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일회담 20주년…의욕 넘치게 시작한 기시다의 방북은 "교착상태"
일시적으로 양측 회담 반겼지만 수면 아래서 납치 문제 두고 샅바 싸움
北, 우크라전 시작된 후로 日보다는 러시아·중국에 초점…시선 분산돼
- 권진영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가 2004년 북한을 방문한 지 22일부로 20년이 지났다. 일본인 납치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가운데, 야심 차게 추진 중이던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방북 계획은 정체 국면을 맞았다.
아사히신문은 기시다 총리의 방북 계획이 물밑 교섭 중 교착 상태에 빠졌다고 복수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22일 보도했다. 표면적으로 납치 문제 관련 집회 등에서는 "정상끼리 속을 터놓고 솔직히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를 (쌓기 바란다)"는 등 의욕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훈훈했던 표면 무드와는 달리 납치 문제로 신경전
지금까지 일본과 북한은 북일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최소 2번 접촉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해 3월과 5월, 동남아시아 주요 도시에서 일본 정부 관계자가 비밀리에 북한 노동당 관계자를 만나, 일본 정부 고위 관리를 평양에 파견하는 안을 논의했다.
지난해 5월 들어서는 기시다 총리가 직접 자신의 "직할"로 "고위급 협의를 실시하겠다"고 말하고, 북한도 이에 "북일 양국이 만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화답하며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이후에도 일본 정부는 내각관방 및 외무성 관계자 등 복수의 채널을 통해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1월에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기시다 총리를 '각하'라 경칭하며 위로 전보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표면적 분위기와는 달리 물밑에서는 납치 문제와 관련해 북일 간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지난 3월, 김 총비서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납치 문제에 골몰하는 것은 기시다 인기 끌기에 불과하다며 압박했고, 하야시 관방장관은 납치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는 북한 측 주장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다. 여기에 김 부부장이 재차 "일본 측과의 어떤 접촉도 거부하겠다"고 통보하며 협상 결렬을 암시했다.
한 일본 총리 관저 간부는 "(김여정 부부장은) 일본의 진심을 시험해 왔다. 일본이 납치 문제에 자세를 조금 완화하지 않을까 생각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부 내부적으로는 납치 문제가 해결됐다는 북한과 정상회담을 실시하는 데 대한 위험론도 뿌리 깊다.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 속 약해진 日의 존재감
일각에서는 2000년대 고이즈미 전 총리 방북 당시와 비교해 북한에 일본의 중요도가 낮아졌다는 견해도 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북한이 포탄이 부족한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하고, 그 보답으로 식량을 공급받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북한제 미사일이 발견됐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9월에는 김 총비서가 러시아를 방문했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방북을 준비하는 등 교류를 심화하는 추세다.
중국과의 왕래도 활발해지고 있다. 아사히는 한국 통일부 관계자를 인용해 "지금은 중·러와의 협력이 북한의 생명줄이다"고 전했다.
상황이 어려워지자 비관론이 확산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북한에) 저런 소리까지 듣고 만날 수는 없다"고 푸념했다.
당내 파벌에서 불거진 불법 정치자금 조성 사건으로 지지율이 폭락하고 정권 구심력이 떨어지는 가운데, 기시다 총리가 마련한 돌파구였지만 대화가 재개될 조짐은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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