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일본의 대륙 침략을 본격화한 중일 전쟁의 시발점" [역사&오늘]

7월 7일, 루거우차오 사건

일본군 포병대. (출처: Unknown aothor, 사진(2013),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37년 7월 7일, 중국 베이징 남서쪽 교외에 있는 루거우차오(노구교)에서 일본과 중국 양국 군대가 충돌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빌미로 일본은 중일 전쟁을 일으키며 대륙 침략의 의도를 명백히 드러냈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본은 만주국을 수립하고 화북 지역에 대한 침략을 강화했다. 중국은 이에 반발하며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와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제2차 국공합작을 통해 항일 전선을 구축했다. 이런 가운데 베이징 근교에는 중국군과 일본군이 대치하고 있었고,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당시 일본군은 노구교 부근에서 야간 훈련 중이었다, 그런데 훈련 도중 일본군 병사 1명이 실종됐다. 이 병사는 20분 후 부대에 복귀했으나 일본군은 중국군 주둔 지역을 수색하려 했고, 중국군은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일본군은 중국군 진지를 공격해 8일 루거우차오를 점령했다.

공방을 계속하던 양측은 11일 정전협정을 체결했다. 루거우차오 사건은 국지적인 충돌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구실로 중국 침략을 앞당기고자 했다. 일본군은 중국 측에 반일 활동 중지, 루거우차오 사건의 배상과 책임, 중국군 측의 사과 등 일부러 무리한 요구를 했다.

중국이 이를 거부하자 일본이 기다렸다는 듯이 중국에 전면적인 파병을 발표하면서 협상은 결렬됐다. 일본군은 28일 상하이에 상륙했고, 곧이어 일본군의 전면적인 공격이 시작되면서 중일 전쟁이 발발했다. 이 전쟁은 일본군의 일방적인 공세로 진행됐다. 일본군은 8월 29일 베이징을 점령하고 다음 날엔 톈진을 함락했다.

중일 전쟁은 8년간 지속되며 2000만 명의 사상자를 낳았다. 일본은 만주를 거점으로 하여 중국 전체를 지배하려는 야망을 실현하려 했다. 중국은 이에 맞서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내전을 중단하고 일본의 침략에 맞서 항전했다. 이 사건은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크게 위협했으며, 오늘날까지도 중국과 일본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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