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출범 앞두고 'MAGA 내란'…H-1B 이민 비자 놓고 분열

내전 불씨된 'H-1B' 전문직 비자…머스크와 트럼프 극렬 지지층 간극 벌려
첫 임기서 H-1B 소지자 입국 정지했던 트럼프, 일단은 머스크 편 들어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9일(현지시간) 텍사스주 브라운스빌에 위치한 우주 발사시설 ‘스타베이스’에서 스페이스X 우주선 스타십의 여섯 번째 지구궤도 시험비행을 빨간색 ‘MAGA 모자’를 쓰고 일론 머스크 CEO와 참관을 하고 있다. 2024.11.20 ⓒ 로이터=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트럼프 지지층이 이민 문제로 분열 양상이다.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숙련된 기술을 가진 전문가 외국인들의 취업 비자(H-1B)를 놓고 억만장자 후원자들과 노동계급 기반 지지자들 사이 적대감이 극에 달한 분위기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마가)'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뭉쳤던 지지층이 내홍에 휩싸인 것이다. 이민자를 반대하는 전통적 강경 매파와 막대한 후원금을 쏟아 부은 실리콘밸리의 IT 억만장자들은 필연적 적대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AFP통신은 4일(현지시간) "마가 내란(MAGA civil war)이 트럼프식 혼란의 공포를 촉발했다"며 억만장자 후원자들과 노동계급 기반 사이에 최근 흐르는 적대감이 취약한 트럼프 연합을 무너뜨릴 수 있는 긴장의 전조라는 정치 애널리스트들의 평론을 전했다.

억만장자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존재감을 보인 인물은 단연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대선 레이스에 최소 2억5000만 달러(약 3700억 원)를 후원하며 트럼프와 끈끈한 브로맨스를 과시했다. 여기에 신설되는 정부 효율부 수장으로 지명되며 명실상부 트럼프의 최측근 인사로 부상했다.

머스크가 최근에 불편함을 드러낸 정책이 바로 트럼프 당선인의 핵심 과제인 이민 분야다. 그는 최근 H-1B 비자에 반대하는 트럼프 지지자들을 공개 저격했다.

H-1B는 미국의 고용주가 충분한 자격을 갖춘 미국인을 찾을 수 없는 특수 직군에 숙련된 외국인 근로자를 일시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비자다. 일명 '전문직 비자'라고도 불린다. 이 비자 취득하려면 특수 직군 관련 학사 학위 또는 이에 준하는 경력을 갖춰야 하며, 취득 후에는 최대 6년간 미국에서 일할 수 있다.

이 비자로 가장 많은 수혜를 받은 산업은 기술 분야다. 워싱턴포스트(WP)는 기술회사들이 오랫동안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등 직원을 유치하기 위해 H-1B 비자에 의존해 왔다고 짚었다. 대표적인 회사가 바로 세계 최대 물류회사인 아마존이다.

머스크는 "내가 스페이스X, 테슬라 그리고 미국을 강하게 만든 수백 개의 다른 회사를 만든 중요한 사람들과 함께 미국에 있는 이유는 H-1B 때문"이라며 "나는 당신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 문제에 대해 전쟁을 벌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트럼프 지지층 내 H-1B 비자에 반대하는 이들을 "뿌리 뽑아야" 할 "경멸할 만한 바보들"이라 거칠게 비판했다.

그와 함께 정부 효율부를 이끌 비벡 라마스와미 역시 앞서 미국이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유지할 만큼 숙련된 근로자를 양성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어 H-1B 비자를 옹호했다.

미국 뉴욕시에서 한 시위자가 "국경 장벽을 완성해라" "트럼프가 미국을 구한다"는 표어가 적힌 깃발을 들고 있다. 2023.05.16/ ⓒ AFP=뉴스1 ⓒ News1 권진영 기자

트럼프의 극렬한 지지층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오랜 책사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 전략가는 새해 전야에 머스크의 "얼굴을 찢어버리겠다"고 위협했다.

그는 실리콘 밸리가 미국인의 일자리를 줄인 것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배넌은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비자 문제가 아닌 "이 나라 중산층을 내쫓는 방식의 핵심"이라고 했다.

H-1B 비자는 트럼프가 반대한 '불법 이민'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배넌을 포함한 전통적 트럼프 지지층은 해당 비자가 일자리를 구하는 미국인을 희생시키고, 기업이 값싼 외국 노동력을 선택하도록 한다고 주장한다. 반이민 정책이 주축인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정책의 핵심이 훼손된다는 것이다. 배넌은 "우리는 그것(H-1B)이 사라지기를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첫번째 재임기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였던 2020년 6월, 식품 공급망 노동자를 제외한 H-1B 비자 소지자의 입국을 거부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지난달 21일 뉴욕포스트에 H-1B 비자를 지지한다고 입장을 선회하며 "나는 H-1B 비자를 항상 좋아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중 H-1B 비자가 미국인의 일자리를 뺏는다며 반대한 전적이 있어 언제까지 머스크의 손을 들어줄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뉴욕주 빙엄턴 대학교 소속 정치 분석가 도널드 니먼은 AFP 통신에 "트럼프는 자신을 백악관으로 이끈 문제인 경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술 부문을 발로 차는 것은 나쁜 정치 행위"라고 짚었다.

반면 일각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이 자신의 권력은 노동계급의 지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머스크에게 좋지 않게 귀결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realk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