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대, 내 나이가 어때서 '현역 뛰기 딱 좋은 때인데'[딥포커스]

'90대 현인'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 홍콩 최고 부자 리카싱 등
역대 최장수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미국 외교 전설 헨리 키신저

2015년 9월22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헨리 키신저 미국 전 국무장관이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환영 만찬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2015.09.22 ⓒ AFP=뉴스1 ⓒ News1 정지윤 기자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나이에 대한 편견을 비웃듯 기대수명을 한참 지난 90대의 나이에도 현역처럼 왕성하게 활동하는 이들의 삶이 최근 조명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작고한 '국민MC' 송해가 95세까지 연예계 현역으로 활동했다. 그는 장수 프로그램인 '전국노래자랑'을 34년동안 진행했으며, 세계 최고령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북에 오르며 '영원한 현역'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도 얻었다.

의료계 원로인 이길여(91) 가천대 총장도 최근 대학 축제에서 '말춤'을 추며 활력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국내 최고령 수필가 및 철학자인 김형석(103) 연세대 명예교수는 최근까지도 인문학 토크 콘서트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강연 및 저술 활동으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줬다.

해외에도 꾸준한 자기관리로 건강을 유지하면서 수십 년째 활동하는 90세 이상 유명 인사들이 적지 않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할리우드 배우 겸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부터 얼마 전 별세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과 버핏의 동업자 찰리 멍거까지, 모두 청년 못지않은 열정을 자랑하던 이들이다.

유엔인구기금(UNFPA)의 올해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출생 후 평균 기대수명은 73.16세다. 기대수명을 20년 초월해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90대 노익장들에게 이목이 쏠린다.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워런 버핏(왼쪽)과 버크셔 부회장인 찰리 멍거가 2019년 5월 오마하에서 열린 주주총회에 참석중이다. ⓒ AFP=뉴스1

◇'90대 현인'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 홍콩 최고 부자 리카싱 등

세계 최고의 투자가로 이름을 알린 '투자의 현인' 워런 버핏. 1930년생인 그는 올해로 93세다. 지난 5월 버핏은 버크셔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장장 5시간 동안 논의를 이끌며 주주들과 치열하게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았다.

버핏의 오랜 동업자이자 오른팔이었던 찰리 멍거 또한 99세를 일기로 지난 28일 별세하기까지 버크셔해서웨이의 부회장직을 지내며 함께 활발하게 활동했다.

미국의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 92세가 된 올해까지 무려 70년 동안 뉴스코퍼레이션과 폭스의 회장직을 역임했다. 그는 곧 일선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직에 머물 예정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머독은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내 직업 생활 내내 매일 뉴스와 아이디어에 골몰했고 그건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역할을 맡을 때"라면서 다른 분야에서의 지속적인 활동을 예고했다.

지난 2015년 2월 미국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이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에서 열린 '베니티 페어 오스카 파티'에 참석한 모습이다. 2015.02.22. ⓒ AFP=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

아시아에서는 홍콩 최고의 부자 리카싱 전 청쿵그룹 회장도 90세까지 활동하다가 은퇴했다. 현재 95세인 그는 은퇴 직전까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3D프린팅 등 미래 산업 분야 기업가들을 직접 만나 투자 기회를 물색했다.

일본 최대 식품 유통체인 '라이프'의 시미즈 노부쓰구 회장은 지난해 96세를 일기로 별세하기 전까지 쉬지 않고 일했다. 그는 자식에게 기업을 세습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유통업계 원로로서 신문과 잡지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응했으며, 강연 활동 또한 활발하게 이어갔다.

지미 카턴 전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각)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부인 로절린 여사의 장례식에 참석을 하고 있다. 2023.11.29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역대 최장수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미국 외교 전설 헨리 키신저 등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역대 최장수'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 10월1일 99세가 됐다. 그는 올해 2월 흑색종이 뇌로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를 중단하고 호스피스 케어 치료를 받고 있다.

카터 전 대통령도 비교적 건강할 때인 91세 때 자신의 회고록 '꽉 찬 인생: 아흔 살의 회고'를 들고 뉴욕 맨해튼과 뉴저지, 애틀랜타, 시카고 등 미국 주요 도시를 방방곡곡 순회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11일 (현지시간)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에서 마하티르 모하맛 전 말레이시아 총리(97)가 기자회견에 참석해 양 손을 편 채 들고 있다. ⓒ News1 한병찬 기자

말레이시아의 국부로 불리는 마하티르 모하맛 전 총리는 올해 98세다. 1964년 정계에 입문해 90년대에 총리를 지내다 정계에서 은퇴했다. 그러다 2018년 화려하게 복귀해 총리로 선출되며 '93세 최고령 국가 정상'이라는 기록을 썼다. 심장병 병력이 있는 그는 지난해 코로나19를 앓았지만 놀라운 회복력으로 병상에서 일어났다.

미국의 외교 전설이었던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달 29일 타계했다. 그는 지난 5월 100세 생일을 맞이했고 7월에는 직접 중국에 가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악수를 나누는 등 민간 외교에 앞장섰다. 그는 러시아로 가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며 의욕을 드러내기도 했다.

미국의 역대 최장수 상원의원인 다이앤 파인스타인 의원 또한 90세까지 현역 의원으로 일하다가 숨을 거뒀다. 그는 숨지기 전날까지도 미국 정부 셧다운 방지 관련 법안의 표결에 참여했다.

리튬이온 배터리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97세에 노벨상을 받은 존 B. 구디너프 교수가 25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100세. 사진은 2019년 영국 런던에서 강연하는 구디너프 교수의 모습. 2019.10.09/ ⓒ 로이터=뉴스1 ⓒ News1 박재하 기자

◇학계와 연예계에서도 활발한 90대 현역 노익장

학계에서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과학자 존 구디너프 텍사스 교수가 97세 때인 2019년 노벨화학상을 '최고령'으로 수상했다. 그는 95세인 2017년까지 동료 과학자들과 함께 전고체 배터리 관련 논문을 발표하는 등 현역 과학자로서 활동했다.

저명한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올해 94세다. 아직도 그는 국제사회에서 큰 목소리를 내는 인물이다. 그는 지난달 13일 성명을 내고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이 집단학살로 이어질 수 있다며 경고의 메시지를 발신하기도 했다.

연예계에서는 할리우드 거장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93세의 나이에도 감독으로 활동한다. 배우이자 감독으로서 영화업계에 60년 이상 몸담은 그는 워너브라더스와 손잡고 영화 '2번 배심원'을 연출하고 있다. 그는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예정이다.

영화 '다크 나이트'의 배트맨 집사 알프레드 역으로 국내에 알려진 배우 마이클 케인은 올해로 90세를 맞이했다. 현재까지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온 그는 영화 '더 그레이트 이스케이퍼'에서 영국 해군의 퇴역 군인이자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역을 맡았다. 그는 개봉 인터뷰에서 은퇴 소식을 알리면서 앞으로 글을 쓰겠다고 예고했다.

할리우드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 ⓒ 로이터=뉴스1

◇이들의 장수 비결은…"병 걸리기 전에 건강관리"

이들의 멈추지 않는 에너지는 어디서 기인할까. 어떻게 이 나이까지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을까.

킹스칼리지런던의 노화 연구 책임자인 리처드 시우는 "장수는 단 하나의 요인이 아니라 유전자의 영향을 받으며, 각 지역의 문화와 국가적인 보건 정책, 개인의 식단과 대기오염 노출도 등 생활 환경에도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중요한 건 생활 습관이다. 세계 각지의 장수마을을 연구해 온 댄 뷰트너 박사는 "평균적인 미국인들에게 약 20%의 기대 수명은 유전자에서 오고, 나머지 80%는 생활 방식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뷰트너 박사는 100세까지 사는 장수 인구가 많은 5곳을 방문한 연구 결과를 '블루존'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뷰트너 박사는 "건강한 습관은 암과 당뇨, 심장병과 같은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는 질병들을 없애는 것을 도울 수 있다"며 생활 방식의 변화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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