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도 환호도 없다"…베들레헴·가자·시리아선 전쟁 공포 여전(종합)
성탄절 맞은 지구촌 분쟁 지역…장식 없이 소박한 행사
- 권영미 기자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전 세계가 트리에 불을 밝히고 서로에게 선물을 주며 성탄절을 기념하고 있지만 전운이 여전히 드리워진 지구촌 지역에서는 성탄절 장식도 트리도 서지 않았다. 이곳의 사람들에게는 성탄절 장식을 할 여유도 없이 여전히 생존이 최대 과제였다.
AFP통신에 따르면 24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점령한 서안 지구 베들레헴에서는 트리나 성탄절 장식도 없고 어린이들의 성탄을 즐기는 환호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베들레헴 중심가에서 붉은 스카프를 두른 테라 생타 스카우트 부대가 주요 쇼핑 거리를 행진했다.
이날 어린이들을 포함해 팔레스타인인들은 가자 지구의 휴전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어린이들은 여린 목소리로 캐럴을 불렀는데, 현수막에 적힌 메시지는 "우리는 죽음이 아니라 삶을 원한다" "지금 가자지구 대학살을 중단하라"는 처절한 내용이었다.
수백명의 현지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은 연례 미사를 위해 방문하는 피에르바티스타 피자발라 추기경을 환영하며 도시 광장에 모였다. 피자발라 추기경은 "2년 연속 슬픈 크리스마스였다"며 "가자지구의 모든 것이 파괴됐지만 우리는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원래 베들레헴은 기독교인들이 2000년도 더 전 예수님이 태어났다고 믿는 동굴 꼭대기에 세워진 성탄 교회 맞은편 구유 광장에 대형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운다. 하지만 베들레헴시는 가자지구에서 고통받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올해도 소박한 축하 행사를 가졌다.
안톤 살만 베들레헴 시장은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고통을 끝내고 우리가 기대하는 평화, 즉 예수님이 세상에 가져온 평화를 이 지역에 주시기를 기도하고 간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에는 약 18만5000명, 팔레스타인 영토에는 약 4만7000명의 기독교인이 있다.
시리아에서는 트리가 불타고 이에 항의하는 기독교인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지난 23일 시리아 내 기독교인 다수 거주지인 수카일라비야 중앙 광장에 전시된 대형 크리스마스트리에 불이 났다.
복면을 쓴 이들이 불을 내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소셜미디어(SNS)로 퍼졌고 이는 기독교인들의 시위 도화선이 됐다. 전국에서 시위대 수천 명이 거리로 나와 정권을 잡은 이슬람 수니파 반군의 과도정부가 소수자인 기독교인을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리에 불을 낸 이들은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 단체 소속 사람들로 추정됐다.
폐허가 된 가자시티에서는 24일 수백명의 기독교인이 한 교회에 모여 예배를 보았다. 가자지구에서도 역시 수십 년 동안 도시를 빛내던 반짝이는 불빛, 축제 장식, 우뚝 솟은 크리스마스트리가 사라졌다. 가자 지구에는 약 1100명의 기독교인이 살고 있다.
이날도 전투가 계속되는 가운데, 기도를 드리던 한 신자는 "기쁨도 축제 분위기도 없다. 다음 성탄절까지 누가 살아남을지조차 알 수 없다"며 절망감을 표현했다. 한 신자는 "우리는 모든 당사자에게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향한 진정한 길을 모색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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