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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스토리]①잠은 하루 2시간…'아버지'라는 이름의 무게

'타팰' 인근 편의점서 일하는 50대 알바 "고3 아들 교육비 때문에…"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2019-05-08 08:00 송고 | 2019-05-09 09:04 최종수정
편집자주 편의점은 '2019년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최저임금 인상, 소상공인 폐업, 청년 실업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모순이 집약된 공간이다. 취업하지 못한 20년 청년도, 실직한 50대 가장도 편의점에서 '알바'를 한다. 올해도 최저임금 인상 수준을 놓고 '자영업자'인 편의점주와 아르바이트생 간 대립이 예고돼 있다. 24시간 환하게 빛나는 편의점 안에도, 물론 희망은 있다. <뉴스1>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만나 이들이 남몰래 품은 '희망'을 들어봤다.
편의점 /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편의점 /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저는 오늘도 일합니다."

편의점 달력엔 빨간 날이 없다. 상당수 편의점이 24시간 365일 운영된다. 편의점 불을 24시간 밝히는 주역은 '알바'다. 가정의 달 5월 연휴 기간(5월4일~6일)에도 아르바이트생들은 어김없이 출근했다.
김철수씨(가명·54)도 연휴 내내 일했다. '어린이날'인 지난 5일 오후 10시 김씨는 근무지인 편의점에 도착했다. 그는 편의점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조끼를 입고 유통기간이 지난 삼각 김밥·도시락 등을 골라냈다. 편의점 창밖 건물에는 불이 들어와 별처럼 빛났다. 강남구 도곡동의 랜드마크라 불리는 주상복합아파트 '타워팰리스'다. 김씨는 타워팰리스 인근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다.

"다행히 술 먹고 행패를 부리는 손님은 거의 없어요. 다만 젊은 친구들이 라면을 좀 깨끗이 먹었으면 좋겠어요. 바닥에 국물을 자꾸 흘리는데 치우는 저도 힘들고 무엇보다 그것을 보는 다른 손님들도 기분이 좋지 않을 거고…"

◇'투잡'하는 50대 편의점 알바, 2시간 자고 견딜 수 있는 이유…

김씨의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2시간. 그는 '투잡(두 가지 직업)'을 하고 있다. 오전에는 강남의 한 음식점에 출근해 주방일을 한다. 퇴근 후 오후 10시까지 이곳 편의점으로 출근해 9시간 동안 일한다. 김씨의 하루 근무시간대는 오전 9시~오후 7시(음식점), 오후 10시~다음날 오전 7시(편의점)다.
잠은 대체 언제 자는 걸까. "음식점에서 일할 때 1시간 정도 휴식 시간을 줍니다. 휴식시간 때 바로 뻗어버리지요. 그리고 퇴근 후 근무지와 집을 오가다보면 1시간 정도 짬이 생겨요. 짬 생기면 바로 잠 들어버리지요."

서울시내의 한 편의점 /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서울시내의 한 편의점 /뉴스1 © News1 허경 기자

그는 일주일에 하루 정도 쉰다. '쉬는 날은 종일 자는 날'이다. 김씨는 이처럼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며 한 달에 400만~ 500만원을 번다. 하루 2시간 자고 일하며 김씨는 마침내 '가장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김씨를 지탱하는 것은 희망이다. 고3 아들이 그의 희망이다. 한 달 수익 중 상당 부분을 아들 사교육비로 지출한다고 한다. 좋은 대학을 가야 평균적인 삶을 보장할 받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 달 사교육비가 100만원 정도 되느냐'고 묻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택도 없는 소리"라고 잘라 말했다.

"(사교육비가) 100만원을 웃돌 정도로 많이 듭니다. 엄청 많이! 우리나라 모든 분야 통틀어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할 것이 교육입니다. 비정상적인 교육 시스템인 줄 알면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대기업 재직 중 구조조정…"한해 실직자 100만명 이상"

김씨는 전 국민이 이름을 아는 굴지의 기업에서 10년 이상 근무했다. 주로 사무·관리직으로 일했다. 어느 날 회사는 사정이 어렵다며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김씨는 '한직'으로 밀려났다. 사실상 '나가달라'는 의미였다. 버티던 김씨는 지난 2005년 여름 퇴사했다.

구조조정을 당한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그는 "대기업이야말로 허울만 좋은 비정한 조직"이라고 털어놨다. 그해 여름 퇴사 후 노후가 비교적 보장된 전문직에 도전했다. 약 4년간 감정평가사 자격시험을 공부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여의도 한 증권사에 입사해 계약직 투자상담사로 일했다. 그러나 고용이 보장되지 않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몇 년 전 증권사에서 나온 김씨는 편의점 문을 두드리고선 ‘이력서’를 제출했다.

김씨의 사례는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고용보험 취득상실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불황형' 실직자는 104만2440명이다. 실직자 규모가 4년 연속 100만명대다. 이들은 치킨집(사업)을 하거나 자격증을 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성공은 보장되지 않는다. 또 다시 실패하거나 안정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실직한 이들의 최종 종착지는 편의점이다. 편의점 문은 24시간 누구에게나 열려 있기 때문이다. 매년 편의점 수가 늘어 아르바이트생 채용도 끊기지 않는다. 채용 조건도 까다롭지 않은 편이다. 학력이 낮은 사람도, 구조조정당한 중년도 일할 수 있다. 최근 2년간 최저임금(시급)이 29% 오르는 등 아르바이트생 처우도 개선되고 있다. 정규직은 아니더라도 큰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쫓겨날 걱정도 없다.

◇세대차 넘어 공유하는 '현실'…편의점 알바도 워라밸 가능할까?

김철수씨는 술 취한 타워팰리스 주민을 손님으로 맞으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같은 시간 인근 다른 편의점에선 20대 청년이 일하고 있었다. 취업하지 못한 청년이다. 이들은 세대 차이를 넘어 같은 '현실'을 공유하고 있었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을 보장하는 직장에서 일하기 힘든 현실을 말이다.


mr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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