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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보정리뷰]짜낸 눈물 속에 침몰하다…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2016-03-14 09:24 송고 | 2018-05-13 13:29 최종수정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사진제공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사진제공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지난 10일 서울문화재단 남산드라마센터에서 개막한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박근형 작·연출)는 불편한 작품이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설정이 '중동에서의 김선일 피랍', '천안함 침몰' 등 과거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기대했던 비판의식을 흐리고 있어서다.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시공간이 다른 4개의 이야기가 총 14장으로 이뤄져 있다. 2015년 경상남도 모 부대서 제대 1개월을 남겨두고 탈영한 이원재 병장 이야기를 비롯해 △1944년 일본 도쿄의 자살 전투기 '카미카제'에 자원입대하는 조선인 박동철(마사키 히데오) △2004년 이라크 팔루자서 무장단체에 납치된 한국인 서동철 △2014년 서해 천안함의 사망 장병들과 생존한 안 이병 등으로 구성됐다.
각 이야기속 모든 주인공은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탈영병은 헌병대의 무차별 사격에 쓰러지고, 박동철은 죽음이 예고된 전장으로 떠난다. 또 서동철은 테러리스트에게 참수를 당하고, 해병들은 훈련종료 후 자유시간을 즐기다가 '쿵'소리와 함께 수장된다. 실제 사건이 무대에서 환기되는 것만으로도 관객의 마음을 무겁게 누르면서 몰입하게 만든다.

하지만 개연성이 약한 설정이 장면 속에 끼어들면서 관객의 몰입을 방해한다. 예를 들어 12장에서 박동철은 일본 가고시마 기지에서 카미카제 비행기에 탑승한다. 죽음을 예감한 그가 독백하는 사이, 어머니가 유골함을 꺼내 횟가루를 무대에 뿌린다. 가루가 흩날리는 장면은 슬픔을 증폭시키지만, 미군함에 자폭한 아들의 유해가 돌아올 리 만무하다.

마지막 14장에서도 현상금을 타려고 탈영병을 신고했던 행려병자는 헌병대가 총을 쏘며 포위망을 좁혀오자 정작 탈영병을 살리겠다고 무대로 뛰어들면서 울부짖는다. 직전까지 현실적 이해타산에 충실했던 인물이라면 다른 반응을 했어야 극의 전개가 자연스러울텐데 말이다.
총 14장의 연극에서 등장인물들은 중후반에 해당하는 9장 카미카제 장면부터 매번 울기 시작한다. 4가지 이야기가 나열되며 비극적 결말로 치닫다 보니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은 눈물만이 아니다. 4장에서 야간경비를 서던 아버지가 갑자기 탈영해 찾아온 아들에게 감정을 누르면서 뚝뚝 던지듯 말하며 자수를 권유하는 연기가 돋보여서인지 후반부의 신파가 더욱 아쉬웠다.

제작진이 이번 초연을 위해 노력한 흔적은 무대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들은 반원 형태인 남산드라마센터의 무대를 'T자'형으로 개조해 입체적으로 공간을 활용했고, 이라크에선 테러리스트가 AK-47 소총을 쓰고 국내 군인들은 K계열 소총을 쓰는 등 소품에서도 세밀함을 더했다. 출연진 22명을 적절히 배치해 마치 100여 명이 출연한 효과를 낸 연출력도 뛰어났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초연에 오르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지난해 문화예술위원회가 창작산실에 선정된 이 작품을 검열했다는 의혹이 일자 연극인 979명은 진상 규명과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렇게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이 작품은 서울문화재단 공모사업에 응모해 초연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이 작품에는 인간 존엄을 저해하는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의식이 깃들어 있다. 일부 보수적인 관점에선 '천안함 침몰' 등의 소재가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연극에서 다루지 못할 소재는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다만 문제는 그 소재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느냐에 따라 주제와 예술성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수많은 연극인이 지켜내고자 했던 창작의 자유, 제작진이 초연을 올리기까지 흘린 땀, 작품 속 비판정신이 억지로 쥐어짜낸 신파의 눈물 속으로 침몰했다는 것이 허탈하다.

3월27일까지.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가격 1만8000~3만원. 문의 (02)758-2150. 다음은 주요 공연장면이다.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사진제공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사진제공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사진제공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사진제공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사진제공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사진제공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사진제공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사진제공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사진제공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사진제공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사진제공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사진제공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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