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의 비극…묘지 포화에 신원 미확인 수십구 '집단 매장'

북부 병원서 운반된 시신 수십 구, 남부 칸 유니스 집단 무덤에 묻혀
장의 "시신 신원 파악 어려워…인간이었고 존엄성을 갖고 있던 몸"

22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에서 작업자들이 전쟁 희생자들을 묻기 위해 중장비를 동원해 땅을 파고 있다. 2023.11.22/ ⓒ AFP=뉴스1 ⓒ News1 권진영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으로 인한 가자지구 내 사망자가 1만4000명을 넘어선 가운데, 희생자들의 시신이 집단으로 매장되고 있다.

AFP통신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수십 명의 시신이 칸 유니스 공동묘지에 있는 집단 무덤에 22일(현지시간) 묻혔다고 전했다.

희생자들의 몸은 파란 방수포에 싸여 굴착기로 판 거대한 모래 구덩이 속에 나란히 뉘어졌다. 일부는 어린아이로 추정된다.

종교부 비상위원회의 바셈 다바베쉬는 "이 순교자들은 작별 인사를 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묻기 위해 집단 무덤을 만들었다"며 희생자들은 "무명의 순교자들이다"고 설명했다.

병원에서 희생자들의 마지막 모습을 정리하는 야세르 아부 암마르는 알자지라에 "시신의 신원을 식별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이 몸은 인간이었고 존엄성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현장 관계자에 따르면 시신 중 일부는 가자지구 북부에 위치한 인도네시아 병원과 알시파 병원에서 운반된 것으로 파악됐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 가자지구 내 의료시설을 겨냥한 공격은 총 137건 발생했으며 이로 인해 의료진 16명을 포함해 최소 521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인권 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이스라엘군의 "반복적이고 명백히 불법적인 공격은 가자지구의 의료 시스템을 파괴하고 있으며 전쟁 범죄로 조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자지구 인도네시아 병원에서 탈출해 남부 라파로 대피한 움 모하메드 알란은 AFP에 "사방에 시신이 널려 있었다.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라며 눈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간 부상자들을 떠올렸다.

그는 병원 안 곳곳에 "죽음의 악취가 가득했다"고 묘사했다. "부상자들이 진통제를 달라고 외쳤지만 의사들은 그럴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의약품이 심각하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알란이 휴대전화로 촬영했다는 영상에는 다리를 다친 환자의 환부에 벌레가 기어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가자시티 소재 알시파 병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모하마드 아부 살미야 병원장은 지난 14일 시신 179구가 부지 내 무덤에 묻혔다고 말했다.

매장된 시신 중에는 전기 공급을 받지 못해 인큐베이터에서 숨이 끊어진 조산아 7명도 포함됐다.

12일(현지시간) 가자 지구의 알시파 병원에서 정전이 일어난 뒤 신생아들이 인큐베이터 밖으로 꺼내져 침상 위에 누워있다. 2023.11.13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지윤 기자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 10월7일 이후 누적 사망자는 1만4128명으로 늘어났다. 그만큼 묻어야 할 시신도 많다.

희생자들은 전쟁이 시작된 이래 기존 묘지들은 포화되거나 접근이 불가능해진 탓에 사유지에 묻히고 있다. 축구장까지 묘지로 쓰이는 실정이다.

필립 라자리니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집행위원장은 개전 일주일 후부터 시신 가방이 부족해졌으며 "가자지구에서 들려오는 모든 이야기는 생존·절망·상실에 관한 것"이라고 한탄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가자지구 내 전체 사망자 중 40%에 달하는 5300명은 어린이로 집계됐다. AFP통신은 여전히 수천 명의 사망자가 각종 공습 잔해 아래 갇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realk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