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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중국인들이 만드는 '짜가 메이드 인 이태리'

현지 실업난에 불법고용 단속 강화..열악한 환경

(로이터=뉴스1) 정세진 기자 | 2013-12-30 09:34 송고 | 2013-12-30 09:36 최종수정
이달 초 이탈리아 경찰이 프라토의 중국계 의류공장을 단속하는 모습이다. © 로이터=뉴스1

이탈리아 프라토에 거주하는 38세의 중국인 여성 선젠허는 최근 일자리와 집을 모두 잃었다.
그가 일하던 봉제공장에 경찰이 들이닥쳐 재봉틀을 압수하고 공장을 폐쇄했기 때문이다.

당시 선은 공장 구석 칸막이에서 자고 있었으며, 단속 경찰이 오면 바로 달아날 수 있도록 짐을 챙긴 상태였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중국인 운영 공장의 부당노동행위를 조사하라는 프라토 시 당국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 섬유도시 프라토, 중국인 이주 후 무슨 일이?

프라토는 이탈리아 섬유산업의 메카로 불리는 투스카니 지역의 도시이다.

그러나 경기침체로 섬유업체들이 해고에 나서고 문을 닫으면서 그 자리를 중국인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저장성 원저우(溫州)에서 이주해온 중국 기업가들은 이탈리아 건물주로부터 공장을 빌려 영업을 시작했다.

이들은 곧 값싼 인력과 빠른 생산 속도로 이탈리아 현지 기업들을 따라잡았다.

중국계 공장에서 생산되는 수백만 점의 의류는 유럽 각지로 수출돼 여성용 면 셔츠가 2유로 이하, 코트가 12유로 이하의 저렴한 가격에 판매된다. 이 제품들은 중국에서와 달리 '메이드 인 이탈리아' 상표를 달고 고급 의류 매장에 걸리고 있다.

이탈리아 상인연합회 프라토 지부는 중국계 기업의 1년 매출이 20억 유로로, 이탈리아 기업들 전체의 매상고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안드레아 카비치 이탈리아 공업 총연합 지역대표는 중국 기업들이 선전하는 이유로 '속도'를 들었다.

카비치 대표는 "주문에서 배송까지 40일 가까이 걸리는 우리와는 달리 중국인들은 값싼 원단을 들여와 빠르고 완벽하게 만들어진 옷을 불과 1~2일만에 전 유럽에 배송한다"고 설명했다.

20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프라토 인근의 중국인 수는 급격히 늘어나 5만명에 이르며, 이 지역은 중국인 학교와 미용실, 식당 등으로 가득한 차이나타운으로 변모했다.

◇ 프라토 시 당국 '중국인 배척' 움직임

프라토 지방정부는 최근까지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중국인 공동체의 성장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계 기업들이 현지 산업을 잠식하는데다, 불법 이민자 증가와 탈세 등의 문제가 계속되자 조금씩 중국인 배척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 2009년 당선된 섬유 기업가 출신의 로베르토 첸니 시장은 프라토 시의 법치를 바로 세울 것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첸니 시장은 중국계 공장이 안전 기준을 충족시키기 전에는 영업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또 공장에 부당노동행위를 조사하는 감사관을 붙이고, 영업금지 사업장에서 몰수된 기계를 재활용하는 예산을 증액했다.

그러나 프라토 시내 중국계 공장들의 60%는 2년 안에 문을 닫으며, 이들은 세금 당국의 조사를 피하기 위해 다른 이름으로 영업을 재개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찰 관계자는 "15년동안 중국 공장들을 조사했으나 한 곳이 문을 닫으면 다음날 또 다른 공장이 생긴다"고 밝혔다.

시 당국은 최근 한 장에 600~1500유로의 돈을 받고 300만 이상의 중국인에게 가짜 체류증을 내준 시청 직원들을 적발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불법체류자 상당수는 3개월 관광비자로 방문했다가, 위조된 체류증으로 길게는 수 년씩 머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 중국계 공장, 근로자 인권 사각지대

지난 1일 발생한 테레사 모다 공장 화재 사건을 계기로, 이탈리아인 뿐 아니라 중국인들마저 중국계 공장의 열악한 환경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당시 전기난로에 불이 붙으면서 임시 숙소에서 잠을 자던 11명 가운데 7명이 사망한 것이다.

화재진압에 나선 경찰에 따르면 사망한 근로자들 대부분은 사진으로 얼굴을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화상을 입었다.

질식사한 한 남성의 경우 창문을 가로막은 쇠창살을 통해 빠져 나가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이 경찰은 전했다.

이들은 하루 평균 70벌의 셔츠를 만들고 한 벌당 70센트의 임금을 받았다.

밀린 월급을 받으러 온 한 근로자는 "많이 벌어야 한달 수입이 1500유로 수준"이라고 밝혔다.

폐쇄됀 테레사 모다 공장 문에는 사망자 7명의 사진이 붙어 있으며, 여기에는 "고통에는 인종이 따로 없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sumir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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