 업무개시명령 완전 취소'다.

비대위는 "정부는 아직까지도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하며 강제 노동을 거부한 젊은이들을 범법자로 취급하고 있다"며 "수련생들이 병원을 떠난 후 중증, 응급 환자의 치료가 지연되는 것이 비정상적인 시스템 때문이 아닌, 전공의들이 의사의 책무를 저버렸기 때문이라고 호도한다. 이에 비통한 마음으로 전면 휴진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4일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도 의대 증원이 확정될 경우 하기로 한 일주일 집단 휴진 계획을 철회하면서 "전공의들에게 위해가 가해진다면 행동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한 의대 교수는 "서울의대 교수들의 집단 휴진 물결이 다른 대학들까지도 퍼져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전공의는 우리의 과거이자 미래다. 지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7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24.6.7/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하지만 전공의들은 교수들의 이런 움직임을 썩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미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정형외과 3년차 사직 전공의 A씨는 뉴스1에 "다 결정되고 난 후에 지금에서야 도대체 뭐하는지 잘 모르겠다"며 "전공의들은 생활고를 겪으며 한참 투쟁할 때는 멀리서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다가 이제서야 나서서 휴진한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정부가 한참 면허정지 처분 내리고 할 때는 몸사리고 있다가 이제 분위기가 유해지니 나서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의대 교수들은 지난 4월부터 집단 사직과 주 1회 휴진 등을 이야기하며 정부를 압박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진 못해 왔다.

정부가 의대 증원 확정 발표를 하면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이 모두 일주일 휴진을 하겠다고 했던 엄포도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A씨는 또 교수들에 대한 원망도 내뱉었다.

그는 "전공의들 생활비 지원도 개원의나 의국 선배들이 해줬지 교수들이 해준 경우는 거의 없다"며 "교수들이 말하는 '전공의 사태'는 전공의들이 돌아가지 않아서 본인들이 당직 더 서게 되는 사태를 말하는 것 같다. 전공의 위해주는 핑계대면서 휴진한다고 하는 게 화가 날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수들의 휴진은 전공의들의 복귀에 아무 영향도 안 끼칠 것 같다"며 "오히려 반감만 늘어서 더 병원으로 복귀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3년차 전공의 B씨가 교수들에게 전한 편지에도 이들의 분노는 고스란히 담겨 있다.

B씨는 "교수님들께서는 행정처분이 있으면 싸워주겠다고 하지만 여러분들의 행동은 지나치게 늦었다"며 "2월, 3월에 빠르게 행동했다면 작금과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어쨌든 환자 위주로 생각하긴 하니 망설여졌겠지만 강력한 목소리를 내기 위한 카드조차 사용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여러분들의 밥그릇 지키기, 현실적인 상황, 다 잘 이해한다. 그렇지만 여러분에게 배우는 의대생들과 전공의들이 여러분들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지는 생각해 봤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2020년에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려다가 실패한 사건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본과의 교수님들께서 어떠한 모습을 보였는지도 잘 기억하고 있다"며 "사직서를 제출하기에 이른 것은 교수님들의 책임이 매우 크다. 지난 4년의 시간 동안 높으신 분들께서 보여준 시스템 개선 의지와 노력이 없음을 눈앞에서 아주 잘 보았다"고 했다.

이어 "향후 처분에 대한 보호는 교수님들께서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어차피 법리적으로 처분은 위법이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는 달라질 게 없다"고 말했다.

물론 교수들의 움직임에 마지막 희망을 거는 전공의들도 있다.

한 사직 전공의 C씨는 "일단 늦은 건 맞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뭔가 해야 하는 게 맞을 것 같다"며 "지금 개원가 분위기는 서울대 교수들이라도 지금 파업을 해야 나머지 병원들도 따라 가고 개원가 원장들도 파업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사직 전공의 D씨는 "너무 늦었지만 이번에 외친 말만큼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만약 이번에도 서울의대나 의협이 총파업 결정을 하고 실행에 제대로 옮기지 못한다면 이제 의사들은 어떤 일이 생겨도 힘을 합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sssunhu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