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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박 대통령 정치적 고향 달성군 '수치·허탈·분노'

(대구ㆍ경북=뉴스1) 정지훈 기자 | 2016-10-30 17:47 송고
30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사용한 대구 달성군 사무실. 지금은 지역구를 물려받은 새누리당 추경호 의원이 지역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2016. 10. 30. 정지훈 기자© News1
30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사용한 대구 달성군 사무실. 지금은 지역구를 물려받은 새누리당 추경호 의원이 지역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2016. 10. 30. 정지훈 기자© News1
10월의 마지막 주말인 30일,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 대구 달성군을 찾았다.

달성군 화원은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지역 사무실이 있던 곳이다. 화원을 비롯해 이웃한 논공, 구지 등은 대구지역 중에서도 박 대통령을 향한 소위  '콘크리트 지지층'의 핵심지역이다.
달성군민들은  박 대통령에 대해 자신의 지역에서 배출한 대통령이라는 큰 자긍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최순실 등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사건이 표면으로 떠오르며 지역에서도 많은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예전에 박 대통령이 사용하던 지역 사무실에서 500여m 떨어진 화원시장.  
최순실 게이트로 들끓은 성난 민심이 표출된 전날 광화문 광장의 모습과 달리 이곳은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 탓인지 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썰렁하기까지 했다.

시장상가에는 장사를 준비하는 몇몇 상인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에게 최근 박 대통령과 최순실 게이트 사건에 대해 묻자 한숨부터 내쉬거나 짜증난다는듯 손사레를 쳤다.

상인 유모씨(63)는 "그렇게 해서 어떻게 앞으로 나라를 이끌고 나가겠어. 하야해야지…"라며 "우리는 (박 대통령을)많이 좋아했다. 야당이 발목잡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함께 답답해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배신당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씨는 "여기는 요즘 언론에서 말하는 (박 대통령 지지)콘크리트 땅이었는데 최순실 같은 사람 말만 듣고 그랬다니 그동안 믿고 좋아했다는 사실이 분하고 억울해서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담배를 태우고 있던 이웃상인 문모씨(70)는 "짜증스럽고 요즘 어딜가나 모이기만 하면 (최순실 게이트) 얘기하는데 이제는 듣기도 싫고 모든 게 허탈하다. 나라 모든 게 엉망"이라고 말했다.

문씨는 "박 대통령이 의원이었을 때부터 원칙적이고 소신있는 면을 보고 좋아했다. 또 (박 대통령의)부모들을 봐서라도 잘할 거라 희망을 가졌었는데 이제보니 소신도 없는 것 같고 꼭두각시 노릇만 했다하니 '허수아비' 대통령이다. 여러말 필요없이 한마디로 '실망'"이라고 했다.

어른들로부터 '대통령을 배출한 지역'이라는 자긍심 어린 말들을 들어온 이 지역의 나이 어린 중학생들도 요즘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고 했다.

최성호군(16·화원중 3학년)은 기자의 질문에 머뭇거리면서도 "대통령이면서도 나라를 위해 내린 결정이 자기가 한 게 아니라 뒤에서 시킨 일이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른들도 많이 실망하셨다고 하신다"고 답했다.

최군과 함께 있던 정윤태·박종혁군(16·화원중 3학년)은 "잘은 모르지만 뉴스를 통해서 나라의 대표가 꼭두각시 노릇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 나라 국민이라는 게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을 지지해온 달성군 지역 주민들 일부는 "충격적이고 아직도 이런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면서 "좀 더 지켜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다.

개인택시를 하고 있는 이근창씨(60)는 "아무래도 손님들이 대통령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면 부정적인 여론이 많고 실망이 큰 것을 느낄 수 있다. 달성은 (지지정당이)무조건 하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건 아닌데'하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이어 이씨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대통령 하야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욕을 먹더라도 끝까지 책임을 완수하고 끝내야 한다고 본다. 모쪼록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던 학원강사 노현종씨(43)는 "지지했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아프고 개인적인 상실감이 크다. 하지만 대통령이 솔직히 얘기하고 사실 그대로를 밝힌 뒤 문제가 있다면 책임을 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노씨는 "지금 언론에서는 중구난방 의혹만 제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검찰의 조사를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하야'를 언급하며 박 대통령을 향한 거센 비난을 쏟아내는 주민도 있었다.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후원금도 내고 적극적으로 지지해왔다는 이상희씨(65·여·자영업)는 "손목 인대가 끊어지면서까지 열심히 살아온 것은 '누구나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한 대통령에 대한 믿음과 (대통령의)약속 때문이었다"며 "하지만 지금와서 보면 순 거짓말이었다. 당장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와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씨는 "지금까지는 박 대통령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추억이라 생각하고 정말 소중히 간직하면서 자랑스럽게 여겨왔는데 이제는 당장 찢어버리고 싶을만큼 밉다"고 했다.

달성공단에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박모씨(42)는 "실망이나 허탈 이런 말로는 지금 이 지역 사람들의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다. 달성군수를 지내고 19대 때 국회의원으로 나름 열심히 활동하던 이종진 의원이 갑자기 그만둔다 그러고 지금의 추경호 의원을 위에서 내려보낸다 할 때도 말들이 많았지만 (박대통령) 보면서 참았던 곳이 이곳 달성군인데 자긍심에 큰 상처를 받았다"며 원망을 쏟아냈다.

이어 박씨는 "일부 주민들 사이에선 추 의원까지도 '최순실이 꽂아 준거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을 믿었기 때문에 큰 사람되라고 사심 없이 지지해준 대가가 고작 '비리'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정말 나쁜 사람"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daegu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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