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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아파트값 왜 이리 비싼가요?" '닻내림의 마법' 벗어나야[박원갑의 집과 삶]

호가에 흔들리는 심리…"부동산 중개업자도 영향"
"1~2년 임대로 살아보고 천천히 결정해야 '닻내림' 벗어나"

(서울=뉴스1) 박원갑 KB국민은행부동산수석전문위원 | 2023-05-29 10:00 송고 | 2023-05-30 09:14 최종수정
14일 서울 중구 남산 전망대를 찾은 관광객들이 도심 속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고 있다. /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강남 아파트값은 왜 이리 비싼가요?” 집값이 급등하던 문재인 정부 시절 지방 도시에서 올라온 김정우씨(가명‧38)는 서울 강남 아파트값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지간한 방 3칸짜리 34평형(전용면적 84m²) 아파트 가격이 20억원을 넘어서는 게 믿기지 않았다. 20억원을 내고 살 바에야 훨씬 시설이 좋은 고급 호텔에서 자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지방 도시에서 34평형 아파트는 3억원이면 구할 수 있었다. 20억원은 지방 도시에서 어지간한 상가 빌딩을 살 수 있는 값이었다.

◇ '닻내림' 호가가 유발하는 '집값판단' 아파트거래에 영향 
김 씨가 강남 아파트값을 비싸다고 생각하는 심리는 간단하다. 바로 지방 도시 아파트값이 가격의 판단 기준인 앵커링(anchoring, 닻내림)이 되기 때문이다. 배가 닻을 내리면 물결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여도 닻 내린 곳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닻 내림 효과는 처음 형성된 정보가 기준점이 돼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김 씨처럼 다른 도시로 이사 간 사람들은 예전에 살던 곳의 부동산 가격을 기준점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전에 살던 도시의 임대료가 비쌀수록 세입자는 새 도시에서 높은 임대료를 지불하는 경향을 보인다. 말하자면 종전 가격에 시선이 고정되면 새로운 주택 구매 여부를 결정할 때에도 종전 가격이 준거점으로 이용될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애리조나 대학교 교수 노스크래프트와 닐은 1987년 부동산 중개업자 등을 대상으로 닻 내리기 실험을 했다. 해당 부동산의 적정 가격이 얼마인지 감정하는 게 실험의 요지였다. 이들은 실험 대상을 A, B 두 그룹으로 나눴다. 그리고 같은 부동산이지만 서로 다른 매도 호가가 적혀 있는 전단을 보여줬다. A그룹에 보여준 부동산 전단에는 매도 호가가 6만5900달러로 적혀 있었다.
A그룹은 나름대로 감정을 한 뒤 적정 가격으로 평균 6만7811달러를 제시했다. B그룹에는 매도 호가가 8만3900달러로 적혀 있는 전단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평균 평가금액은 7만5190달러였다. 같은 부동산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10% 이상 차이가 난 것이다.

부동산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 있는 중개업자들인 만큼 매도 호가에 좌지우지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닻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매도자의 일방적인 호가에 휘둘리게 되는 꼴이다.

◇ 1~2년 살아보고 구매하면 '닻내림의 마법' 벗어나  

대개 장터에서 물건을 거래할 때 파는 사람은 무조건 높게 부르고, 사는 사람은 최대한 낮게 부르고 본다. 이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상대방이 최초로 제시한 가격에 영향을 받는 닻 내림의 마법을 노린 것이다. 매수자는 뻔한 수작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매도 호가가 높게 제시되는 순간 혹시 가치 있는 물건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시장 가격을 정확히 모른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서 애초 제시된 가격에서 많이 깎는 것은 거래를 아예 파기하지 않는 한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많은 실험 결과를 보면 전혀 관계없는 정보에도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난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숫자도 한 번 스치고 지나가면 순간접착제를 바른 것처럼 고정되는 것이다. 어쨌든 우연히 마주치는 사소한 숫자라도 그 마법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라. 혹시 닻 내림 전략이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닻 내림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해당 분야의 전문지식을 늘려야 한다. 어떤 제품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경우에는 잘못된 닻에 걸려들 가능성이 그나마 작으니까.

또 매도자가 제시하는 가격이나 정보를 그대로 믿지 말고 한 번 점검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특히 거래가 뜸한 땅이나 상가,단독주택을 살 때는 가격 적정 여부를 검증하는 절차를 빠트리지 말아야 한다. 인근 지역 실거래 내역을 조사하거나 감정평가를 받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큰돈이 오가는 부동산 거래에서는 한 번 실수하면 큰 손실을 보기에 이중삼중으로 확인하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

새로운 동네로 이사 가는 경우 닻 내림 효과에 빠지기 쉽다. 집값이 비싼 동네에서 살다가 싼 동네로 옮기면 가격이 싸다는 생각에 덜컥 구매할 가능성이 있다. 이럴 때 닻 내림 효과를 극복하는 방법은 충분한 시간을 갖는 것이다. 새로 옮긴 동네의 집값에 적응할 때까지 1~2년 임대로 살면서 천천히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게 좋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h991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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