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기고]故 이재수 사령관 4주기…군인에게 '직권남용'이란?

명령 복종과 위반,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어떤 선택이 더 현명한가

(서울=뉴스1) 엄효식 같.다. 대표·합참 정책자문위원 | 2022-12-07 09:30 송고 | 2022-12-07 11:13 최종수정
고(故)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안장식이 지난 2018년 12월11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엄수됐다. 2018.12.11/뉴스1 © News1 주기철 기자
고(故)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안장식이 지난 2018년 12월11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엄수됐다. 2018.12.11/뉴스1 © News1 주기철 기자

7일로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4주기가 됐다. 이 전 사령관은 '모든 공은 부하에게, 책임은 내게'라며 부하들에 대한 선처를 호소했지만 지금도 부하들에 대한 재판은 진행되고 있고 대부분 유죄 판결을 받았다.

민간인 사찰과 관련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당시 기무사 소속이었던 6명이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이 가운데 2명은 1심 재판 후 법정 구속됐고, 3명은 1심 실형 선고 뒤 보석 상태에서 2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으며, 다른 1명은 대법원에서 집행유예가 확정된 상태다.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직권남용'(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함)과 '권리행사방해'(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함)로 이뤄진다. 그러나 검찰 특별수사단은 작년에 이들의 민간인 사찰 혐의에 대해선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했고, '권리행사 방해' 부분에 대해서도 '혐의 없음'으로 종결했다.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법적 용어들에 대해 따지거나 평가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검찰과 법원의 오랜 시간 고민과 판단에 대해 논하는 것은 능력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법적 논의들이 군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숙고해 보려고 한다.

현재 직권남용으로 법적 절차 대상이 된 당사자들은 '국가적 재난상황에서 모든 국가기관이 역량을 집중하던 기간에 사령관 명령으로 성실히 임무를 수행한 군인들이 오로지 불법을 자행한 자들처럼 인식되는 데 대해 너무 마음이 아프다'는 속마음을 조심스레 밝히고 있다.
그 가운데 한 명은 올해로 사관학교에 입교한 지 40년이 됐다. 그는 육군 장교로서 전·후방 각지에서 소임 완수에 헌신하고 전역했지만 장기간 재판정에 출석해야 하는 현실에 한숨을 내쉬고 있다.

군인이나 공무원들이 법령 위반을 인지하지 못한 채 상급자 지시를 이행했더라도 시간이 흐르고 난 뒤 과거 상급자가 나쁜 의도로 지시한 것으로 규정되면 누구든 현재와 미래의 직권남용 피의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형법 제122조는 직무유기를, 제123조는 직권남용(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죄)를 명시하고 있다. 직무유기란 '공무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그 직무수행을 거부하거나 그 직무를 유기'한 걸 말하고,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걸 이르는 말이다.

사실 공무원에게 직무와 직권은 매우 중요하다. 공무원의 숙명은 직무·직권을 보유하고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온 마음으로 봉사하는 것이다. 그런 정상적 행위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위에 언급된 형법의 적용을 받고 심대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은 어찌 보면 양날의 칼과 같다. 공무원은 그 사이를 절묘하게, 안전하게 지나가야 한다. 그래서 생존 비법으로 복지부동(伏地不動)이란 '웃픈' 단어가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군인들의 복지부동만큼 무서운 건 없을 것 같다. 군인은 최악의 상황,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악조건 속에서도 주어진 임무를 반드시 완수해야 한다. 그래야 헌법 제5조에 명시된 국군·군인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국군은 국가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는 헌법 조문이다.

군인의 임무수행 현장인 전쟁터에선 비상식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적군을 향해 사격을 지시하는 건 살인을 의미하고, 죽을 수도 있는데 목표물을 향해 전진하라고 부하들에 명령하는 건 개인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은 그런 환경에서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군인들이 그래야 국민이 더 안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형법 제47조는 '명령 위반'과 관련해 '정당한 명령·규칙을 준수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이를 위반하거나 준수하지 아니한 경우엔 2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국방부의 군인복무규율 제10조는 '부하는 상관의 명령에 절대로 복종해야 하며 그 원인이나 이유를 물을 수 없다. 그러나 명령 내용에 분명치 않은 점이 있을 경우엔 다시 물어 이를 밝힘으로써 실행에 틀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군인복무규율 제34조는 '직권남용 금지'에 대해 '군인은 어떤 경우에도 직권을 남용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제25조는 '명령 복종 의무'와 관련해 '군인은 직무를 수행할 때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무사의 직권남용 재판에서 대령급 이상은 사령관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해야 하는 대상으로, 또 중령급 이하는 상관의 부당한 지시가 있었더라도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법리를 적용한단 얘기가 들린다. 이런 식으로 법 조항을 고무줄처럼 적용한다면 군의 지휘체계를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군에서의 명령·복종 대상 및 관계 설정은 심층 깊은 논의를 거쳐 보완할 필요가 있다.

명령과 직무, 직권 등에 대한 다양한 법률조문이 있지만, 일반인의 시각 또는 일반 군인의 입장에선 이런 내용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행동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다.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호한 법률적 관계를 정리하고 문구도 재정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뜻밖의 피해자가 발생하거나 명령을 통해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군인들이 중요한 순간에 머뭇거려 임무완수를 망칠 수도 있다. 명령을 받을 때마다 법적 유·불리를 고민하고 판단하느라 시간을 허비한다면 임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작전의 성패는 시간의 요소에 상당부분 좌우되기 때문이다. 전쟁터는 그렇게 시간이 여유롭지 않다. 상황도 긴박하다. 판단에 필요한 모든 '팩트'가 일사불란하게 정리돼 있지도 않다. 모든 군인이 법률참모를 두거나 개인 변호사를 계약하면서 실시간 군 생활을 할 수도 없다.

삶과 죽음이 어우러져 있는 참혹한 전장에서 공격 또는 방어를 지시하는 지휘관의 결정과 명령이 잘못됐다고 판단될 때, 분명 이대로 가면 부대원 전원이 전사할 수도 있는 위험이 분명할 때 과연 부하로서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 대부분의 군인은 지휘관의 판단과 명령을 신뢰하고 따르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그러나 일단 지휘관의 명령을 신뢰하고 복종했지만, 결국 패배하고 수많은 부하를 잃었을 경우 그 책임은 누가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

군인이 상관의 명령을 받은 이후 고민하고 주저하는 법적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군 생활을 명예롭게 마치고 자연인으로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사안들 때문에 군 생활 전체의 명예가 무너져버리는 일이 발생한다면 현재 군인들 사기도 떨어뜨릴 수 있다. 해외에서 비싼 무기를 사들여오는 것보다 군인들의 전투력과 사기를 높이는 일은 자신들의 군복과 임무수행에 대해 존중받도록 하는 것이다.

임관과정과 군 생활 기간 충분한 교육을 진행해 개인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수준이 되도록 해야 한다. 직무와 직권에 대한 명확한 공감대와 인식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 어떤 교육을 받더라고 결국 결정적 순간의 선택은 개인의 몫이고 매우 쉽지 않을 것이다.

고인이 된 이 사령관이 부하들의 힘들어하는 모습을 하늘나라에서 지켜보며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아 착잡하다.

엄효식 같.다. 대표 겸 합참 정책자문위원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