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콩 10배' 가자 땅굴…이스라엘 지상군 최대전선은 지하에[딥포커스]

총연장 500㎞로 서울 지하철 1.5배…무기 수송하고 지휘통제소 역할
15년 가자봉쇄에 땅굴면적 늘어나…부비트랩 설치해 지상군 매복할듯

2018년 1월 이스라엘 남부 키수핌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땅굴이 발견돼 이스라엘군 장병이 경계 작전에 들어간 모습이다. 2018.1.18.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이 대규모 지상군 투입이 임박한 가운데 작전이 펼쳐질 가자지구의 땅굴이 주목받고 있다. 그 규모가 과거 베트콩이 만들었던 땅굴의 10배에 달하는 데다 공습으로도 쉽게 파괴되지 않는 탓에 지상군이 맞닿게 될 최대 전선은 지하가 될 거란 관측이 우세하다.

로이터 통신은 26일(현지시간) 사안에 정통한 복수의 서방 및 중동 소식통을 인용해 하마스가 약 360㎢ 크기의 가자지구 지하에 공격·밀수·저장 등 다양한 용도의 땅굴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마스 측 주장에 따르면 가자지구 땅굴의 총연장은 500㎞로 서울 지하철의 1.5배에 달한다. 이스라엘방위군(IDF)도 지난 15년간 하마스가 건설한 땅굴을 이른바 '가자 지하철'이라고 부른다. 가자지구 곳곳을 관통하며 병력을 수송하고 로켓과 탄약을 은폐해 왔다는 의미에서다.

최소 30m 깊이에 건설되는 탓에 폭격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아 방공호 역할도 수행한다. 실제로 지난 23일 석방된 요체브 리프쉬츠(85·여)는 피랍 기간 인질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수많은 땅굴에서 생활했다고 증언했다. 이런 이유로 하마스의 지휘통제시설도 땅굴에 자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 가자지구 주둔 당시 이스라엘군 부사령관을 맡았던 아미르 아비비 예비역 준장은 이날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며칠간 대규모 공격을 퍼부었지만, 하마스 지도부는 건재하다"며 "지휘·통제 및 반격 실행 능력을 여전히 갖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40~50m 깊이의 땅굴이 도시 전역을 관통하고 있다. 벙커, 사령부, 저장시설이 있는 건 물론 천여개의 로켓발사 지점과 연결돼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소식통은 가자 땅굴의 깊이가 최대 80m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한 서방 소식통은 땅굴에 대해 "콘크리트로 건설돼 매우 튼튼하다"며 과거 1960년대 베트남전 시절 "베트콩이 지은 땅굴의 10배 규모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그들은 수년간 많은 돈을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2018년 1월 이스라엘 남부 키수핌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건설한 땅굴이 발견돼 일반에 공개됐다. 땅굴은 군사공격 목적으로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2018.1.18.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지윤 기자

◇2006년 집권 하마스, 땅굴 건설 '박차'…이집트 라파 땅굴로 무기·에너지 밀수

하마스가 이처럼 대규모 땅굴 구축에 매달린 배경으로는 15년간 계속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면 봉쇄가 꼽힌다. 이스라엘군이 2005년 가자지구에서 철수하자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인 하마스가 이듬해 총선에서 승리하며 정권을 잡게 됐다.

같은 해 하마스의 하부조직 '이즈앗딘알카삼' 여단(IDQB)이 땅굴을 통해 가자 북부 접경지 케렘 샬롬 검문소를 공격, 이스라엘군 장병 2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하자 양측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결국 이스라엘은 안보상의 이유로 가자지구로 통하는 육·해상 통로를 모두 차단했다.

그러자 1990년대 중반부터 땅굴을 파기 시작한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눈을 피해 무기와 군수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땅굴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특히 가자지구 곳곳을 잇는 건 물론 이집트와 연결된 유일한 육로인 라파 통행로 지하에도 밀수용 땅굴을 구축했다.

라파 땅굴은 폭이 1m에 불과하지만 휘발유 등의 연료가 반입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파 땅굴 운영자인 아부 쿠세이는 약 800m를 굴착하는 데 3~6개월이 소요되며 하루 최대 10만달러(1억3000만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전했다. 이집트에서 개당 1달러인 총알이 물자가 귀한 가자지구에선 6달러에 팔리기 때문이다.

하마스는 이렇게 지은 자신들의 땅굴에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하마스의 정치 지도자 예히야 알 신와르는 이스라엘과 마지막 무력충돌이 있었던 2021년 "하마스 땅굴 100㎞를 파괴했다고 하지만 가자지구 땅굴은 500㎞가 넘는다"며 "이스라엘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전체의 20%만 파괴한 셈"이라고 말했다.

19일(현지시간)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이스라엘 군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있다. 2023.10.19.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지윤 기자

◇억류 인질 구출시 땅굴 진입 필수…지하전 특화 '야할롬 특공대' 역할 중요

하마스도 이스라엘군이 공중 및 기갑 전력에선 압도적 우위를 점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군의 지상작전이 전개될 경우 하마스는 이들을 비좁을 땅굴로 유인한 뒤 매복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스라엘 특수부대는 현재 땅굴에 억류된 민간인 인질들을 구출해야 해서 하마스의 전략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 22일 자국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하마스의 땅굴에는 각종 급조폭발물(IED)과 부비트랩이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앞으로 이스라엘군이 전개할 가자지구 지상전은 이라크가 2017년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로부터 모술 탈환을 위해 벌인 9개월짜리 전투보다 난이도가 높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하마스를 상대해 온 이스라엘군도 가자지구 땅굴의 위력을 실감하고 전열을 정비했다. 1995년 창설된 '야할롬' 특공대는 광학기기로 숨어있는 땅굴을 찾아내 파괴하는 일을 전문으로 한다. 이번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야할롬 부대를 방문해 "나와 이스라엘 국민은 여러분에 달려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이번 지상전은 2014·2021년 있었던 무력충돌과는 차원이 다를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스라엘군 전투정보단에서 사령관을 맡았던 암논 소프린 예비역 준장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그사이 부비트랩이 늘어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들은 2021년엔 없던 열 압력탄을 갖고 있는데 이는 매우 치명적"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우리의 장갑차와 전차를 공격하기 위해 대전차 무기들도 많이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지난 24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장갑차가 가자지구 접경 인근을 지나는 모습. 2023.10.24. ⓒ AFP=뉴스1 ⓒ News1 정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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