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판 '대선 불복' 폭동…400여명 체포·주지사 정직(종합2보)
보우소나루 지지자들, '대선 불복'하며 軍 쿠데타 요구
룰라 "파시스트 광신자들의 짓…법적 조치할 것"
- 김예슬 기자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8일(현지시간) 수도 브라질리아에 있는 의회, 대법원, 대통령궁 등 3곳을 습격한 가운데 브라질 당국이 시위대를 모두 진압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최소 400여 명이 체포되며 2021년 1·6 미 국회의사당 폭동 사건과 비교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와 CNN 등에 따르면 브라질리아가 속한 연방 특별구역의 이바네이스 로차 주지사는 자신의 트위터에 폭동에 가세한 인물 400명 이상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당국은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을 식별하고 이들을 재판에 회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시위대는 브라질 국기 색깔인 녹색과 노란색이 섞인 옷을 입고 의회 등으로 향했으며, 경찰의 바리케이드를 뚫었다. 경찰은 헬리콥터에서 최루탄을 발사하기도 했지만 시위대를 해산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소셜미디어에는 시위대가 의회 건물에 진입하기 위해 문과 창문을 부수거나 경찰관을 말에서 끌어내어 바닥에 내팽개치는 모습이 담겼다. 시위대는 의회 건물 옥상으로 올라와 군부 개입, 즉 쿠데타를 호소하는 현수막을 펼쳤다. 또 가구와 전자기기를 부수고 대통령궁 밖으로 던지는가 하면, 대법원의 한 방 안에서 배변을 하려고 시도했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브라질 유명 화가 에밀리아노 디 카발칸티의 그림, 브라질에서 처음으로 노예제 폐지를 옹호한 후이 바르보자의 흉상 등 다양한 예술작품도 훼손한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질리아에 있는 연방 전문기자연맹은 이 과정에서 취재 중이던 기자 최소 8명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에게 공격을 받거나 강도를 당했다고 밝혔다.
브라질 보안군은 시위대가 한때 점검했던 대통령궁, 의회, 대법원 등을 모두 다시 장악한 상태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보우소나루 지지자들, '대선 불복'하며 軍 쿠데타 요구
시위대는 지난해 10월 말 치러진 대선을 '부정 선거'로 보고 시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말 치러진 브라질 대선 결선 투표에서 1.8%포인트(p) 차이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이에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결선 투표에서 사용된 일부 전자 투표기가 노후화됐다며 일부 투표를 무효로 해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지난 1일 치러진 룰라 대통령의 취임식 전 '대선 불복'을 주장하는 시위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취임식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우려와는 달리 평화롭게 취임식이 마무리되며 '대선 불복' 논란도 잠잠해지는 듯 했다. 그러나 취임식이 끝난 지 열흘도 채 되지 않아 이번 소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들이 시위에 나선 배후에는 군사 쿠데타를 촉구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선 결과에 불복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룰라 대통령의 승리가 확정된 지난달 12일 이후 70개 이상 도시에서 시위를 벌여왔다. 룰라 대통령의 취임을 앞두고 경찰청에 난입하거나 공항 주변에 폭탄 테러 등을 시도했지만, 모두 사전에 검거됐다.
일부 시위대는 군 기지 밖에서 야영을 불사하기도 했다. 군대가 쿠데타를 일으켜달라는 취지에서다. 특히 공항에 폭탄테러를 시도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지지자는 수사 과정에서 쿠데타를 정당화할 수 있는 혼란을 촉발하기 위해 범행을 시도했다고 자백한 바 있다.
◇룰라 "파시스트 광신자들의 짓…법적 조치할 것"
홍수 피해를 입은 상파울루주(州) 아라라콰라를 방문 중이던 룰라 대통령은 이날 오후 10시(한국시간 9일 오전 10시) 대통령궁에 도착했다. 그는 연방 경찰과 함께 대통령궁을 시찰했으며, 군대가 건물 외부와 주변에 주둔했다.
그는 브라질리아에 대한 연방 정부의 개입을 선언하는 법령에 서명했으며, 법과 질서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한 권한을 부여했다. 브라질리아에 대한 연방 정부의 개입은 오는 31일까지 지속될 방침이다.
룰라 대통령은 "이 파시스트 광신자들은 이 나라의 역사상 한 번도 본 적 없는 일을 저질렀다"며 "우리는 이 건물 침입자들이 누구인지 밝혀낼 것이며 그들은 법의 힘으로 제압될 것"이라고 격분했다.
브라질 정부는 브라질리아에 대한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더 강력한 조처를 취할 계획이다. 플라비오 디노 법무장관은 "인터넷에는 테러 행위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그들은 브라질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브라질 대법원은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어 로차 주지사에게 3달 동안 정직 처분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또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군부 쿠데타를 요구하며 군사기지 인근에 세워둔 캠프를 24시간 이내에 철거하고, 도로와 건물을 막은 구조물을 제거하라고 판결했다.
알렉상드르 드 모라에스 대법관은 "오늘 우리 도시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룰라 대통령에게 사과하고 싶다"며 "이번 일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대법원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틱톡에 반민주적인 메시지를 퍼뜨리는 사용자의 계정을 차단하도록 명령했다.
실제로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는 이번 사태를 '위반 사건'으로 규정하고 "정부 청사를 침범한 시위자들을 지지하거나 칭찬하는 콘텐츠를 제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메타는 지난 1·6 미 국회의사당 폭동 당시에도 이를 위반 사건으로 지정한 바 있다.
◇보우소나루, 현재 美플로리다 체류…"내 책임 없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현재 브라질이 아닌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머물고 있는 상태다.
비행추적 사이트 플라이트어웨어는 지난달 30일 늦게 올랜도에 공식 브라질 비행기가 착륙했다고 전했다. 당시 룰라 대통령이 취임할 경우,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대통령 면책특권을 상실하기 때문에 공금횡령 등 각종 부패 혐의를 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피신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습격의 배후에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있을 수 있다는 추측을 내놨지만,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이같은 추측을 즉각 일축하고 나섰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평화적 시위는 민주주의의 일부지만, 오늘 일어난 것과 같은 공공건물 파괴와 침입은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현 브라질 정부 수장이 내게 제기한 혐의에 대해서도 증거가 없으므로 부인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시위의 배후에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책임이 있다는 룰라 대통령의 발언이 부적절하다는 취지다.
yeseu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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