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이유식의 시선] 박 대통령, 쿨하게 결단해야 산다

각계 각층 퇴진요구, 도심시위 에너지 얕보지 말라

(서울=뉴스1) | 2016-11-10 11:54 송고 | 2016-11-11 09:25 최종수정
© News1
이쯤 되면 답은 이미 나왔고 확인도 됐다고 본다.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국기문란-헌정파괴 사건으로 촉발된 ‘박근혜 게이트’의 해법과 수순 말이다. 정리는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가 잘했다. 그것은 박 대통령 탈당-총리 후보자 지명 철회-국회의 총리 추천 및  수용-거국중립내각 구성으로 압축된다. 한때 박 대통령과 한솥밥을 먹었던 여당 중진이 문재인 안철수 등 야권 대선주자, 추미애 박지원 등 야당 대표들을 잇달아 만나 의견을 듣고 내놓은 것이라니 나름 고심한 흔적도 보인다.     

야당은 김 전 대표의 얘기에서 ‘대통령 2선 퇴진’ 말이 없어 불만스러울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헌법의 최종수호자인 대통령이 헌법가치를 위반하면 탄핵의 길로 가는 것이 헌법정신”이라고 못박고 “다만 탄핵은 국가적으로 너무 큰 불행인 만큼 거국중립내각으로 국정공백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탄핵의 대안으로 제시된 거국내각이니 대통령의 역할은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는 특히 대통령 탈당을 요구한 자신의 해법이 “보수의 궤멸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 배신감과 자괴감이 얼마나 큰 줄 모르고 꼬리자르기식으로 권력의 끈을 이어가려는 대통령의 안이한 상황인식과 무책임한 태도가 보수진영의 해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위기감의 반영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엊그제 국회의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통령으로서의 책임’과 ‘국정 정상화의 책무’을 앞세우며 “여야 합의로 추천한 후보를 총리로 임명해 내각을 통할토록 하겠다”고 완고한 입장을 반복했다. 김병준 총리후보자의 일방적 지명에 대한 사과는 물론 지명 철회 얘기도 없다. 헌법적 권위와 정치적 신뢰를 상실한 대통령에게 대한 국민적 분노가 하야나 탄핵 시위에 이른 것을 안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태도다.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는 자기최면적 믿음이나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무속적 주문에 길들여진 탓일까. 원칙과 신뢰라는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이 독선과 거짓으로 판명난 지 오래인데….      

박 대통령은 아마도 “소명의 시간까지 고난을 벗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가겠다”고 자신을 다독이며 민심의 격랑이 잦아들 때까지 야당과 씨름하며 버티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 하지만 최순실 관련 의혹과 비리에 깊이 빨려들어가는 대통령의 상대는 야당이 아니다. 야당이나 야권 대선주자들은 대통령에게 정치적 파산 선고를 내린 민심을 제도권에서 표출하는 대리인일 뿐이다. 그 대리인들도 요즘 고달프다. 한쪽에선 “앞뒤 재지 말고 그냥 도도한 민심에 올라타라”고 닦달하고, 다른 쪽에선 “길게 보고 책임있게 행동하라”고 을러대니 말이다.   

야 3당이 대통령의 제안을 거부한 것은 이런 맥락일 것이다. 총리에게 반쪽 내각통할권만 주고 외교 안보 군통수권 등 주요 헌법적 권한은 놓지 않겠다는 박대통령의 의도가 분명한 만큼 자신들을 더욱 고달프게 해서다. 청와대는 외면하고 싶겠지만 작금의 국민 정서는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것은 물론 엄중한 형사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열기와 에너지는 오는 주말(12일)로 예고된 대규모 도심 시위의 동력으로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재야단체나 야당의 관리영역을 벗어난 시위양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누구도 자신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른 나라 안팎의 불안감이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고 기대할지 모르겠다. 명백한 오산이다. 기행과 막말을 일삼던 정치적 아웃사이더가 등장함으로써 외교 안보 경제 전반에 걸친 불안과 불확실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럴수록 "혼란을 감수하더라도 망가진 국가리더십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요구가 거센 까닭이다. 나아가 미국언론들은 트럼프를 선택한 표심을 “주류 기득권층에 대한 충격적 거부”라고 분석했다. 소득 자산 교육 일자리 등의 양극화 심화로 체제의 지속가능성마저 의심받는 시대에 “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는 말까지 들어야 하는 대다수 우리 국민들의 분노도 어떻게 표출될지 가늠하기 힘든다. 오죽하면 김무성 전대표가 보수의 궤멸을 걱정하겠는가      

박 대통령은 쿨(cool)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결단을 서둘러야 한다. 뭐는 되고 뭐는 안된다는 식으로 접근할 상황이 아니다. 사즉생(死卽生) 이 별건가. 죽고자 하면 살길이 생긴다는 뜻 아닌가. 자승스님이 시국상황을 우려하며 박 대통령에게 건넨 화엄경 구절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도 버려야 얻고 비워야 채운다는 만고의 진리를 얘기한 것일 게다.     

정치공학적으로 보더라도 대통령이 국회추천 총리에게 국정 전권을 주고 2선으로 물러난다고 해도 여야 합의로 거국중립내각이 구성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또 사상초유의 거국내각이 운영되면서 대통령의 역할이 필요한 일이 적잖게 생길 것이다. 명분을 잡으면 실리가 따라오는 법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대통령은 권한을 내려놓으면 곧바로 수사대상이 될 것을 걱정하는지 몰라도, 어차피 수사는 제 갈 길을 벗어날 수 없다. 또 권력을 내려놔야 연민과 정상참작의 여지도 생길 것이다.      

단언컨대 박 대통령이 두려워해야 할 상대는 야당이 아니라 국민이다. 그 국민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거둔 것은 길가는 사람 아무나 잡고 물어봐도 안다. 야당과 흥정할 때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박 대통령은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미망 대신 ‘버려야 열매 맺고,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는 경구를 가슴에 담아야 한다. 그것이 "배신의 정치를 국민들이 심판해달라"고 입버릇처럼 말한 대통령이 국민에게 표시해야 할 마지막 예의다.  <주필>


justino@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