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 성착취·우울증 온상된 소셜미디어…美 규제에 속도 못내는 이유

지난해 성착취 신고 3600만건 사상최다…상원 청문회 소셜미디어 CEO 줄소환
통신품위법상 인터넷업자 면책특권 인정…제·개정 시도에 기업·시민단체 반발

아동 성착취 온상이 된 소셜미디어 자료사진. ⓒ News1 DB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온라인 공간에서 소통의 장을 열며 한때 미국 실리콘밸리의 혁신으로 부상했던 소셜미디어가 이제는 미성년자 성착취와 우울증의 온상으로 떠올랐다. 미성년자에게 부적절한 게시물이 버젓이 유통되는 데도 면책 특권을 등에 업은 사업자가 이를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미 의회는 규제 입법에 착수했지만 법안 본회의 상정조차 난항을 겪고 있다.

◇성착취물 대다수 美 소셜미디어로 유통…페이스북, 신고 2100만건 '1위' 불명예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실종학대아동방지센터(NCMEC)는 소셜미디어 등지에서 발생한 18세 미만 아동 성착취물 관련 신고가 지난해 3600만건을 돌파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성인 범죄자들이 미성년자를 상대로 또래로 위장해 음란 사진과 영상을 찍어 보내도록 유도한 뒤 이를 빌미로 돈을 요구하거나 성착취 강도를 높이는 수법이 주로 사용됐다.

성착취 피해를 당한 미성년자들은 자신들이 찍은 사진과 영상이 가족과 지인들에게 유포되진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지난해 10대 남학생 12명이 성착취 피해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정도다. 성착취물의 대다수는 미국 소셜미디어를 타고 유통됐다. 기업별로는 2022년 페이스북이 2100만건 신고로 1위란 불명예를 안았고 구글(220만건), 스냅챗 (55만건)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소셜미디어는 미성년자들의 정서 전반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5월 미국 보건정책을 총괄하는 비벡 머시 의무총감은 공중보건 권고문을 내고 소셜미디어에 노출된 아동·청소년은 사회적 압력과 또래 집단과의 비교로 자존감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퓨리서치 센터는 10대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사용량이 증가할수록 우울증 유병률과 자해·자살 충동으로 인한 응급실 방문 건수가 증가했다고 경고했다.

◇미 상원 청문회서 저커버그 집중포화…"차단보다는 정보 고지가 최선" 강변

미 의회도 이러한 소셜미디어의 심각성을 알고 있다. 지난달 31일 아동 성착취 청문회를 연 상원 법사위원회는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주요 소셜미디어 CEO 5인을 증인으로 소환해 질타했다.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이들을 싸잡아 "사람을 죽이는 제품을 갖고 있다"고 직격했고, 상원 법사위 민주당 위원장인 딕 더빈 의원은 NCMEC의 통계를 인용해 페이스북이 아동 성착취물 피해가 심각하다며 저커버그를 나무랐다.

의원들의 집중포화를 맞은 저커버그는 방청석에 있던 성착취 피해 가족들에게 결국 사과했다. 저커버그는 "여러분의 가족이 겪어야 했던 일을 그 누구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업계 전반에 걸친 노력을 계속하겠다"며 재발 방지를 위한 투자를 약속했다. 그럼에도 저커버그는 소셜미디어 책임은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이 "인스타그램에선 '아동 성착취 사진이 있다'고 경고하고 이용자들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준다"며 "바로 '자료확인', '어쨌든 결과보기'다. 저커버그씨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느냐"고 강하게 몰아붙였지만 저커버그는 "콘텐츠를 차단하는 것보다 사용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고지해 접근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이 실효성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소유한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회의사당 상원 법사위원회 청문회장에서 소셜미디어 성착취 피해자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2024.1.31.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

◇통신품위법 230조 소셜미디어 손배 막아…STOP CSAM·KOSA 등 개정법안 발의

저커버그가 이처럼 강변할 수 있었던 건 그간 미국 사회가 통신품위법(CDA) 230조에 의거, 소셜미디어 업계에 폭넓은 면책특권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통신품위법은 인터넷 태동기인 1996년 제정된 법률로 당시 전화접속 모뎀을 타고 음란물이 범람하자 외설·폭력 정보 송수신 행위에 대해 2년 이하 징역 혹은 25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듬해 연방대법원이 인터넷 사업자들의 유통 행위에 대해선 그 책임을 면제한다고 판결했고 이러한 면책특권을 담은 230조가 제정됐다.

덕분에 야후·구글을 비롯한 초기 인터넷사업자들은 '콘텐츠 발행자'(publisher)로 인정받아 민형사 소송 걱정 없이 사업을 영위할 수 있었고 지금의 소셜미디어 제국을 이룩한 페이스북, 엑스(트위터) 등도 법의 수혜를 입었다. 지난해 5월에도 연방대법원은 2017년 튀르키예에서 발생한 이슬람국가(IS) 테러로 숨진 희생자 가족들이 페이스북·엑스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통신품위법 230조를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하급심 판결을 유지했다.

이처럼 소셜미디어의 면책특권 탓에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가 불가능한 상황이 반복되자 연방의회는 초당적 규제법안을 발의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5월 상원 법사위는 아동성착취물(CSAM) 피해자가 소셜미디어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STOP CSAM' 법안 통과시켰다. 같은해 7월에는 상원 상무위가 13세 미만의 소셜미디어 용을 금지하고 13~17세는 부모 동의를 의무화한 온라인아동안전법(KOSA)을 통과시켰다. 캘리포니아, 메릴랜드, 미네소타 주 의회도 소셜미디어에 아동·청소년 보호를 의무화하는 입법에 착수했다.

◇알고리즘 시대 못따라가는 규제 입법…'표현의 자유'에 막혀 본회의 회부 안돼

의원들이 규제 필요성을 느끼게 만든 건 소셜미디어 업계 직원들의 증언이 결정적이었다. 페이스북의 전직 제품 관리자였던 프랜시스 하우건은 2021년 월스트리트저널(WSJ)을 통해 "페이스북이 반사회적 행위를 수익모델로 삼고 있다"고 폭로했다. 페이스북 스스로 자신들의 알고리즘이 10대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방치했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앞서 구글에서 디자인 윤리를 담당했던 트리스탄 해리스는 2020년 다큐멘터리 '소셜딜레마'에 출연해 소셜미디어 업체들이 접속 시간을 늘리기 위해 사용자 맞춤형 알고리즘을 개발해 확증편향을 종용하고, 개인정보를 광고업체에 팔아넘기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에 의원들도 인터넷 사업초기 제정된 통신품위법 230조는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소셜미디어 시대엔 수명이 다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소셜미디어 업계의 로비와 검열을 우려하는 시민단체의 반발 등으로 상원 법사위를 통과한 STOP CSAM과 KOSA 법안은 반년이 지나도록 상원 본회의에 회부되지 못하고 있다. 2021년 미국 최초로 KOSA를 제정한 캘리포니아도 지난해 9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위헌 소지가 있다는 연방지법 판결에 따라 법률 효력이 정지된 상태다. IT 전문매체 더버지에 따르면 우파 시민단체들은 기업 규제와 검열을, 좌파 시민단체들은 아동·청소년 성소수자(LGBT)의 성적 자기결정권 등을 이유로 규제 입법을 반대했다.

더빈 민주당 상원 법사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법안이 의도하지 않은 해로운 결과를 낳을 것이란 우려를 제기하고자 여러 기술기업들이 막후에서 이익 단체를 총동원하고 있다"며 본회의에 회부되지 못한 이유를 설명했다. 더빈 위원장과 STOP CSAM을 공동 발의한 그레이엄 의원은 "차라리 어떤 의원이 법안에 공개 반대하는지 알아보도록 하기 위해" 본회의 회부를 강행하겠다고 했다.

seongs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