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러시'로 '아메리칸 드림' 무대 된 캘리포니아 [역사&오늘]

9월 9일, '캘리포니아주' 美 31번째 주 편입

캘리포니아주 최초의 수도 세너제이(산호세)에 위치했던 시청 건물. (출처: Unknown Author, California Capitol Museum, 삽화(1850),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50년 9월 9일, 캘리포니아가 미국 31번째 주로 편입됐다. 미국 서부의 광활한 지역인 캘리포니아는 1846∼47년 미국·멕시코 전쟁의 결과, 1848년에 미국에 할양됐다.

1848년 캘리포니아에선 엄청난 금맥이 발견됐다. 이 소식은 1849년 동부에 전해졌다. 미국에 갓 도착한 이민자들은 이 큰 유혹에 매료됐다. 사람들이 밀려들며 1849년 1만 5000명이던 인구는 1850년 10만 명을 넘어섰다. 이것이 '골드러시'다. '포티나이너'(forty-niner,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라는 용어도 이때 생겼다.

인구 급증과 함께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자치 정부 구성을 원했다. 1849년 주민들은 헌법을 제정하고 주 지위를 신청했다. 하지만 노예제도 문제로 인해 미 연방의회에서는 캘리포니아에 대한 주 지위 승인이 지연됐다.

당시 미국은 노예제도를 허용하는 '노예주'와 금지하는 '자유주'가 대립했다. 1820년 '미주리 타협'에 따르면, 캘리포니아는 노예주에 해당했다. 새로운 주에 대한 자유주와 노예주를 가르는 경계선인 '위도 36도 30분' 이남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자유주를 원했고, 이는 세력 균형 붕괴를 우려한 남부 노예주들의 반발을 샀다.

1850년 '대타협'을 통해 캘리포니아는 자유주로 편입됐다. 대신 남부 노예주들을 달래기 위해 '도망노예법'이 더욱 강화됐다. 노예제도가 허용되는 뉴멕시코 준주와 유타 준주도 설립됐다. 이 합의는 미국 내 노예제도와 관련한 남북 갈등을 일시적으로 완화했다.

캘리포니아의 주 지위 승인은 미국 역사에 중요한 사건이었다. 캘리포니아는 미국 서부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늘날에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넓고, 가장 인구가 많으며, 경제적으로 가장 번영하고, 다양한 문화가 꽃피는 주 중 하나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