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무력화' 반대 국방장관도 해임…네타냐후의 거침없는 극우행보

"사법부 설립 이래 가장 중대한 변화"…막강한 의회 권력 확보
예고된 '초강경 우파' 정부…팔레스타인 등 소수자 억압 불가피

26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사법부 무력화 입법안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23.03.26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예슬 기자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사법부를 무력화하는 입법에 반대하는 국방장관을 해임했다.

입법안에 반기를 든 정부 인사를 해임한 건 이번이 처음인데, 수십만 명의 국민과 야권 인사들은 국방장관의 해임에 거세게 발발하며 이스라엘의 정치적 위기가 고조하는 모양새다.

이달 말 법안에 대한 의회의 2·3차 투표를 앞두고, 해당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과 법안 통과 시 파장 등을 톺아본다.

26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사법부 무력화 입법안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23.03.26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예슬 기자

26일(현지시간) 로이터·AFP통신과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 등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실은 성명을 통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을 해임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갈란트 장관은 전날 밤 연설에서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해, 우리의 아들과 딸을 위해 입법 절차를 이제 중단해야 한다"며 사법개혁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갈란트 장관의 해임 소식이 알려지자, 이날 밤 이스라엘 전역에서는 20만 명의 국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시위대는 텔아비브의 주요 고속도로를 봉쇄했고, 불을 지르기도 했다.

정부 안팎에서도 네타냐후 총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연립 내각의 지도자 야이르 라피드 전 이스라엘 총리, 국방장관을 지낸 베니 간츠 의원과 아비그로도 리버만 등은 네타냐후 총리의 이번 결정을 '독재'로 표현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뉴욕 주재 이스라엘 총영사는 갈란트 장관의 해임에 맞서 사의를 표했다.

국제사회에서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드리엔 왓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 이스라엘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이는 타협이 시급하다는 것을 더욱 강조하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26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사법부 무력화 입법안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경찰이 시위대를 체포하고 있다. 23.03.26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예슬 기자

◇"사법부 설립 이래 가장 중대한 변화"…막강한 의회 권력 확보

입법안의 핵심은 이스라엘 크네세트(의회)의 사법부에 대한 실질적 통제권 확보다. 이스라엘에서 대법원은 국회의원과 총리를 견제하는 유일한 기관이자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로 여겨져 왔다. 또 이스라엘에는 성문화된 헌법이 없기 때문에 대법원이 막강한 권한을 지녔다.

CNN은 "1948년 이스라엘 사법부가 설립된 이후 가장 중대한 변화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구체적으로는 △크네세트가 과반수를 확보할 경우 대법원 결정을 무시할 수 있도록 한 점 △직무 부적합성 심사 사유 제한 △대법관 추천위원회 구성 변경 △대법관 조기 정년 등이 담겼다.

입법안은 크네세트가 단순 과반수를 확보할 경우 대법원의 결정을 무시할 수 있도록 하는데, 현재 크네세트 120석 중 64석이 친(親) 네타냐후 성향이다.

대법관 추천위원회 인사 11명 중 내각과 여당 의원이 과반(7명)을 차지하도록 했다. 현재 70세인 대법관의 정년을 67세로 줄이는데, 이렇게 되면 현재 재직 중인 15명 중 4명은 물러나야 한다.

직무 부적합성 심사 사유도 정신적·육체적 사유로 제한했다. 부적합 결정은 총리가 내리거나 각료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

네타냐후 총리가 지난 1월 사기 및 부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적이 있는 샤스당 대표 아리에 데리를 내무부 및 보건부 장관에 임명하자, 대법원은 이에 제동을 걸었다. 네타냐후 총리 본인이 뇌물 수수 등 부패 관련 혐의로 재판을 받는 만큼, 사법권을 의식한 조처로 풀이된다.

라피드 전 총리는 "불명예스럽고 부패한 개인에게 맞추려는 조처"라며 "네타냐후 총리가 자신만 챙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 5일(현지시간) 내각 주간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예루살렘 총리실에 입장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강민경 기자

◇예고된 '초강경 우파' 정부…팔레스타인 등 소수자 억압 불가피

법안이 통과될 경우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들은 법원의 권리 보호를 추구하는 데 제한받을 수 있다.

그 일례로 지난해 이스라엘 법원은 동예루살렘 내 셰이크 자라 지역에 거주하는 팔리스타인인에게 거주자 보호 자격을 부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셰이크 자라는 이-팔 분쟁의 중심지로 여겨지는데, 오랜 분쟁을 겪는 지역인 만큼 양측의 무력 충돌을 막기 위한 타협안을 내놓은 셈이다.

네타냐후 총리와 그의 우파 블록이 지난해 총선에서 승리를 거머쥐며, 그의 세 번째 임기에서는 팔레스타인과 관련해 더욱 극단적인 정책이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우파 연합인 '독실한 시오니즘' 정당이 지난 총선보다 두 배 넘는 의석을 확보하며 연합 내 두 번째로 큰 정당으로 올라서면서다.

실제로 지난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의 시민권과 거주권을 쉽게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올해 들어서만 공습으로 인해 최소 5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숨졌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자유주의 이스라엘의 기본권과 가치를 수호하는 법원이 없다면 종교 우파 정부는 웨스트 뱅크(요르단강 서안)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초정통파 소수 민족에게 더 많은 권한과 특권을 부여하며 아랍 소수 민족과 성소수자(LGBTQ)를 차별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밖에도 이러한 법안의 통과로 외국인들의 투자가 줄어들 것이라고 포린폴리시는 전망했다. 매체는 "이스라엘 경제의 엔진인 기술 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외국인 투자를 거의 확실히 저지할 것"이라며 "블라디미르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러시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기술 기업가, 군사 지도자 등 이스라엘의 재능 있는 많은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떠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이스라엘 크네세트는 지난달 20일 1차 독회 및 표결에서 찬성 64표, 반대 47표로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은 이달 말까지 의회 본회의 2차, 3차 국회 투표를 최종 통과해야 한다.

네타냐후 총리의 우파 연합은 내달 5일 시작되는 유월절 휴회 전에 대법관 추천위원회 관련 법안을 통과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머지 개혁안은 휴회 이후 투표에 부쳐질 전망이다.

yeseu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