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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사람이 없다"…삼척 사고로 드러난 농촌 현실①

인력사무소 손 뻗지만…외국인 노동자 대부분 미등록업체
작은 규모 농가는 일 구하러 다녀야 하는 모순

(서울=뉴스1) 류석우 기자, 이봉규 기자 | 2019-07-25 05:00 송고 | 2019-07-25 10:28 최종수정
주기철 기자/뉴스1 DB © 뉴스1
주기철 기자/뉴스1 DB © 뉴스1

"일할 사람이 없다."

지난 22일 강원 삼척 승합차 전복사고로 한국인 2명과 태국국적 노동자 2명이 숨졌다. 충남 홍성군 일대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7명과 태국국적 노동자 9명이 6시간이 넘게 걸리는 경북 봉화군으로 일을 하러 가던 중에 일어난 참사다. 사고 이후 홍성에서 만난 농민들은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23일 저녁 이번 사고로 숨진 운전자 강모씨(62·여)와 앞 좌석에 탑승했던 정모씨(61·여)의 빈소를 찾았다. 이곳에서 만난 홍성 농민들이 지적하는 점은 대동소이했다. 일이 많을 때(농번기) 일손이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홍성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A씨는 "이젠 정말 젊은 사람들이 없다. 있어도 일을 안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A씨는 자신이 말하는 젊은 사람이란 '60대 이하'라고 기준까지 덧붙였다. 70~80대 고령층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농촌에서 일을 하는 대부분이라는 설명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농가인구는 231만4982명이다. 이 중 60세 이상 인구가 135만172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80세 이상은 23만5000여명으로 10%에 육박한다.  

충남 청양군에서 양파농사를 짓는 이모씨(57)는 "한참 바쁜 농번기에는 일할 사람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이런 사정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를 자주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주로 결혼 이민자를 통해 부모나 지인을 소개받는 방식으로 고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농촌의 현주소다.
◇인력사무소 손 뻗지만…외국인 노동자 대부분 미등록업체

일할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농민들이 찾는 건 '인력사무소'(직업소개소)나 아는 사람을 통해 구하는 방법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대부분이고 그마저도 한국 사람은 주로  70~80대 노인뿐이다. 문제는 외국인 노동자의 대부분은 미등록 인력업체 소속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기준 충남 홍성군에 등록된 직업소개소는 38곳이다. 일손이 필요한 곳에 인력을 소개하는 인력사무소로 등록하려면 사무실은 물론 자격증도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등록을 하지 않고 알음알음으로 '인력풀'을 구성해 운영하는 업자들도 많다.

홍성군 내에서 등록 직업소개소를 운영하고 있는 B씨는 홍성에 있는 등록 직업소개소 중에 외국인 노동자를 투입하는 곳은 거의 없다고 했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거의 불법체류자가 많다"며 "(이런 이유로) 따로 관리하는 미등록업체들이 많다"고 말했다.

B씨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미등록 브로커들은 농장주 등과 개인적으로 연락하며 사람을 소개해주면 인당 20만~30만원씩 받는다. 이렇게 활동하는 브로커들이 최소한 등록된 업체들보다는 많다고 했다. 또 여기에 일손이 급해 다른 지역의 농장주가 직접 트럭을 타고 이들을 데리러 오는 경우도 있다고 B씨는 전했다.

당장 일손이 급한 농민들에게 이들이 불법체류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A씨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당장 (농사일이) 돌아갈 수가 없다"며 "불법인지 아닌지 생각할 겨를 없이 아무 인력사무소나 연락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알음알음으로 연결되는 미등록업체의 특성상 이들을 단속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홍성군청 관계자는 "가끔 소개로 자기네들끼리 모여 다른 지역으로 농사일을 다닌다는 이야기가 들리긴 했다"면서도 "행정기관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추적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군청에 따르면 이번에 삼척에서 사고가 난 운전자 겸 모집책인 강씨도 미등록된 상태였다.

 22일 충남 홍성군에서 경북 봉화군까지 파종 작업을 하러 가던 중 강원 삼척에서 전복사고로 4명이 숨지는 등 모두 1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강원도소방본부 제공) 2019.7.22/뉴스1 © News1 김경석 기자
 22일 충남 홍성군에서 경북 봉화군까지 파종 작업을 하러 가던 중 강원 삼척에서 전복사고로 4명이 숨지는 등 모두 1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강원도소방본부 제공) 2019.7.22/뉴스1 © News1 김경석 기자

◇작은 규모 농가는 일을 '구하러' 다녀야 하는 모순

이번 사고 당시 홍성 일대에서 60~70대 할머니들과 태국국적 노동자들을 모아 경북 봉하군으로 향했던 강씨는 이런 일을 수십 년 동안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10년 전인 2009년에도 다른 지역에 농사일을 도우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비슷한 사고를 냈다는 것이 밝혀졌다.

강씨의 동네 주민들은 생각이 달랐다. 한 동네 주민은 "규모가 넓은 농가는 괜찮지만 작은 곳은 그거가지고 먹고 살 수가 없다"며 "이런 일도 하고 저런 일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강씨는 실제 동네에서 농사도 지으면서 이 일을 계속해왔다.

강씨처럼 음지에서 70대 노인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을 데리고 다른 지역으로 일손을 도우러 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통계는 없지만, 전국 농촌에 넓게 퍼져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강씨와 함께 숨진 정씨의 아들은 "이렇게  (타지역으로) 가는 사람이 홍성에만 있지 않다. 강원도에서도 우리 지역으로 온다"며 "이런 건 동네 사람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등록된 직업소개소를 운영하고 있는 B씨도 "현재 홍성에서 활동 중인 브로커들은 홍성뿐 아니라 예산·군산·보령·태안 등 다양한 지역에 인력을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홍성에서도 다른 지역에서 사람을 불러다 쓰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강씨의 동네 주민들은 입 모아 "안타깝다"고 말한다. "정말 열심히 살았어. 얼마나 잘했는데. 주위 사람도 잘 챙기고 좋은 일도 많이 했다고…" 한 동네 주민이 남긴 말이다.


sewryu@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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