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흔든 트럼프…미국 중심 '가치 동맹'도 흔들리나

11개국만 방위비 충족했지만 美, 中 등 패권경쟁서 영향력
재집권 시 나토 탈퇴 어렵지만 법원 회부 등 시도할 수 있어

미국 공화당 유력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2024.2.11.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

(서울=뉴스1) 조소영 기자 =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의 공화당 유력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을 향해 '충분한 방위비 분담금'을 촉구하고 그렇지 않으면 '집단 방위'를 폐기하겠다는 취지로 발언하면서, 나토는 물론 미국과 동맹을 맺은 국가들 사이에 불안감이 번지고 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나토 회원국들 중 독일과 프랑스, 폴란드 등 일부 유럽 국가 정상들이 자체적으로 안보 강화에 나설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자유, 민주주의 등 '가치 공유의 동맹'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동맹 조약 핵심 '나토 헌장' 전면 부정

이번 사태의 발단은 지난 10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입'에서 시작됐다.

재임 중에도 여러 차례 나토 회원국들의 추가 방위비를 압박하고 미국의 나토 탈퇴 카드를 꺼내들었던 그는 이날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콘웨이 유세에서 과거 한 나토 회원국 지도자와의 대화 내용을 소개했는데, 골자는 '돈(방위비)을 내지 않는다면 내가 대통령인 미국은 러시아가 나토 회원국들을 공격하는 것도 용인할 것'이라는 취지였다.

이는 나토 헌장 제5조를 전면 부정한 것으로 해석됐다. 나토 헌장 5조는 회원국 중 한 나라가 공격을 받게 되면 회원국 전체에 대한 침공으로 간주, 다른 회원국들이 집단으로 무력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으로, 사실상 동맹 조약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나토 회원국들의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 이전 오바마 행정부 때도 논의됐던 주제이긴 하다. 2014년 당시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나토 회원국들이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을 방위비 예산으로 배정하기로 합의도 했다.

21일(현지시간)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에서 포병 병사들이 러시아 군 진지를 향해 스웨덴 제 아처 곡사포를 발사하고 있다. 2024.1.23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나토 회원국 중 11개국만 '2% 방위비' 달성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현재, 나토 측 통계에 따르면 군대가 없는 국가인 아이슬란드를 제외한 회원국 30개국(총 회원국 31개국) 중 11개국만이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거나 초과했다.

12일 워싱턴포스트(WP)가 인용한 해당 통계에 따르면 슬로바키아, 영국, 라트비아, 헝가리, 루마니아, 핀란드,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가 2% 이상을 방위비 예산으로 썼다. 그리스와 미국, 폴란드는 각각 3%대의 방위비 지출을 기록했다.

반면 룩셈부르크와 벨기에, 스페인, 튀르키예를 비롯해 슬로베니아, 캐나다, 이탈리아, 포르투갈, 체코는 기준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독일과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와 알바니아,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북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프랑스도 마찬가지였다.

WP는 "2%를 초과 지출한 대부분의 국가는 러시아와 국경을 공유하고 있거나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전선 근처에 위치해있다"면서 지난해 가장 많은 방위비(3.9%)를 낸 폴란드는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국경 일부를 공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미국은 3.49%로 2위를 차지했는데, 실제 수치를 따져 보면 미국의 국방 예산은 8600억 달러(약 1150조3400억원)로 다른 모든 나토 동맹국들의 (국방 예산을) 합친 것의 두 배가 넘는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 주최국 영국의 존슨 총리등 나토 회원국 정상들이 2019년 12월4일(현지시간) 런던 외곽 왓퍼드의 그로브 호텔에서 나토 창설 70주년 기념 정상회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손해 보는 장사?…美 '동맹'으로 영향력

나토의 방위비 분담금에 강제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앞서 '2% 합의'가 있었다는 점, 또 수치만 놓고 본다면 '나토 회원국들의 방위비 무임승차론'을 제기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장에 일면 수긍이 가는 부분도 존재할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책고문으로 나선 키스 켈로그 전 국가안보회의(NSC) 사무총장이 13일 '돈에 따라 방어의 급 또한 달라져야 한다'는 취지로 나토의 '계층화된 동맹론'을 주장한 것도 이와 동일선상의 의견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수치상으론 미국이 적자를 보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외교·안보적 관점에서 봤을 때 이는 미국이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는 게 중론이다.

구소련(러시아)에 이어 중국과의 패권전쟁을 펼쳐온 미국으로서는 자유, 민주주의 가치 등을 공유하는 동맹을 기반으로 자국 보호는 물론 다방면에서 세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만약 트럼프가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옮긴다면 현재 나토 회원국인 구소련 국가들을 러시아의 품으로 다시 끌어들이려 오랜 기간 노력해 온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또 미국의 군사동맹들을 위태롭게 하고 중국의 대만 병합 목표와 같은 팽창주의적 욕망을 가진 다른 국가들에 용기를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올해 말 대선에서 승리해 미국을 나토에서 탈퇴시키려고 시도한다면 이는 제도적으로 제한될 수 있다. 미국 상원 3분의 2의 승인이나 의회 동의 없이 미국을 나토에서 탈퇴시키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 앞서 통과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 문제를 법원에 회부하는 방식 등을 시도할 가능성은 상당하다.

악시오스는 "트럼프는 나토의 공동 예산에 대한 미국의 분담금을 삭감하거나 유럽 주둔 미군을 철수하거나 만장일치 승인이 필요한 신규 회원국의 가입을 막을 수 있다"며 "또 나토 회원국이 공격을 받는다 하더라도 트럼프는 법적으로 군대를 파견할 의무가 없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지원을 제한하거나 완전히 보류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cho1175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