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가자지구 포위망 좁히자…하마스 "인질 처형하겠다" 위협

인질 숫자 약 150명, 미국인 등 외국인도 포함돼
인질 문제는 이스라엘 국가적 트라우마…압박으로 작용할 듯

9일(현지시간) 가자지구의 민간인 구역에 이스라엘의 공습이 가해지면서 건물이 파괴되고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2023.10.9 ⓒ AFP=뉴스1 ⓒ News1 강민경 기자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9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사전 경고 없이 가자지구의 민간인 구역을 공격한다면 인질을 살해하겠다고 경고했다.

AFP·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하마스 군사조직인 에제딘 알카삼 여단의 아부 우바이다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내고 "지금 이 시각부터 사전 경고 없이 우리 국민들을 표적 삼는다면 유감스럽지만 우리가 붙잡고 있는 민간인 포로 중 한 명을 처형하겠다"고 위협했다.

우바이다 대변인은 하마스가 현재 인질들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다면서 이스라엘의 민간인 포격 및 살해를 규탄했다. 그는 공격을 받고 있는 한 이스라엘인 포로들에 관한 협상에 임하지 않겠다면서 이스라엘이 인질의 해방을 위한 대가를 치를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마스는 지난 7일 이스라엘 남부 지역에서 '알아크사 홍수'라는 기습 작전을 전개하며 민간인들을 살해하고 일부는 인질로 잡아 가자지구로 붙잡아갔다. 이스라엘 총리실 산하 정부 공보실은 인질의 숫자를 약 150명으로 추정했다. 여기엔 미국·영국·프랑스·독일·우크라이나 등 외국 국적자들도 포함돼 있다.

7일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는 '알아크사 폭풍(Al Aqsa Storm)' 작전에 따라 이스라엘 남부 지역에 로켓 수천 발을 발사했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하마스의 이 같은 위협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전면 포위 공격을 강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 앞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TV 연설에서 하마스를 향해 "테러리스트들이 어린이들을 결박하고 불태우고 처형했다"며 "이들은 야만인이며 하마스는 이슬람국가(IS)"라고 일갈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이 전례 없는 무력을 사용해 하마스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지구뿐 아니라 하마스 지지를 선언한 친이란 무장조직 헤즈볼라에 맞서 북부 및 다른 전선을 강화한다고 예고했다.

하마스의 인질 살해 위협은 이스라엘에 큰 압박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인질의 수가 너무 많은 데다 하마스가 이들을 인간 방패로 사용할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 이스라엘이 지상 침공 여부 등 다음 군사 조치를 고민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의 퇴역 준장이자 텔아비브 소재 싱크탱크(두뇌집단) 국가안보연구원의 선임연구원인 아리엘 하이만은 WSJ 인터뷰에서 "우리는 인질들을 걱정하고 있으며, 이번에 끌려간 이들은 여성과 어린이로 구성된 민간인"이라면서도 "그러나 지금은 하마스와 맞서 싸울 때이며 무슨 결정이 내려지든 양측이 손해를 보는(lose-lose)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하마스의 인질 살해 위협이 있기도 전에 이스라엘 내각의 극우 장관들 사이에서 인질 문제를 차치하고 군사작전을 강행하라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WSJ는 전했다. 7일 밤에 열린 각료회의에서 베잘렐 스모트리히 이스라엘 재무장관은 "하마스를 무참히 공격하고, 인질들의 문제를 중대하게 고려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중재로 최소한 여성과 어린이 인질들의 석방을 위한 협상을 모색하고 있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WSJ는 보도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억류한 팔레스타인 인질의 석방을 담보하지 않으면 하마스가 협상에 나서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스라엘 인권단체 비티셀렘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 4499명을 억류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183명은 가자지구 사람이다.

일부 인질의 석방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하마스는 이스라엘 군인 인질들은 넘기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이스라엘의 반격으로 추가 사상자가 발생할 위험이 크다고 WSJ는 예상했다.

이스라엘에서 인질 문제는 깊은 국가적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1972년 뮌헨 하계올림픽 당시에는 이스라엘 선수들이 팔레스타인 검은구월단 테러리스트에 납치돼 전원 살해당한 사건은 전 국민적 충격을 줬다.

이후 이스라엘은 인질 석방을 위해 대담한 군사 작전까지 감행했는데, 1976년에는 우간다에서 자국민 106명이 탄 항공기가 인질로 잡히자 이스라엘 특공대가 4000㎞에 달하는 거리를 날아가 구출 작전을 실시하기도 했다. 심지어 네타냐후 총리의 동생인 요나탄이 이 작전을 지휘한 특공대 대장이었고, 그는 작전 중에 살해당했다.

한편 교전이 사흘째인 9일 기준 양측의 사망자는 1500명을 넘었다. 이스라엘 측에서는 최소 900명, 하마스에서는 약 687명의 사망자가 보고됐다.

이스라엘은 '철의 검'이라고 명명한 보복 작전을 각지에서 개시했다. 이를 위해 30만명의 예비군까지 소집했다.

가자지구 내에서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자발리아 난민촌이 파괴됐으며 불에 탄 잔해 속에서 검게 그을린 시신들이 발견되는 등 참상이 이어졌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오랜 기간 봉쇄돼 있던 가자지구를 완전히 포위하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전기와 식량, 식수, 가스의 공급을 전부 끊었다고 발표했다.

유엔은 가자지구에서 12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며 인도주의적 위기를 경고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번 사태가 이미 심각한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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