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랑을 만난 포르투갈 탐험대에 우연히 발견된 브라질 [역사&오늘]
4월 22일, 포르투갈 탐험가 카브랄의 브라질 도착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500년 4월 22일, 포르투갈의 탐험가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이 인도로 향하는 항해 도중 폭풍을 만나 우연히 남미의 한 해안에 도착했다. 이곳이 오늘날 남미 최대의 국가인 브라질이다.
카브랄은 이곳을 포르투갈령으로 선언하고 '테라 드 베라 크루즈'(참된 십자가 섬)라고 이름을 붙였다. 오늘날의 '브라질'이라는 국명은 이곳이 원산지인 '파우 브라질'(브라질나무)에서 유래됐다. 붉은색 염료를 얻는 데 사용되며 당시 유럽에선 귀중한 나무였다.
포르투갈은 곧 브라질을 식민지로 삼고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아 사탕수수, 커피, 담배 등의 농작물을 재배했다. 식민지화 과정에서 수백만 명의 원주민들이 질병, 학살, 노예 노동으로 사망했다. 그들의 문화와 전통은 파괴됐고, 토지도 빼앗겼다.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노예무역의 중심지가 됐다. 수백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강제로 브라질로 끌려와 혹독한 노예 생활을 강요받았다. 브라질 발견은 유럽 열강들의 남미 식민지화 경쟁도 더욱 심화시켰다. 스페인, 프랑스, 영국 등이 남미에 식민지를 세우기 시작했다.
1822년 나폴레옹에 쫓겨 브라질로 피신해 있던 포르투갈의 국왕 페드루 4세가 브라질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초대 황제로 즉위해 페드루 1세가 됐다. 그는 브라질 내 다양한 세력들을 통합하고 군사적 승리를 거두며 독립을 공고히 했다. 브라질제국은 약 70년 동안 지속됐다.
1889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브라질제국은 붕괴되고 브라질공화국이 수립됐다. 공화국 초기에는 정치적 불안정이 지속됐지만, 20세기 이후 점차 안정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했다. 오늘날 브라질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인구를 가진 국가이며, 아마존 밀림, 풍부한 문화와 역사, 그리고 무엇보다 '삼바 축구'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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