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면책특권 일부 인정 대법원 판결 덕에 '사법 리스크' 벗어[딥포커스]
"대통령 공적행위엔 불소추 특권 추정돼"…트럼프 형사재판 4건 중 3건 '연기'
'본안격' 1.6 의사당 점거 재판부터 직격탄…성추문 입막음 선고는 예정대로
- 김성식 기자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제기한 '면책 특권'과 관련해 1일(현지시간) 미 연방대법원은 전직 대통령이 재임 중 행한 공적인 행위에 한해 형사상 불소추 특권을 인정했다. 대법원이 퇴임 후 기소는 문제없다고 판단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1심 법원으로 돌려보냄에 따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소된 4건의 형사재판 중 '성추문 입막음' 사건을 제외한 3건은 오는 11월 대선 전 재판이 불가능하게 됐다.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은 이날 판결문을 통해 "삼권 분립의 헌법 구조하에 재임 중 행한 공적 행위와 관련한 대통령의 권한은 형사 기소로부터 어느 정도 면책을 받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어 면책 특권은 "핵심 헌법 권한과 관련해 절대적"이며 전직 대통령도 "공식 책임의 범위 내 행위에 대해선 최소한 추정적 면책 특권을 가진다"고 적시했다. 그러면서 로버츠 대법원장은 면책 특권이 필요한 이유로 "대통령이 기소당할 두려움 없이 공정하게 자신의 직무를 수행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대통령의 비(非)공식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면책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법관 6명 '찬성' 의견에 3명 '반대' 의견으로 재판부는 피고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제기한 면책 특권 주장을 기각한 1·2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워싱턴DC 지방법원으로 환송해 2021년 1월 6일 지지자들을 상대로 국회의사당 점거 사태를 선동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혐의가 공적 행위에 해당하는지부터 판단할 것을 주문했다.
대통령 면책 특권과 관련해 앞서 1·2심인 워싱턴DC 연방지법과 연방항소법원은 모두 피고인 신청에 기각 결정을 내리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현재 퇴임한 만큼 다른 형사 피고인과 마찬가지로 기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1.6 사태를 두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받는 혐의가 직무상 공적인 행위인지 사적인 행위인지 여부는 판단하지 않았다. 이에 대법원은 혐의의 공무성을 가릴 필요가 있다고 보고 하급심 판결의 흠결을 들어 처음부터 다시 판단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내란·외환을 제외하면 현직 대통령에게 형사상 불소추 특권을 부여한 한국 헌법과 달리 미국 헌법과 법률엔 대통령 면책에 관한 어떠한 규정도 명문화돼 있지 않다. 이날 로버츠 대법원장이 헌법상 부여된 원활한 대통령 직무 수행을 위해 면책 특권은 '추정된다'고 판결문에서 반복해서 강조한 배경이다. 대법원은 1982년과 1997년 각각 리처드 닉슨·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피소된 사건에서도 국가 최고 정책 책임자로서 행한 공적인 행위와 관련해선 민사적 책임이 면제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 형사상 불소추 특권이 인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보수 우위의 연방대법원이 또다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면서 11월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상당수 사법 리스크를 덜게 됐다. 일단 이번 면책 특권 재판의 본안 격인 1.6 사태에 따른 '대선 인준 뒤집기 시도' 관련 재판이 기약 없이 연기됐다. 잭 스미스 연방특검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인준을 뒤집고자 의회에 난입한 것으로 보고 이들을 선동한 책임을 물어 지난해 8월 트럼프 전 대통령을 기소했다.
점거 가담자들에게 중형을 선고했던 타냐 처트컨 워싱턴DC 연방지법 판사에게 대선 뒤집기 재판이 배당되는 등 판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지난해 10월 트럼프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전직 대통령 면책 특권을 처음으로 주장했다. 이에 대해 지난해 12월 워싱턴DC 연방지법과 지난 2월 연방항소법원은 모두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에 불복해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 상고하면서 지난 3월 5일 열릴 예정이던 1심 재판은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중단됐다.
이날 사건을 돌려받은 처트컨 판사는 앞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1.6 사태 관련 혐의가 공적 행위였는지 여부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여기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1.6 사태 전 지지자들을 상대로 한 연설과 소셜미디어 트루스 포럼 등에 올린 게시글 등이 포함된다. 이날 대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의 1월 6일의 트윗(트위터 게시물), 연설 등이 공적인 행위인지 여부는 내용과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각각 개별적인 판단을 요구했다.
처트컨 판사는 대법원이 파기 환송을 결정하면 트럼프 전 대통령 측에 90일간의 재판 준비 기일을 부여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후 배심원 소집부터 평결과 판결까지 1심에서 소요될 시간은 6~8주 정도다. 이마저도 그간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의 '재판 지연' 전술을 차단해 온 처트컨 판사의 성향을 감안해서 재판이 빠르게 진행된다고 가정한 결과다. 따라서 4개월 남은 대선 전까지 워싱턴DC 연방지법 재판부가 심리를 마치고 판결을 내리기엔 물리적인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자연스럽게 본안 격인 대선 인준 뒤집기 시도 재판은 면책 특권 재판이 나올 때까지 뒤로 밀릴 수밖에 게 됐다. 이 외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취임 이후 행한 혐의로 기소된 △백악관 기밀문서 유출(마이애미 연방지법) △조지아주 대선 개입(조지아주 풀턴고법) 등 2건의 형사 사건 역시 이날 면책 특권이란 새로운 법리가 대법원에서 조건부로 인정된 만큼 11월 대선 전 판결을 더욱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1년 1월 퇴임 이후 국가안보와 관련한 기밀문서 100여건을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내 자택에 사전 승인 없이 보관한 혐의로 스미스 연방특검에 의해 지난해 6월 기소됐다. 1심을 맡은 에일린 캐넌 마이애미 연방지법 판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 혐의와 관련한 여러 법률적 쟁점이 검찰과 변호인단 사이에서 정리되지 않았다며 지난 5월 20일로 예정됐던 재판 개시일을 무기한 연기한 상태다.
조지아주 대선 개입 사건은 수사팀 검사들의 염문설이 불거지면서 재판 일정 한차례 꼬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대선 당시 경합 지역인 조지아주 선거에서 간발의 차로 패배하자, 이듬해 1월 브래드 래펜스퍼거 조지아주 국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한 1만1780표를 찾아내라'고 압박한 혐의로 지난해 8월 패니 윌리스 조지아주 풀턴 카운티 검사장에 의해 기소됐다.
그러나 윌리스 검사장이 이후 기용된 네이선 웨이드 특별검사와 부적절한 관계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지난달 5일 조지아주 항소법원은 윌리스 검사장의 재판 참여 자격에 대한 검토가 진행되는 동안 조지아주 풀턴고등법원에서 열리던 대선 개입 관련 1심 재판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혔다. 항소법원이 구두변론 기일을 오는 10월로 잡고 내년 3월까지 결정을 내리기로 예정한 만큼 대선 전 본안 재판이 열리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성인 배우에게 회삿돈으로 성추문 입막음 돈을 건넨 혐의로 지난 5월 뉴욕주 맨해튼지방법원에서 유죄 평결을 받은 사건의 경우 회삿돈을 건넨 시기가 2017년 취임 전으로 대통령 면책 특권과 무관하다. 따라서 오는 7월 11일로 예정된 1심 판결에서 후안 머천 맨해튼지법 판사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실형을 선고할 가능성도 여전히 열려 있다.
seongs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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