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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의 시선] 촛불과 계산기…퇴진-탄핵 투트랙이 답이다

(서울=뉴스1) | 2016-11-17 12:56 송고 | 2016-11-22 15:41 최종수정
© News1
‘청와대는 도리질, 야당은 헛발질, 여당은 싸움질’    

엊그제 한 조간신문에 실린 기사의 제목이다. 박근혜 대통령 거취를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의 현주소와 계산법을 잘 짚은 말이다.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 일대를 뒤덮은 100만 촛불시위에서 분출된 국민들의 분노, 거듭 확인된 5% 지지율, 연이어 터져나오는 최순실 추문과 측근 비리 등을 생각하면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한탄이 나올 법하다.      
특히 주초만 해도 “정국안정을 위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던 청와대가 돌연 “하야나 퇴진은 없다”며 반격모드로 돌아선 이후 ‘질서있는 퇴진’ 압박을 높여온 야당이 되레 당황하는 등 국면이 묘하게 돌아가는 느낌이다. 때맞춰 나타난 박 대통령 변호인은 뜬금없이 헌법 조항과 여성 사생활 운운하며 검찰 일정을 비웃듯이 대통령 수사 방식과 한계를 언급했다. 청와대 관계자들 역시 “촛불시위의 민심만으로는 대통령이 하야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며 “어떠한 경우든 헌정공백은 안되며 모든 것은 헌법과 법률 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일제히 입을 모았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박 대통령의 5%는 회복할 수 있는 지지율”이라고 말한 것을 신호로 꿈틀거리는 친박세력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무엇이 청와대와 친박 보수진영의 태도를 이처럼 공세적으로 바꾸게 했을까. 가장 결정적 요인은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지 20일 넘도록 야권이 대안적 리더십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의 뒤늦은 가세로 야권의 조기퇴진-하야 투쟁이 단일대오를 이뤘지만 ‘박근혜 이후’를 둘러싼 세력간 주도권 다툼과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느닷없이 청와대 영수회담을 제의했다가 당내외 반발이 거세자 하루도 안돼 철회한 것은 대표적이다. 대통령의 질서있는 퇴진을 요구하는 야권의 ‘무질서한 연대’를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리더십이 이 모양이니 항쟁 수준에 이른 국민들의 촛불열기를 결집하기는커녕 쫓아다니는 것만으로도 힘이 부친다. 책임있고 주도적으로 일을 이끌지 않고 반사이익만 노려온 체질적 한계가 이런 사태를 낳았을 것이다.      

야권이 수권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면 촛불민심은 어떻게 될까. 시간이 흐름에 따라 피로도가 쌓여 열기가 떨어지거나, 아니면 특정세력에 휘둘려 점점 과격한 양상으로 비화돼 대오에 균열이 생길 것이다. 청와대로선 어느 쪽도 싫지 않은 그림이다. 전자는 국면전환의 기회를 줄 것이고 후자는 야권의 발걸음을 저지할 것이니 말이다. 누가 시국수습을 위한 정치지도자 회의를 제안하니 누구는 비상시국 기구를 만들자고 하고, 또다른 누구는 비상시국 원탁회의를 얘기하는 혼란스런 야권의 리더십으로 촛불동력을 이어갈 수도 없다.  

자발적 하야나 비자발적 퇴진이 어렵다면 마지막 헌법적 수단인 탄핵소추는 어떨까. 소추혐의 확정 등 발동요건이 까다로운데다 국회 의결과 헌법재판소 심판 결과를 장담할 수 없고 시간이 많게는 6개월 이상 소요되는 약점, 또 탄핵의 과실이 박근혜 정부의 국무총리에게 돌아간다는 점 등이 꺼림칙하다. 청와대가 “하야는 못하겠으니 차라리 탄핵하라”고 큰 소리치는 배경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정치권이 움찔하는 것은 딱하다. 탄핵 절차에 돌입하는 것이 마땅하고 당연한데도 말이다. 앞에서 꼽은 탄핵의 걸림돌은 감내하거나 극복해야 할 것이지, 탄핵을 피해갈 사유는 못된다. 명백히 권력을 사유화하며 헌법질서를 유린한 대통령이 헌법을 앞세워 하야나 퇴진을 거부하는데도 ‘강제 퇴진’‘조건없는 퇴진’ 등등 입에 발린 소리만 하면 국민들은 맥빠질 수밖에 없다. 국민적 총의를 확인했다면 장외투쟁과 별개로, 헌법규정과 정신에 따라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정치권의 의무다. 그리고 이를 성사되게 만드는 힘은 국민이고 여론이다.      

청와대와 여권에게 공연히 시간만 벌어주는 것은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있다. 그래서 퇴진투쟁과 탄핵을 병행하는 투트랙을 제안한다. 양자가 상호보완적인 것은 누가 봐도 안다. 퇴진요구가 힘을 받기 위해서라도 탄핵절차를 진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기약 없는 퇴진 투쟁에만 올인하는 것은 국민들의 무력감과 자괴감을 가중시키거나, 자칫 불행한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박 대통령에게 1초라도 국정을 더 맡길 수 없으니 법보다 주먹으로 가자는 것은 모험주의적 허세다. 박 대통령의 사촌형부인 김종필 전 총리가 최근 사석에서 박대통령 고집을 평가한 것도 있지 않은가.  

정말 궁금하다. 정치권이 탄핵을 망설이는 이유가. 촛불 민심이 엄중하다고 생각해서인가, 계산기를 열심히 두드려보니 자신이 없어서인가. 소추혐의가 불분명하다면 서둘러 여기저기 의견을 구하고 연구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엘바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을 보도한 프랑스 언론처럼, 박 대통령 수사를 놓고 변신과 배신을 거듭해온 검찰권력도 정신 차린다. <주필>


just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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