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재 2년에도 굳건…'글로벌 사우스'와 밀착
"제재 실패 핵심, 서구-글로벌사우스 간 이해 부족"
"대국 경쟁의 체스판 말로 비춰지길 원하지 않아"
- 김예슬 기자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꼬박 2년. 미국을 주축으로 한 서구 사회는 2년째 대(對)러 제재를 이어오고 있지만, 러시아라는 성의 벽을 무너뜨리기엔 역부족이라는 평이 이어진다.
22일(현지시간) 외신을 종합하면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2년과 러시아 반체제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의 사망을 이유로 러시아에 대한 새로운 대규모 제재를 예고했다.
유럽연합(EU), 영국도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2년을 맞아 대러 제재를 부과했다. EU는 약 200개에 달하는 기업과 개인에게 추가 제재를 부과했고, 영국도 러시아와 관련된 50개 이상의 개인 및 단체에 대한 제재를 가했다.
미국을 주축으로 한 서방 국가는 지난 2022년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러시아에 수많은 제재를 가했다.
제재에는 러시아 중앙은행 자금 동결, 특정 러시아 상품 금수 조처, 러시아 은행 일부의 세계은행간금융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배제, 러시아 원유에 60달러 가격 상한제 부과 등이 포함됐다.
다만 새로운 조처도 효과는 미미할 것이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 더 중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외교협회(CFR) 찰스 쿱찬 선임연구원은 알자지라에 "제재는 항상 불안하지만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솔직히 말해서 제재는 러시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서구 사회와 글로벌사우스(남반구 신흥국·개발도상국) 간 손발이 맞지 않다는 점이 제재의 실효를 떨어뜨리는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는 "이 문제의 핵심은 서부와 남반구 간의 이해 부족에 있다"며 "주로 후자의 전략적 우선순위와 선택이 서구와 다르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코노미스트 역시 "이러한 모든 조처(제재)는 미국과 유럽의 제재에 동참하지도 않고, 이들의 제재를 받지도 않는 '제3국'에 맞서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브라질, 인도 등을 거론했다.
러시아는 연방 예산의 45%를 석탄, 석유 및 천연가스 수출에 의존할 정도로 세계 에너지 시장의 주요 국가다. 서방의 제재를 받던 러시아의 숨통을 트이게 해준 게 글로벌사우스 국가라는 지적이다.
서방은 지난 2022년 러시아산 원유 및 석유제품 수입을 금지했지만, 중국·인도·브라질 등은 러시아로부터 기록적인 양의 석유를 들여오고 있다.
2022년 중국, 인도, 싱가포르, 튀르키예, 아랍에미리트(UAE)는 전해(2021년)보다 러시아로부터 500억 달러 더 많은 석유를 수입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난해 12월 하루 780만 배럴의 석유를 수출했는데, 이는 9개월 만의 최고치이자 전쟁 전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다.
또 러시아산 가스 최대 수입국이던 EU가 개전 이후 러시아산 에너지 구매량을 꾸준히 줄이자, 러시아는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파키스탄 등 국가에 에너지를 할인된 가격으로 공급하며 활로를 모색했다.
2014년 푸틴 대통령이 크림반도를 합병한 뒤 러시아 제재를 총괄했던 오바마 행정부의 전 국무부 관리 에드워드 피시먼은 뉴욕타임스(NYT)에 "제재는 실망스러웠다"며 "안타깝게도 러시아는 이제 일종의 대체 공급망을 구축했다"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 당시 국무부 관리였던 미국 카톨릭 대학교의 냉전 역사학자 마이클 킴미지도 "러시아는 결코 갇힌 것이 아니다"라며 "경제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박스에 갇히지 않았으며, 이는 전쟁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NYT에 설명했다.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국가들의 공통점은 비동맹운동(NAM) 세력이라는 것이다.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등 120국이 참여한 비동맹운동 세력은 강대국에 동조하지 않거나 이에 대항하려는 국가들로 이뤄진 세력으로, 구소련 해체 이후 약화했다.
그러나 1990년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하던 비동맹운동 세력은 2022년 전 세계 GDP의 28%를 차지하는 등 경제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해오고 있다. 러시아의 제재 회피에 도움을 주는 이들 국가가 세력을 다시 확장하는 만큼 대러 제재가 힘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이코노미스트는 "상품 수입 금지 조치는 비동맹 국가들이 가장 명백하게 무시하는 조치"라며 "러시아 석유에 대한 서구의 석유 가격 상한제에 참여하지 않는 국가들에는 세계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고, 이들은 기꺼이 배럴당 60달러 이상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전했다.
유럽정책분석센터(CEPA) 소장 알리나 폴랴코바는 "이들 국가들은 대국 경쟁의 체스판 위에 있는 볼모로 비춰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며 "지난 행정부(트럼프 행정부)는 이들 국가들과의 관계에 많은 피해를 줬고, 우리는 신뢰할 만한 파트너로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서구는 러시아의 무기 제작에 사용될 수 있는 장비 접근을 제한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중앙아시아 등 우회로를 통해 막대한 양의 반도체 칩을 들여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NYT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아르메니아와 튀르키예 등은 미국의 제재에 동조하지 않았고, 그곳의 민간 기업들은 마이크로칩 등 물품을 수입해 러시아로 재수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 역시 "지난해 러시아가 수집한 군사 장비 중 절반에 서구 기술이 사용됐다"며 "유럽의 중앙아시아에 대한 반도체 수출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두 배 이상 증가했는데, 이러한 상품의 최종 목적지를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전했다.
yeseu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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