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오만만서 이란과 군사훈련…중동 혼란 속 미묘한 줄타기(종합)
이란 "사우디가 홍해 합동훈련 요청"…사우디 "진행 중인 훈련 없어" 선긋기
사우디, 미국 중동 정책 살피며 라이벌이었던 점차 이란과 거리 좁혀
- 권진영 기자, 김예슬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김예슬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 오만만(灣)에서 이란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과 군사훈련을 실시했다고 23일(현지시간) 밝혔다.
AFP통신에 따르면 투르키 알말키 준장은 "사우디 왕립 해군은 최근 오만만에서 다른 국가들과 함께 이란 해군과 합동 훈련을 마쳤다"고 했다.
이는 전날 양국이 홍해에서 합동 군사 훈련을 계획 중이라는 이란의 국영통신사 ISNA의 보도가 나온 후 추가로 발표된 것이다.
이란 해군 사령관 샤람 이란 제독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우리에게 홍해에서 합동 훈련을 조직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지난 20일에는 이란이 러시아·오만·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6개 옵서버 국가와 함께 인도양 북부에서 군사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알말키 준장은 "이 기간에 다른 훈련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가 지배하는 이란은 중동 지역의 오랜 라이벌이다. 특히 2016년, 사우디가 이란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아파 성직자 40여 명을 처형해 외교 관계가 단절될 정도로 극에 치달았다.
지난해 중국의 중재로 7년 만에 관계가 회복되긴 했지만 두 나라 사이에 불씨는 남아 있다. 이란이 지원하는 예멘의 후티 반군이 2015년부터 8년간 사우디가 주도하는 예멘 정부 연합군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수니파 아랍 국가들은 이란이 후티 반군·헤즈볼라·하마스 등 중동 내 대리 세력을 통해 영향력을 확장하는 것을 견제해 왔다.
하지만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하고 미국의 중동 정책이 흔들리자 아랍국가들은 앞다퉈 이란과 관계 정상화에 박차를 가했다. 미국의 지원을 확신하지 못한 아랍 국가들이 이란에 손을 뻗으며 자구책을 마련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단기에 전쟁을 끝내지 않고 전선을 확대해 갈등이 장기화한 것에 대한 불만도 쌓였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예멘 후티 반군을 억제하기 위한 미국 주도 해군 연합에도 참여하지 않으며 이란과는 가까워지는 한편 이스라엘과는 멀어지는 상황이다.
동시에 일각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쿠웨이트·카타르·바레인·오만 등 6개 걸프국 중 오만을 제외한 5개국에는 미군 시설 또는 미군 병력을 자국 땅에 두고 있는데, 걸프국의 영공이나 군사기지가 이란을 공격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아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의 회담 뒤 "우리의 모든 친구는 그들의 땅과 영공이 이란을 공격하는 데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줬다"고 언급했다.
최근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보복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이란과 사우디 관리들은 한 달 새 세 번이나 회동하기도 했다.
AFP는 예멘 정부를 지원해 온 '세계 최대의 석유 수출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자국 문 앞에서 벌어지는 전쟁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묘한 균형 잡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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