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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거목' 김동리·김규동, 전·현 변협회장 2세 행보에 재조명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7-02-27 17:48 송고 | 2017-02-27 18:20 최종수정
김규동(왼쪽) 시인과 김동리 소설가(창비 웹사이트 캡처)©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김규동(왼쪽) 시인과 김동리 소설가(창비 웹사이트 캡처)©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변론 과정에서 제기된 '막말 논란'으로 전직 대한변호사협회장인 김평우 변호사에 대해 김현 변협 회장이 징계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이들 전·현직 변협 회장의 선친이 모두 한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문학계의 거목'이어서 눈길을 끈다.

김평우 변호사의 아버지는 바로 '무녀도' 등으로 '인간의 운명'을 탐구한 소설가 김동리(1913~1995)며, 김 회장의 부친은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 등을 지낸 민족시인 김규동(1925~2011)이다. 김동리는 '우익 성향의 순수주의 문학'을 했으며, 김규동은 '합리적 모더니스트'였다가 이후 민족주의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는 게 문단의 대체적인 평가다.
김현(왼쪽) 변협 회장과 김평우 변호사 © News1

'화랑의 후예' '무녀도' '등신불' 등 토속적이고도 샤머니즘적인 작품으로 유명한 김동리의 문학 세계는 반공주의 성향을 가진 '순수주의'라는 말로 요약된다. 1935년에 중앙일보에 단편이 당선되어 등단한 김동리는 일찍부터 세계문학이나 철학, 사상서 등을 섭렵해 한국적이면서도 독자적인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하며 '문학의 순수성'을 옹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샤머니즘'과 '통속성'을 자신의 문학의 기조로 삼은 그는 '인간의 원형 또는 운명에 관한 탐구'로 요약되는 문학적 성향을 유지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말인 1930년대 후반과 해방 후 그리고 민족분단의 격랑 속에서 '역사와 현실을 거세한 문학'이라는 일부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김규동은 스승인 김기림의 영향으로 초기엔 '모더니즘' 성향을 보이다 이후 민족 문학의 길로 들어선 시인이다. 사회적 모더니스트로서 처절한 현실인식에 이른 그는 '현기증 나는 활주로의/ 최후의 절정에서 흰 나비는/ 돌진의 방향을 잃어버리고/ 피 묻은 육체의 파편을 굽어본다'(‘나비와 광장’ 중에서)는 내용의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1930년대 민중들이 모두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 노예처럼 살고 있을 때 모더니즘 선구자들이 세계문화 사조와 현대문명주의를 거론하는 일은 모순이라는 점을 자각한 데 따른 것이다.
월남해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하며 분단의 비극에 남다른 관심을 보인 김규동은 민주회복국민회의와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자주·민주·통일국민회의 공동대표,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 등을 지내며 재야인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생전에 가진 한 인터뷰에서 "초현실주의라는 것도 더욱 나은 현실을 추구하는 적극적인 현실주의의 또 다른 이면"이라면서 "진정한 모더니스트는 휴머니스트"라고 주장했다.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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