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통역사 긴장 풀어준 힐러리와 트럼프 잡는 검사 출신 카멀라[기자의 눈]
- 신기림 기자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2009년 힐러리 클린턴이 미국 국무장관으로 재임하던 시절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초년병 시절 외교부 출입이었던 기자는 힐러리의 방한 소식에 기대와 긴장이 교차했다.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여성 중 한 명인 힐러리의 화려한 언변에 한국 카운터파트가 주눅들지 않을까 내심 걱정도 됐다.
일은 엄한 데서 터졌다. 당시 우리 외교부 소속 여성 동시통역사가 수많은 플래시 세례에 잔뜩 긴장했는지 더듬거리며 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몇 차례 실수를 목격한 힐러리는 여성 통역사에게 잠시 숨을 고르고 천천히 통역해도 괜찮다며 긴장을 풀어줬다.
힐러리의 배려 덕분인지 이후 통역은 큰 문제 없이 재개됐고 기자회견도 잘 마무리됐다. 말만 잘하고 차갑기만 할 것 같았던 힐러리에 대한 편견이 눈 녹듯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15년이 지나 이제 할머니 힐러리는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같은 도전장을 내민 카멀라 해리스를 향해 따뜻한 응원을 보냈다. 그는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 전당대회 첫날 "해리스는 아이들과 가족, 미국을 돌보지만 트럼프는 자기 자신만 신경 쓴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리스는 2016년 대선에 도전했다가 패배한 힐러리와는 다른 선거 전략을 짠 것 같다. 8년 전 힐러리는 유리천장을 깬다는 메시지에 집중했지만 해리스는 흑인, 여성이라는 점보다는 경력에 집중하고 있다는 게 외신들의 평가다.
해리스는 여성이라는 점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여성 유권자들이 중요시하는 정책에 초점을 맞춰 이들의 표를 끌어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문제는 핵심 경합주 선벨트와 러스트벨트에서 중도층의 표심을 사로 잡을 만한 정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 이슈에서 해리스는 트럼프에 여전히 밀린다. 해리스가 처음으로 공개한 경제 계획은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비난에 휩싸였다. 가격폭리를 금지하겠다는 해리스의 공약에 대해 민주당 후보에 우호적인 워싱턴포스트(WP) 조차 사설에서 "포퓰리즘적 속임수(populist gimmicks)"라고 힐난했다.
높은 물가에 좌절하는 미국 중산층의 마음을 사로 잡지 못하면 해리스 역시 힐러리처럼 세계 최대 경제국 미국을 이끌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차지하는 데에 실패할 것이다.
shink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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