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in포커스] 로큰롤의 여왕 티나 터너, 향년 83세로 별이 되다
통산 12회 그래미상 수상, 1991년에는 로큰론 명예의 전당 올라
가정 폭력 이겨내고 솔로로 우뚝 서…은퇴 후에도 음악 활동 이어가
- 권진영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로큰롤의 왕' 티나 터너(본명 애나 메이 불럭)가 스위스 퀴스나흐트 자택에서 24일(현지시간) 영원히 눈을 감았다. 향년 83세.
티나 터너의 홍보를 담당하는 버나드 도허티는 이날 성명을 통해 터너의 사망을 발표했다. 정확한 사인은 밝히지 않았지만 뉴욕타임스(NYT)는 그가 최근 몇 년 동안 뇌졸중 및 신장 질환 등으로 투병했다고 전했다.
◇교회 성가대 소녀, "허리케인" 같은 디바가 되다
티나는 특유의 깊고 허스키하면서도 폭발적 에너지가 가득한 목소리로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다수의 히트곡을 남겼다.
AFP는 그가 20세기 록 음악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고 논평했다. 저명한 재즈·팝 평론가 랄프 J. 글리슨도 "티나 터너는 무대에서 가장 감각적인 프로"라며 "(무대에서) 마치 허리케인처럼 다가온다"고 묘사했다.
화려한 수상 경력은 전문가들의 호평을 뒷받침한다. 솔로로 총 8번, 그룹 활동을 합치면 총 12번 그래미상을 받았는데, 1985년에는 '왓츠 러브 갓 투 두 위드 잇(What's love got to do with it)'으로 그 해 그래미상 세개 부문을 석권했다.
전설의 시작은 티나가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1950년대 후반. 후에 남편이 된 아이크 터너의 밴드에서 코러스를 부른 것이 시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녹음에 빠진 메인 보컬을 대신해 부른'어 풀 인 러브(A Fool in Love)'가 빌보드 R&B차트에서 2위·팝 차트 27위에 오르며 스타덤에 올랐다. 테네시주(州) 교회 성가대 출신의 애나 메이 불럭(본명)에게 '티나'라는 예명이 붙은 것도 이때다.
이후 아이크 터너와 결혼해 '아이크 앤 티나 터너 레뷔'라는 그룹을 결성하고 본격적 가수 활동에 나섰다. 히트곡 '프라우드 메리(Proud Mary)' 등을 발매했으며 순회 공연을 펼쳤다. 티나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열광적인 춤사위는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디바를 옭아맨 가정 폭력
터너 부부의 수입은 프라우드 메리라는 히트곡이 나오기 전까지 대부분 공연에서 나왔다. 티나는 쉴 틈 없는 투어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매일 같이 무대에 서야 했다.
무대 아래서 내려오면 아이크의 학대가 이어졌다. NYT에 따르면 독재적 성향의 아이크는 금전 착취도 모자라 티나에게 폭력을 휘두르곤 했다. 마약까지 손을 댄 그는 결국 2007년 코카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한때 극단적 선택에까지 내몰렸다는 티나는 1976년 주머니에 단돈 36센트와 휘발유 카드 한 장을 넣고 투어 도중 뛰쳐나왔다. 2년 후 두 사람은 법적으로도 완전히 갈라섰다.
1981년 피플지와의 인터뷰에서 티나는 "나는 죽음의 삶을 살고 있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또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떠날 때 그가 날 죽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두렵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이미 죽어 있었기 때문이다"고 털어놨다.
혼자가 된 티나에게 남은 것은 예명뿐이었다고 AFP는 보도했다.
◇자유와 함께 되찾은 전성기
록스타의 꿈마저 버릴 수 없었던 티나는 솔로 활동을 전개한다.
"리버 딥 마운틴 하이(River Deep, Moutain High)"라는 곡이 영국에서 히트를 치며 재기에 성공한다. 후에 티나는 이 곡에 대해 "리버 딥은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것을 보여줬다"고 회상했다.
재기에는 성공해도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이혼 후 아이크의 빚까지 떠안은 티나는 한동안 카바레 공연 등에 출연하며 솔로 경력을 쌓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 동료들과 협업한 "렛츠 스테이 투게더(Let's stay together)와 "프라이빗 댄서(Private Dancer)"가 대히트를 치며 전환점을 맞았다.
궤도에 오른 티나는 영화 '매드 맥스3(1985)'에도 출연하며 주제가 "위 돈 니드 어나더 히어로(We Don't Need Another Hero)"를 발매했다.
이듬해에는 회고록 '티나 : 마이 라이프 스토리'를 통해 가정 폭력 경험을 대중에 고백했다.
이후 티나는 1991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고 2005년 케네디 센터 공로상, 2018년에는 그래미 평생 공로상 등을 받는 등 승승장구했다.
직업적 전성기와 함께 두 번째 사랑도 찾아왔는데, 2013년에는 1985년부터 교제를 시작한 독일인 레코드회사 임원 어윈 바흐와 결혼했다. 5년이 지난 후 티나는 두 번째 회고록 '티나 : 마이 러브 스토리'를 출간했다.
티나는 2008~2009년 월드 투어를 마지막으로 가수 무대에서 내려왔다. 은퇴 후에도 남편 바흐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뮤지컬을 제작하는 등 열성적으로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realk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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