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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여성혐오 닮은꼴"…국경 넘어 연대하는 페미니스트

日페미니스트, 트위터 내 스토킹·협박 시달리기 일쑤
양국 여성, 혜화역 시위·여성차별에 '해시태그'로 연대

(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2018-07-29 07:30 송고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일본 여성의 인권은 말라죽었습니다. 예쁜 언어와 얌전한 몸가짐을 강요당하고, 여성은 쓸 수 없는 명사도 있습니다."
"일본 여성들은 입을 열어 자신의 경험담을 말할 자유, 피해사실을 고발할 자유부터 훼손당하고 있습니다."

지난 20일 오후, 한국어로 일본 내 성차별을 고발하는 트윗이 똑같은 해시태그를 단 채 별안간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와 가까스로 싹을 틔우기 시작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기 위해 한일 여성들이 함께 뭉친 것이다. 성평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국경을 넘고 있는 가운데, <뉴스1>은 미투 운동, 혜화역 시위 등 다양한 사안에서 연대하는 한일 여성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익명으로 성폭력 폭로하면 '거짓말쟁이' 비난받아"

현재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SNS는 페이스북도, 인스타그램도 아닌 트위터다.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남녀노소가 트위터를 즐겨 이용한다. 2015년에는 일본이 전세계 트위터 가입자 증가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용자 수가 많은 만큼 트위터를 통해 페미니즘과 관련된 화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여성도 적지 않다. 성폭력을 과시하거나 불법촬영물을 게시하는 계정을 찾아내 신고하거나, 범죄 예방을 위한 정보를 공유하고 성차별에 상처받은 여성들을 격려하는 등의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 중 대다수는 신상정보를 숨긴 익명 계정을 사용한다. 사는 곳을 특정해 인터넷상에 퍼뜨리거나 집요하게 욕설을 퍼붓는 등의 스토킹 피해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다.

일본인 A씨는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전용 계정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며 "신상을 밝히지 않거나 계정을 삭제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또 "불법촬영 계정을 신고해도 좀처럼 정지되지 않는다"며 "여성들은 성범죄 관련 뉴스를 접하고 화를 내는 트윗을 하는 것만으로도 계정을 정지당하곤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계정을 익명으로 운영하면) 성폭력 피해를 고발했을 때 '거짓말쟁이', '사실이라면 얼굴과 이름을 밝혀라'라는 말을 듣는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미투 운동' 초기, 익명으로 가해자를 고발했던 여성들에게 쏟아졌던 비난과 판박이처럼 닮았다.

트위터상에서 일본 여성들의 입을 막는 것은 이같은 폭력뿐만이 아니다. 성범죄에 분노하는 내용의 트윗을 한 여성들의 계정이 잇따라 정지되는가 하면, 페미니즘 관련 해시태그를 삽입한 트윗이 제대로 확산되지 않기도 한다.

A씨는 "해시태그를 쓴 일본 페미니스트의 트윗이 본인에게 보이지 않게 되거나 리트윗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며 "해시태그 자체도 '실시간 트렌드'에 잘 노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야마구치 노리유키 전 TBS 워싱턴 지국장의 성폭력 가해를 폭로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이토 시오리씨를 지지하는 '#Japanssecretshame' 해시태그 운동, 일본의 편의점에 도색잡지 대신 기저귀를 더 많이 비치하자는 해시태그 운동 등이 이어졌지만, 제대로 노출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지난 20~21일 진행된 '트위터 재팬 여성탄압 중단' 해시태그 운동. © News1
지난 20~21일 진행된 '트위터 재팬 여성탄압 중단' 해시태그 운동. © News1

◇"트위터 내 페미니스트 탄압 중단해야" 해시태그 운동 봇물

이같은 사실이 한국의 트위터 사용자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6월 무렵이다. A씨의 트윗이 '일간베스트 사이트'에 게재돼 조롱당하고 있음을 알게 된 한국인 B씨가 A씨에게 손을 내밀었다.

B씨는 "'일본의 페미니스트와 연대합니다'(日本のフェミニストと連帯します)라는 해시태그 운동을 한국에서 먼저 시작하자 일본에서도 '한국의 페미니스트와 연대합니다'라고 화답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페미니스트들은 곧이어 지난달 9일 열린 2차 혜화역 시위를 앞두고 '6월 9일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0609不当撮影偏捜査糾弾デモ)', '6월 9일 우리는 바꾼다(#0609Wecanchange) 등의 해시태그를 사용해 참석자들을 응원하기도 했다.

곧이어 지난 20~21일 이틀간 '#트위터재팬_여성탄압_중단하라' 해시태그 운동이 한일 양국에서 이뤄졌다. 일본 트위터 서비스에서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만으로 계정이 정지되고 있는 데 대해 트위터 일본 지사에 항의하는 취지였다. 하루는 한국어로, 하루는 일본어와 영어로 진행된 해당 해시태그 운동에서는 일본 사회 내부의 성차별 사례가 수없이 폭로되기도 했다.

해당 해시태그 운동을 기획·주도한 B씨는 "한국과 일본은 성차별의 양상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임금격차, 저출산, 여성의 가사 부담율 등의 통계를 보면 양국이 1, 2위를 다투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한일 여성끼리 공감하고 서로 도울 수 있는 부분도 많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A씨는 "이 해시태그 운동을 통해 트위터 재팬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 성과"라며 "한국의 페미니스트가 일본어를 사용한 트윗도 마찬가지로 규제되기 쉽다는 것도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많은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이 응원해줬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었다"며 "아직 문제가 많지만 앞으로도 여성의 자유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는 소회를 밝혔다.


m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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