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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세 나치조력자, 하루도 실형 살지 않고 사망

'아우슈비츠의 회계원'으로 불렸던 오스카 크뢰닝
살인방조 혐의로 징역 4년형 선고받아

(서울=뉴스1) 최종일 기자 | 2018-03-13 14:41 송고
'아우슈비츠의 회계원'으로 불렸던 나치 친위대(SS) 출신의 오스카 그뢰닝 © AFP=뉴스1

'아우슈비츠의 회계원'으로 불렸던 나치 친위대(SS) 출신의 90대 남성이 살인방조 혐의에 따른 징역형을 하루도 살지 않고 사망했다고 독일 언론들을 인용해 AFP통신이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오스카 그뢰닝(96)은 2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1942년부터 2년여 기간 동안 나치가 폴란드에 세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수용자들로부터 빼앗은 돈을 계산해 독일 베를린으로 보내는 일을 했다. 또 수용자들이 가축 운반 시설에 실려 철도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할 때 수용자들을 분류하는 일을 맡기도 했다.

그뢰닝은 경비원으로 근무하던 기간 아우슈비츠에서 목숨을 잃은 유대인 30명에 대한 살인 방조 혐의로 2015년 7월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그의 변호사는 90대 노인의 수감은 '생명권' 위반이라고 주장했지만, 독일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2월 이를 거부하고 그뢰닝이 형을 살아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법원 의료진은 그뢰닝이 적절한 건강관리를 받는다는 조건 하에 수감생활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지만 그뢰닝은 수감되지 않았고 결국 하루도 옥살이하지 않고 사망했다.

1940~1945년에 아우슈비츠에선 약 100만명의 유대인들이 사망했다. 하지만 2차 대전에서 살아남은 6500명의 친위대원 가운데 기소된 이는 5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전직 나치 친위대원을 상대로 한 시고의 법률적 근거는 2011년 유대인 수용소에서 경비원으로 일했던 존 데먀뉴크에 대한 역사적 판결이 나오면서 바뀌었다. 데먀뉴크는 수용자들에 대한 학대가 아니라 폴란드 소비보르 수용소에서 근무했다는 이유로 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판결은 그뢰닝의 기소로 이어졌다. 재판을 받을 동안 그뢰닝은 '도덕적 유죄'를 인정했지만, 그에 대해 판결을 내리는 것은 법원의 몫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무척 유감이다"며 "누구도 아우슈비츠에는 몸담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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