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호출기 연쇄폭발…9명 사망, 3000명 부상

"대만 제조업체 골드아폴로 제품 추정…이스라엘 공급망 침투"

17일 레바논의 여러 헤즈볼라 거점 지역에서 폭발이 발생한 후 구급차가 베이루트 아메리칸 대학교 의료 센터 입구에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다. 헤즈볼라 조직원들의 호출 장치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면서 수백 명이 부상을 입었는데, 이 무장 단체와 가까운 소식통은 이를 "이스라엘의 통신 침입"이라고 말했다. ⓒ AFP=뉴스1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레바논 전역에서 전투원과 의료진을 포함한 현지 무장정파 헤즈볼라 대원들이 사용하는 호출기가 동시에 폭발해 최소 9명이 사망하고 3000명 가까이 다쳤다.

17일(현지시간) 로이터, AFP 통신 등에 따르면 오후 3시 30분께 헤즈볼라 거점인 베이루트 남부 교외와 동부 베카에서 일련의 폭발이 발생했다. 로이터가 확인한 영상에 따르면 폭발은 호출기가 울린 후 발생했고 전투원들이 손을 대거나 얼굴에 대고 화면을 확인했다.

슈퍼마켓 폐쇄회로 영상과 소셜미디어로 공유된 영상을 보면 호출기가 위치한 얼굴이나 엉덩이에 에 상처를 입어 다치거나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로이터, AFP 통신에 따르면 호출기는 대만 제조업체 골드 아폴로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로이터 보안 소식통들은 "폭발한 호출기가 헤즈볼라가 최근 몇 달 동안 도입한 최신 모델"이라고 말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는 폭발의 원인에 대해 "보안 및 과학적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은 "정당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의 호출기 공급망에 침투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NYT는 미국 및 기타 관계자들의 브리핑을 인용해 이스라엘이 레바논으로 호출기를 수입하기 전에 새로운 호출기 배치에 폭발물을 숨겼다고 보도했다.

2018년에 출간된 책 '라이즈 앤 킬 퍼스'라는 중동 서적에 따르면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이전에 개인 휴대폰에 폭발물을 설치하여 적을 표적으로 삼은 적이 있다. 해커들은 또한 개인 기기에 악성 코드를 주입하여 과열 및 폭발을 일으키는 능력을 보여 줬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레바논 외무부는 폭발을 "이스라엘의 사이버 공격"이라고 불렀지만 어떻게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제공하지 않았다. 레바논 정보부 장관은 이번 공격이 레바논의 주권에 대한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군은 호출기 폭발에 대한 로이터의 질문에 답변을 거부했다. 미국 국무부는 미국이 정보를 수집 중이며 관여하지 않았다고만 확인했다. 미국 국방부는 이번 사건 이후 중동 내 미군 태세에는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사이 갈등이 격화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재로서는 이스라엘-헤즈볼라 전면전을 촉발할 가능성에 대해 더 회의적이라고 로이터는 전했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면전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고 양측 모두 전면전을 원하지도 않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 정보국의 전 부국장이자 헤즈볼라에 관한 책을 저술한 매튜 레빗은 호출기 폭발이 한동안 헤즈볼라의 작전을 방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의 전 중동 담당 국가정보국 부국장 조나단 파니코프는 헤즈볼라가 "수십 년 만에 최대 방첩 실패"를 경시할 수 있지만 외교가 계속 실패하면 긴장 고조가 결국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shinkir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