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경합주' 노스캐롤라이나 민심은 트럼프?…지지자들 1㎞ 긴 줄
노스캐롤라이나 1980년 이후 오바마 때 1차례 외엔 공화당 후보 승리
2008년 대선 이후로는 4%p 미만 초박빙 접전…바이든 지지자들 상당수 사전투표
- 김현 특파원
(그린즈버러·롤리<노스캐롤라이나>뉴스1) 김현 특파원 = "노스캐롤라이나가 '레드 스테이트(Red state·공화당 우세주)'라고요? 그것은 후보가 누구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2일(현지시간) 새벽 미국 북버지니아에서 빗길 속을 차로 4시간여 달려 도착한 노스캐롤라이나의 주도 '롤리(Raleigh)'에 위치한 '노스캐롤라이나(NC) 주립대에 설치된 사전투표소의 한 관계자는 뉴스1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선거관리를 담당하는 인사인 만큼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답변으로 보였지만, 노스캐롤라이나가 그만큼 승패를 뚜렷하게 알 수 없는 '경합주'로 분류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도 읽혔다.
1980년 대선 이후 노스캐롤라이나는 지난 2008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을 때 1차례를 제외하곤 모두 공화당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른바 '레드 스테이트'로 평가받는다. 전체 주(州) 인구 1050만명 중 백인 비율이 60%대다.
그러나 15명의 선거인단이 걸린 대선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난 2008년 대선 이후부터는 4%p 미만의 초박빙 접전을 펼쳐 온 지역이다.
2008년 대선 당시 오바마 전 대통령은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에게 0.32%포인트(p)의 격차로 신승을 거뒀지만, 4년 뒤인 2012년엔 밋 롬니 공화당 후보에게 2.04%p차로 패배했다.
2016년 대선 당시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게 3.66%p의 다소 여유 있는 격차를 보였지만, 2020년 대선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1.34%p의 격차로 겨우 승리했다.
대선과 달리 1992년 이후 실시된 8차례의 주지사 선거에선 2012년 한 차례를 제외하곤 모두 민주당 후보가 승리했다. 노스캐롤라이나의 민심을 좀처럼 가늠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대세론 확인? 행사 4시간 전부터 트럼프 유세장 앞 긴 줄…1㎞가량 늘어서
그러나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인기는 뚜렷하게 드러났다. 지난 1월부터 진행된 모든 경선에서 승리하는 등 '대세론'을 재확인시키는 모습이었다.
이날 오후 그린즈버러에 위치한 '콜리세움 콤플렉스'에서 열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세 행사엔 수천명의 지지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세는 오후 2시부터 시작했지만, 이미 4시간 전부터 입장을 위한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섰다. 유세 시간이 다가오면서 점점 더 많은 지지자들이 몰려들자, 대기 줄은 1㎞가량으로 길어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적힌 빨간색 모자를 쓰거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지지자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유세장 주변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세 용품을 파는 상인들도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유세장 인근 도로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타고 온 차들이 줄을 섰고, 인근 주차장들은 모두 통제한 채 '20~25달러'의 주차비를 내걸고 차들을 향해 손짓을 보냈다.
5000석 규모의 유세장은 철저한 보안검색을 거쳐야 입장이 가능했다. 이로 인해 대부분 지지자는 보안검색을 받기까지 2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고, 뒤늦게 도착한 지지자들은 행사장에 들어가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날 유세장엔 7000여명 지지자가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과 국경 및 이민 문제 등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 실패를 지적하며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70대 남성 길버트는 뉴스1과 만나 "지금 미국의 상황은 내리막길에 있다"며 기록적인 수치를 보이는 불법 이민 문제를 거론, "불법 이민 문제는 가장 시급한 문제다. 이로 인해 우리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라고 했다.
60대의 백인 여성 메리 힐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탄압이 도가 넘었다면서 "역대 어느 대통령도 이런 방식으로 대우를 받지 않았다. 우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40대의 남성 제임스도 사법리스크 등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임스는 여전히 공화당 경선 레이스에 남아 있는 헤일리 전 대사에 대해 "선거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조속한 중도하차를 촉구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노스캐롤라이나에 대한 인연을 강조하며 적극적인 지지를 호소했다. 그는 "잊지 마시라. 제 손녀의 이름이 캐롤라이나다. 그것은 매우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차남인 에릭 트럼프의 딸 이름이 캐롤라이나인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시간40분가량 진행한 연설에서 경선 경쟁자인 헤일리 전 유엔대사에 대해선 '무시 전략'으로 일관한 반면 본선 경쟁자가 유력한 '바이든 대통령 때리기'에 집중했다.
그는 멕시코와 인접한 남부 국경의 안보 및 불법 이민 문제와 관련, "수백만 이민자들의 유입을 허용한 바이든 대통령의 국경정책은 미국을 전복하려는 음모"라고 맹비난했다.
그는 또 불법 이민자들의 입국을 '침략(invasion)'이라고 규정하고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공립학교를 이주민 캠프로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헤일리 전 대사에 대해선 직접 거명하지 않은 채 "어떤 (전직) 주지사를 이겼다"고 하거나 "지난 5일간 이 여성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는 등 깎아내렸다.
하이포인트 대학이 지난 1일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올해 노스캐롤라이나 공화당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 투표할 가능성이 있거나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69%를 얻어 헤일리 전 대사(24%)를 여유 있게 제쳤다.
◇헤일리, 트럼프와 130㎞ 떨어진 곳에서 유세…"대선서 실제 승리할 사람 필요"
헤일리 전 대사도 전날에 이어 이날에도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유세를 펼치며 민심훑기에 집중했다.
헤일리 전 대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1시간30분 이른 이날 낮 12시30분에 그린즈버러에서 130㎞ 떨어진 롤리의 한 기차역에서 유세를 펼쳤다. 이 자리엔 1000여명의 지지자가 참석했다.
헤일리 전 대사는 고령인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을 싸잡아 공격하면서 '새로운 리더십'을 부각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자신이 바이든 대통령을 상대로 더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 여론조사를 상기시킨 뒤 "우리는 실제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밤낮으로 8년 동안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부정적이지도, 드라마도, 복수극도 없이 미국 국민들을 위한 진정한 결과로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헤일리 전 대사는 유세 이후 기자들과 만나 대다수의 미국인이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중 한 명을 미국의 지도자로 원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계속할 것이고, 계속 밀고나갈 것"이라고 슈퍼 화요일 이후에도 경선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헤일리 전 대사의 유세장에서 만난 80대 여성 잭슨은 "만약 대선이 '트럼프 대 바이든'의 구도로 귀결된다면 어느 쪽에도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저는 80대이지만, 대선은 젊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잭슨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선 "도덕성이 낮고 품위가 없다"며 "우리는 품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사전투표 마감…"투표율 괜찮은 편"
노스캐롤라이나에선 이른바 '슈퍼 화요일' 경선일인 오는 5일 민주당과 공화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프라이머리(예비선거) 앞서 사전투표도 진행됐다. 사전투표는 이날 오후 3시에 마감됐다.
뉴스1이 찾은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사전투표소에도 프라이머리 사전투표에 참여하기 위한 발걸음이 적지 않은 모습이었다. 사전투표소의 한 관계자는 이날 오전에만 300여명이 투표소를 찾았다면서 "투표율이 괜찮은 편"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투표소 관계자인 50대 여성 드루실라는 "노스캐롤라이나 100개 카운티 중에서 롤리 지역을 포함한 웨이크 카운티 인구가 가장 많은 만큼 사전 투표 열기도 뜨겁다"며 "전체 등록 유권자 중에 3분의 2는 사전투표하고 나머지 3분의 1이 투표날인 5일에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웨이크 카운티엔 82만3000여명의 등록 유권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대학가라 그런지 해당 투표소엔 민주당 지지 성향의 유권자들이 많이 찾는 듯한 분위기였다.
남편과 함께 사전투표소를 찾은 60대 여성 바바라는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힌 뒤 "트럼프는 정직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며 "바이든 대통령이 반드시 이번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1월15일 공화당 첫 경선지인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대승을 거두자, 사흘 만인 같은 달 18일 롤리를 찾아 유세를 하는 등 노스캐롤라이나에 공을 들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 캠프는 노스캐롤라이나를 조지아 등과 함께 우선 공략지역으로 삼고 있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다만, 가늠하기 힘든 노스캐롤라이나 민심처럼 자신의 속내를 밝히지 않는 유권자들도 적지 않았다.
뉴스1이 사전투표에 대해 물어본 10명 중 4명 꼴은 답변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이유를 설명하는 등 언급 자체를 피했다.
gayunlov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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