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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잊은 노량진의 열아홉 "가족 대신 시험 합격"

공시생·재수생 등 잔류…역귀성 이어져 노량진은 '만남의 광장'
주변 식당·독서실도 발맞춰 '푸른꿈 응원'…"합격해서 떠나길"

(서울=뉴스1) 황덕현 기자 | 2019-02-04 08:00 송고 | 2019-02-04 10:50 최종수정
© News1 구윤성 기자
© News1 구윤성 기자


명절 연휴 시작을 앞둔 1일 아침, 김훈기씨(19)는 어김없이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의 독서실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슬리퍼에 운동복 차림이 김씨가 선택한 명절 복장이다.
김씨는 지난해 '불수능'(어려운 수능시험)으로 대학 입학이 좌절된 뒤 1월 중순 노량진 고시촌 학원가에 자리를 잡았다. 김씨는 올해 설 연휴 내내 재수학원을 지킬 계획이다. 수업이 없는 설 당일에도 자습할 예정. 김씨는 "수능은 한참 멀었지만 부모님 볼 면목이 없고, 마음을 다잡는 각오로 귀성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기자와 이야기하는 김씨 손에는 아침부터 고카페인 음료수가 들려있다.

김씨와 같이 학원가 잔류를 선택한 학생들로 노량진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특히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해 갓 성인이 된 열아홉살 수험생들의 경우 집을 떠나 타지에서 보내는 첫 연휴인 만큼 각오가 남다르다.

앳된 얼굴의 이윤지씨(19)도 김씨처럼 귀성을 포기했다. 대전 출신인 이씨는 수능시험 직후 곧바로 노량진에 자리를 잡고 9급 공무원 준비에 돌입했다. 외동인 이씨는 2020년까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남들보다 빨리 사회에 진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국립대에 합격했지만 청년 취업난이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을 감안해 승부수를 일찍 띄웠다는 것이다.


이씨는 "어차피 친척들끼리도 잘 모이지 않아서 집에 내려가봤자 특별한 명절분위기는 안난다"면서 "부모님 얼굴은 고교 졸업식때 많이 보고 왔고, 이제 공무원 합격으로 보답할 차례"라면서 종종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하루이틀 정도는 쉬어도 되지않느냐'는 기자 질문에 이씨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별로요"라고 짧게 대답했다.
수험생 '잔류'가 많아지자 상권도 발맞춰 운영을 이어가는 추세다. 인근 식당과 독서실도 설 당일까지 ’상시근무체제'를 이어가는 분위기다.

노량진역 컵밥거리 뒷골목 A독서실도 설연휴 당일에 문을 열기로 결정했다. 이 독서실 총무이자 노량진 생활 2년차인 이모씨(26)는 "학생들 문의가 이어져서 독서실 측이 이에 응한 것으로 안다"면서 "남아서 공부하는 모든 학생이 빨리 합격해 떠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각종 스터디 카페와 학원 자습실 등이 설 연휴 내내 문을 열 계획이다. 한 스터디 카페는 아예 이기간 신규가입한 회원에게 특전을 주겠다는 홍보문구도 내놨다. 이 카페 주인 A씨는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데 이왕이면 합격해서 떠나길 바란다"면서 "설 연휴에 찾는 학생들에게는 쿠키라도 하나씩 더 대접할까 한다"고 말했다.

한편 노량진, 신림 등 고시촌 학원가에는 주말동안 역귀성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31일 신림동을 찾은 조모씨(54)는 재수 공부를 하는 자녀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조씨는 학원 점심시간에 맞춰서 딸과 식사를 하는 등 이틀동안 4번의 짧은 '식사 만남'을 가진 뒤 고향으로 내려가 차례를 지낼 계획이다.

조씨는 "딸이 좋아하는 돼지갈빗집을 예약해뒀다"면서 "이렇게 (노량진 고시촌에서) 설을 보내는 게 이상하지만 본인이 원하는 대학 합격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돕는 수 밖에요"라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컵밥 거리 인근에서 기다리던 조씨는 딸이 나타나자 손을 꼭 잡고 자리를 떠났다. 


ac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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