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 권도형 美민사재판 패소 수순…배심원단 "투자자 속였다"(종합)
스테이블코인 자처했지만 54조원 손실…SEC "가격방어 알고리즘 있다고 속여"
테라 측 "손실 복구하려 최선 다하는 중"…거액의 벌금·부당이득반환금 낼판
- 김성식 기자, 강민경 기자
(서울=뉴스1) 김성식 강민경 기자 = 암호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미국 민사재판에서 패소 위기에 처했다.
로이터·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5일(현지시간) 뉴욕남부 연방지방법원 배심원단은 피고 권 대표와 테라폼랩스가 테라·루나가 안전하다고 속여 투자자들에게 거액의 손실을 입힌 책임이 인정된다고 평결했다.
원고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2021년 11월 권 대표와 테라폼랩스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테라폼랩스는 테라와 자매화폐 루나를 선보이면서 자체 알고리즘이 발행량을 조절하기 때문에 달러와 가치가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임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2021년 5월 테라의 가치가 1달러 아래로 하락하자 권 대표와 테라폼랩스가 가격 방어를 목적으로 제3자 대량 매입을 주선했다. 이후 테라 가치가 회복되자 이를 회사의 알고리즘 덕분이라고 설명해 투자자들을 속였다는 게 SEC의 판단이다.
SEC는 또한 이들이 한국 간편결제 애플리케이션 '차이'에서 자사의 암호화폐가 사용된다고 투자자들에게 거짓으로 홍보한 점도 문제 삼았다. 테라와 루나는 결국 2022년 5월 폭락해 SEC 추산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400억달러(약 54조원) 손실을 안겼다. 이에 SEC는 이번 소송에서 권 대표와 테라폼랩스에 민사상 벌금과 부당이득반환을 요구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뉴욕남부 연방지방법원의 제드 레이코프 판사는 테라폼랩스가 발행한 스테이블코인의 증권성을 인정해 미등록 증권을 판매한 책임이 있다고 봤지만, 권 대표와 테라폼랩스가 투자자들을 속였는지 여부에 대해선 배심원단의 판단에 맡겼다.
이날 7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2시간 만에 심리를 마친 뒤 권 대표와 테라폼렙스가 제3자에 의한 가격방어를 알고리즘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결제앱 차이에 사용된다고 거짓 홍보한 점을 사기라고 인정했다. 이에 따라 구체적인 민사상 벌금과 부당이득반환금은 레이코프 판사가 향후 판결을 통해 확정할 예정이다.
이날 SEC 측 변호인은 배심원 최후 변론에서 테라폼랩스의 성공 신화는 "거짓말 위에 쓰여진 것"이라며 이들이 "큰 스윙을 하다 실패했는데도 사람들에게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명백한 사기"라고 말했다. 반면 권 대표와 테라폼랩스 측 변호인은 최후 변론에서 SEC의 주장은 증언에만 의존한 것이며 권 대표와 테라폼랩스는 사업 투자자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평결은 권 대표가 미국에서 받는 형사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공교롭게도 평결 몇시간 전 권 대표의 송환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가 미국으로 인도될 가능성이 다시 열리게 됐다. 몬테네그로 대법원이 권 대표 한국행을 결정한 원심을 파기 환송하면서다. 미국 인도 결정을 내렸다가 한국행으로 번복했던 원심 결정이 대법원에서 또 한번 뒤집힌 셈이다.
금융사기 등의 혐의로 권 대표를 수사해 온 한국과 미국은 권 대표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몬테네그로를 상대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해 3월 각각 몬테네그로 법무부에 범죄인 인도를 공식 요청했다.
테라·루나 폭락 사태 한 달 전인 2022년 4월 한국을 출국한 권 대표는 11개월간 도피 행각을 벌이다가 지난해 3월 몬테네그로에서 코스타리카 국적의 위조 여권을 소지한 혐의로 체포돼 현지 법원에서 징역 4개월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이후 권 대표는 형기를 마쳤지만, 금융 사기 혐의를 수사하던 한국·미국 정부가 동시에 신병 인도를 요구하면서 몬테네그로 법원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구금 기한이 연장됐다. 지난달 23일 구금 기한 만료로 출소해 현재 몬테네그로에 머물고 있다.
seongs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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