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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의 갑질'보다 무서운 '을의 갑질'…당신도?

일상 속 평범한 사람들도 상황·대상 따라 '갑질'…'당신도 조현아일 수…'

(서울=뉴스1) 박현우 기자, 양새롬 기자 | 2015-02-17 19:41 송고
2015.02.17/뉴스1 © News1
2015.02.17/뉴스1 © News1
# "늦게 와서 왜이렇게 생색을 내? 업체를 싹 다 바꾸든지 해야지" 목욕탕집 주인 '광수'가 업장 내 정수기를 수리하러 온 기사들을 보자마자 몰아붙인다. 광수의 '갑질'은 기사들이 수리하는 내내 이어진다. 인신공격을 하는가 하면 정수기 수리비용 1만5000원을 모두 천원짜리로 기사들 얼굴에 던져 '지불'한다.

# 수리를 끝낸 기사들이 목욕탕을 나갔다 다시 들어온다. 이번엔 기사가 아닌 '손님' 자격이다. 순식간에 '갑'과 '을'이 바뀐 것이다. 손님이 된 기사들은 친절하지 않다며 광수를 타박하고 구운계란값 1300원을 모두 잔돈으로 집어던지는 등 '갑질'을 한다.
한 예능 프로그램의 '갑과 을'이라는 코너 중 일부다. 코너 속 코미디언들은 우리 일상 속 평범한 '갑남을녀' 사이에서도 '갑질'이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꼬집는다.

코너를 기획한 미키광수(31·본명 박광수)씨는 "저녁을 먹던 중 식당 아주머니에게 '갑질'하는 손님을 보고 개그 소재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백화점 주차장 요원을 무릎 꿇린 '백화점 모녀' 등 '갑질'이 질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갑질'은 비행기 안이나 백화점 주차장에서만 이뤄지지는 않는다. 앞선 사례처럼 목욕탕에서든 식당에서든 우리 생활속 깊은 곳에서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은밀히' 이뤄지고 있다. 이른바 '을의 갑질'이다.

지난 16일 만난 A(30)씨는 의류매장에서 일했을 당시 손님들의 '갑질'을 수도 없이 겪거나 목격했다고 했다.

한 글로벌 패션 브랜드의 서울 시내 한 지점 매니저로 2년 정도 일했다던 그는 "직원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인사를 하지 않아서, 말투가 상냥하지 않아서 등 수십가지 이유로 하루에도 몇번씩 손님들이 직원을 혼내고 입어본 바지를 바닥에 내팽개친 뒤 정리하라고 지시하는 일도 있다"고 했다.

또 "방침에 따라 결제담당 직원은 늘 미소로 고객을 응대하는데 한 번은 커플 남녀가 계산하다 남성의 체크카드에 돈이 부족해 결제가 이뤄지지 않자 미소로 응대하던 직원의 태도가 기분 나빴다며 고객센터에 신고해 '직원을 한 대 때려야 기분이 풀리겠다'는 말도 했다더라"고 말했다.

그는 "고객이라고 불리는 순간 몇몇 손님들은 자신들이 직원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며 직원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같더라"며 "이들은 직원을 동등한 사람으로서 '존중'하지 않고 아랫사람 부리듯이 한다"며 씁쓸해했다.

더 좁고, 보는 눈이 적은 택시 안에선 더욱 은밀하고 빈번하게 '갑질'이 이뤄진다.

지난 6일 서울 중구 흥인동 도로변에서 승객과 멱살잡이를 하던 택시기사 김모(54)씨가 숨지는 사고가 났다.

택시를 탔을 때부터 김씨에게 '시비'를 건 승객 B(59)씨는 30m 정도 택시를 타고 간 뒤 택시비를 내지 않은 채 택시에서 내렸고 B씨에게 택시비를 받으려고 뒤따라 내린 김씨가 B씨와 몸싸움을 벌이던 중 숨진 것이다.

경찰조사에서 밝혀진 '비극'의 전말은 택시 안에서 횡행하는 '갑질' 사례를 잘 보여준다. 당시 술에 취해 있었던 B씨는 "택시기사가 인사를 하지 않는 등 불친절해서 불쾌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17일 만난 택시기사 C씨는 "저녁시간대 술에 취해 택시를 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 승객들이 택시기사를 자기 전용기사 부리듯 하고 폭행하는 일도 다반사"라고 말했다.

공무원들도 '갑질'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업무에 임해야 하기에 스스로를 '국민의 종(公僕)'이라고 부르는 공무원들을 실제 '종'처럼 부리는 민원인들이 때때로 있다.

서울 시내 한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D(27·여)씨는 "이해관계자의 등초본을 떼러 온 민원인이 서류를 완벽하게 준비해 오지 않아 '절차상 발급해드릴 수 없다'고 했다가 민원인이 '다른데선 해줬는데 왜 안 해주냐'며 소란을 피우고 불친절민원으로 고발해 사유서를 작성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D씨는 "전화로 '일을 왜 그딴식으로 하나', '법이 왜 그따위냐' 등 폭언을 하는 민원이 수도 없다"며 "공무원으로서는 전화를 먼저 끊을 수 없어 욕을 들으면서도 계속 진정시키려 노력하는 게 최선이다"고 말하며 한 숨 쉬었다.

전문가들은 '을의 갑질' 배경으로 배려가 부족하고 합리적으로 의사표현을 했을 때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 사회분위기를 꼽았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문제 발생 시 합리적으로 문제가 해결된다면 목청을 높이거나 '을의 갑질' 행위는 이뤄지지 않을텐데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갑질'을 해야만 비로소 문제가 해결되는 비정상적인 구조"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요즘 젊은 세대들이 외제차를 사는 등 소비를 과시적으로 하는 것처럼 사람관계에 있어서도 자기의 지위를 과시하면서 나름대로 인정받고 싶은 것"이라며 "배려가 부족한 사회다 보니 사람들의 '내 이야기 좀 들어달라', '나 좀 인정해달라'는 욕구가 왜곡돼 표출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갑과 을'을 기획한 미키광수씨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서로 배려하는 사회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서면 인터뷰를 통해 "몇 달 전 저녁식사를 하던 중 식당 아주머니에게 '갑질'하는 손님을 보고 만약 아주머니가 갑의 위치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코너를 기획했다"며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상처주지 않고 상대의 입장을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연기하고 있다"고 했다.


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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